[판결] 약물 과다복용 정황만으로 사망보험금 지급 거절 못해...한화손해보험 1심서 패소


글 : 임용수 변호사


정신과적 증상을 완화할 목적으로 여러 종류의 약을 과다 복용했다가 사망한 사고에 대해 보험사 측이 의도적 과다복용에 의한 '극단적 선택'에 해당함을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으나 법원은 유족에게 사망보험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9단독 유정훈 판사는 최근 박 모1) 씨의 유족인 자녀 2명이 한화손해보험을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 소송에서 "한화손해보험은 유족에게 1억원을 지급하라"고 원고승소 판결했다.2)

박 씨는 2021년 6월 안방 침대 위에 누운 채로 입술이 파랗고 숨소리가 이상한 상태로 발견돼 119에 의해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사망했다.

이에 유족이 사망보험금을 청구했으나 한화손해보험이 박 씨가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했기 때문에 보험 약관상 '보상하지 않는 손해'라며 거부하자 소송을 냈다.

재판 과정에서 한화손해보험은 "박 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위해 고의로 일으킨 사고", "사고가 급격하고도 우연한 외래의 사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보험계약 보통약관에 따라 보험금 지급 의무는 면책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유족 측의 손을 들어줬다. ▷박 씨에게 여러 종류의 약물이 검출됐으나 모두 박 씨가 그 무렵 정신과에서 정상적으로 처방받은 약인 점, ▷박 씨에게 치사량 이상의 약물은 발견되지 않은 점, ▷단순히 여러 종류의 약물을 복용한다고 사망의 결과를 일으킨다고 볼 수 없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관 역시 박 씨에게 검출된 여러 약물 사이의 상호작용의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밝혔을 뿐 상호작용의 존재를 명확히 설명하지 못했으며, 단지 여러 약물 사이의 상호작용 가능성과 다른 사망의 원인이 부존재한다는 점에서 급성약물중독으로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한 점, ▷박 씨가 극단적 선택을 할 목적으로 여러 종류의 약물을 복용했다고 볼 수 없는 점 등이 판단 사유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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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훈 판사는 「박 씨는 여러 종류의 약물을 복용했다가 약물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박 씨가 예견하지 않았는데 우발적으로 발생하고 통상적인 과정으로 기대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온 사고」라며 「보험계약에서 정한 '보험기간 중의 급격하고도 우연한 외래의 사고로 신체에 상해를 입고 그 직접적인 결과로써 사고일로부터 2년 이내에 사망'한 것에 해당한다」고 봤다.

이어 「박 씨의 혈액에서 여러 종류의 약물이 검출되고, 일부는 치료농도를 상회하거나 독성농도였으나, 치사농도에 이른 약물은 없는바, 박 씨가 짧은 기간에 여러 종류의 약을 복용하기는 했으나 특정 약을 치사량에 이를 정도로 비정상적으로 과다하게 복용한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박 씨가 남긴 유서가 발견되지 않았으며, 사고 이전에 박 씨가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내용의 발언을 했다거나 그와 같은 내용이 담긴 휴대전화 메시지 등을 남겼다는 등의 정황이 보이지 않는 점, 한화손해보험은 박 씨의 극단적 선택의 동기가 무엇인지 전혀 설명하지 못할 뿐 아니라, 박 씨가 평소 신병을 비관해 왔다는 등의 정황 역시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박 씨가 짧은 기간에 여러 종류의 약을 과다하게 복용했다는 정황을 제외하고는 극단적 선택이 아닐 가능성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만한 다른 정황들이 존재한다거나 증명된 바 없고, 극단적 선택이 아닐 가능성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하기는 부족하다고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면 한화손해보험이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박 씨가 극단적 선택을 하기 위해 고의로 사고를 일으켰다는 점이 일반인의 상식에서 합리적인 의심이 들지 않을 정도로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결국 한화손해보험의 (면책) 항변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임용수 변호사의 케이스메모


약물 과다 복용 후에 급성약물중독으로 사망한 사고는 대부분 음주 상태에서 발생한다. 피보험자가 극단적 선택을 하기 위해 이같은 사고를 고의로 일으켰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와 관련해 다툼이 많았던 만큼 판례도 많다. 유사 판례를 알기 쉽게 소개하려고 쓴 기존 블로그 포스팅 글들이 있다. [판결] 치사량의 우울증 치료제 복용 후 약물 중독 사망, 피보험자의 고의 사망 해당 안돼 [단독] 치사량 '과다 약물 복용' 중독 사망, 우연한 외래 사고로 봐야 [판결] 법원 "당뇨약 다량 복용 후 사망은 중과실 아닌 고의 사고이고 질병사 아닌 외인사 해당된다" [단독](판결) 치사량 수면제 복용 당시 음주 명정상태였다면, 약물 중독사도 재해사망으로 봐야 [판결] 대법원, 우울증 자체에 의한 사망 아닌 "약물 과다 복용 뒤 사망은 질병사망 해당 안돼" [단독](판결) 프로포폴 과다 투여 뒤 사망은 면책사유인 피보험자의 고의 사고, 보험금 청구 못해 등이다. 관심 있는 분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2019년 선고된 판결 중에도 유사한 사례가 더 있다. 피보험자가 과음한 후 잠을 이루지 못하자 언니에게 전화해 "수면제를 먹고 죽겠다"는 취지로 말하고는 수면제(졸피뎀)를 과다(4알 정도) 복용하고 자다가 졸피뎀, 알코올과 셀트랄린(항우울제)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급성약물중독으로 사망한 사건이다. 법원3)은 셀트랄린과 졸피뎀을 연속 투여하는 경우 졸피뎀의 혈중최고농도(Cmax)가 유의하게 높게 나타나기도 하고 알코올을 포함한 다양한 중추신경계 억제제와 졸피뎀을 과량 투여하면 치명적인 결과를 포함한 보다 심각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피보험자가 술을 마신 상태에서 잠이 잘 오지 않자 평소보다 많은 수면제를 먹고 자는 과정에서 졸피뎀과 셀트랄린 및 알코올의 상호작용에 의한 우연한 사고로 사망에 이른 것이고 피보험자가 극단적 선택을 하기 위해 고의로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사망에 이르렀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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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 등록일 : 2023년 11월 18일

1) 호칭의 편의상 사망한 피보험자를 박 씨라고 부른다.
2) 한화손해보험은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포기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3) 서울중앙지방법원 2019. 10. 18. 선고 2018나43264 판결. 피보험자의 유족들이 디비손해보험과 현대해상을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 소송의 2심 판결[확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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