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수섬유증(D47.4)은 일반암일까? 특정암일까?



통계청이 작성 및 고시하는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는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국제 비교를 위해 권고하는 국제질병분류(ICD)를 바탕으로 작성되고 있습니다.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의 분류체계상 각각의 분류번호는 상호배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상호배타성이란 동일한 분류 단위 내에서 각 코드들은 서로 공통점을 가지지 않는 독립적인 코드를 가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의 질병은 분류체계 내에서 그 질병의 속성 정보를 상세히 표현한 단 하나의 분류번호만을 가져야 하며, 분류의 성격에 따라 의사의 진단을 근거로 가장 적합한 분류번호를 부여해야 합니다.1) 

골수섬유증(Myelofibrosis)과 만성골수증식질환(Chronic myeloproliferative disease)은 희귀한 혈액질환입니다. 골수섬유증은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 등 혈액세포를 만드는 골수 조직이 딱딱하게 섬유화되면서 혈액세포 양이 현저히 줄어드는 질환을 말하고, 만성골수증식질환은 골수 조직에서 과립구계, 적혈구계, 거대핵세포가 클론성 증식을 일으키면서 조혈모세포에 이상을 초래하는 질환을 말합니다.

보험사들의 약관을 보면, 골수섬유증은 분류번호가 D47.4인 일반암으로 정하고 있지만, 만성골수증식질환은 분류번호가 D47.1인 특정암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골수섬유증에 대해 치료 담당의사가 '만성골수증식성 질환의 하나로서 골수섬유증'이라는 진단을 내리거나 또는 '골수섬유증(D47.4), 만성골수증식질환(D47.1)'으로 동시 진단을 내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 같은 진단을 특정암의 진단확정으로 볼 수 있는지(골수섬유증이 진단되면 만성 골수증식질환에도 해당하는지) 여부를 두고 엇갈린 하급심 판결들이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에 소개할 하급심 판결은 피보험자(정 모 씨)가 골수섬유증에 대해 혈액종양내과 의사로부터 골수섬유증(D47.4)과 함께 만성골수증식질환(D47.1) 진단도 받았지만 '특정암'에 해당하는 만성 골수증식질환(D47.1)의 진단확정으로 인정받지 못한 사례입니다. 




【사건 개요】

정 씨는 2019년 7월 메리츠화재와 일반암 진단비와 특정암 진단비를 보장하는 보험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후 무기력과 빈혈 증상 등을 호소하며 내원한 병원의 혈액종양내과 의사로부터 '골수섬유증(D47.4), 만성골수증식질환(D47.1)'으로 동시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에 정 씨는 의사로부터 골수섬유증과 골수증식종양으로 진단을 받았다면서 메리츠화재에 일반암 진단비 5000만원과 특정암 진단비 5000만원을 함께 청구했습니다. 골수검사 및 혈액검사를 통해 골수증식종양(D47.1)으로 진단을 받았으므로, 메리츠화재는 특정암 진단비를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메리츠화재는 정 씨의 최종 진단명을 골수섬유증(D47.4)으로 보고 골수섬유증 진단에 대해 일반암 진단비 5000만 원을 지급했으나, 만성골수증식질환에 해당하는 특정암 진단비에 대해서는 지급을 거절했습니다. 지급 거절 사유로는 만성골수증식질환은 그 질병분류코드가 D47.1이고, 골수섬유증은 그 질병분류코드가 D47.4로 서로 다른 질병이므로 특정암 진단비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재판에서의 쟁점은 골수섬유증(D47.4)이 만성골수증식질환(D47.1)의 하위 개념에 해당하는 질병 내지 하위 진단명에 해당하는지 여부였습니다.



【법원 판단】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88단독 임상은 판사는 정 씨가 메리츠화재해상보험을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했습니다.  

임상은 판사는 「'암' 또는 '특정암'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원칙적으로 약관 별표 '악성신생물 분류표' 및 '특정암 분류표'에 따라 판단돼야 한다」며 「보통약관 별표 '악성신생물 분류표'에서는 보장 대상으로 만성골수증식성질환(D47.1)과 골수섬유증(D47.4), 만성호산구성 백혈병(D47.5)을 병렬적으로 나열한 반면, 특별약관 별표 '특정암 분류표'에서는 보장 대상으로 만성골수증식성질환(D47.1)과 만성호산구성 백혈병(D47.5)만을 나열해 골수섬유증(D47.4)은 '특정암 분류표'에 속하지 않음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상 만성골수증식질환(D47.1)에는 만성호중구성 백혈병, 상세불명의 골수증식질환이 포함되고, 비정형적 만성골수성 백혈병, BCR/ABL-음성(C92.2), 만성골수성 백혈병, BCR/ABL-양성(C92.1)은 제외한다고 기재돼 있으며, 골수섬유증(D47.4)은 이와 별도의 분류번호가 부여돼 있으므로, 그런 분류체계 하에서 만성골수증식질환(D47.1)과 골수섬유증(D47.4)은 포함관계가 성립되지 않는 동등한 관계」라며 「결국 만성골수증식질환(D47.1)은 의학적 관점에서 그 하위 개념에 해당하는 질병 중 별도의 분류번호가 없는 경우에 부여되는 분류번호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면서 「정 씨는 특별약관이 정하는 '특정암'에 해당하는 만성 골수증식질환(D47.1)으로 진단확정을 받았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정 씨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판결에 대해서는 정 씨가 불복해 항소를 제기한 상태입니다.



 만성골수증식성질환(chronic myeloproliferative disease)은 2008년 WHO 진단기준의 개정 전에 사용되던 질환명인데, 진성 적혈구 증가증(polycythmea vera, PV), 본태성 혈소판 증가증(essential thrombocythemia, ET), 일차성 골수섬유증(primary myelofibrisis, PMF) 등을 포함하는 간세포기원의 클론성 질환들의 모임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2008년 WHO 진단기준의 개정 이후 동일한 질환군을 지칭하는 질환명인 골수증식종양(myeloproliferative neoplasm, MPN)으로 변경됐습니다. 

2016년 WHO 진단기준에 따른 골수증식종양(MPN)은, ① Chronic myeloid leukemia (CML) BCR-ABL 1+ (만성골수백혈병, BCR-ABL 1양성), ② Chronic neutrophilic leukemia (CNL) (만성호중구성백혈병), ③ Polycythmea vera (PV) (진성적혈구증가증), ④ Primary myelofibrosis (PMF) (일차골수섬유증), ⑤ Essential thrombocythemia (ET) (본태성혈소판증가증), ⑥ Chronic eosinophilic leukemia, not otherwise specified (NOS) (상세불명 만성호산구백혈병, CEL NOS), ⑦ MPN, unclassifiable (미분류 골수증식종양, MPN, U)으로 분류되고, 대한의사협회도 이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2)

제8차 개정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는 골수증식종양을 여전히 '만성 골수증식질환'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만성 골수증식질환(D47.1)에서 '만성 골수성 백혈병, BCR/ABL-양성(C92.1)'과 '비정형적 만성 골수성 백혈병, BCR/ABL-음성(C92.2)'만 제외하고 있고, 골수섬유증(D47.4)에서는 '이차성 골수섬유증' 등은 포함하고 있으나, 급성 골수섬유증(94.4)만 제외하고 있습니다.

하급심 판결 중에는 의학적으로 만성골수증식질환(D47.1)의 하위 개념에 해당하는 질환{골수섬유증(D47.4), 진성적혈구증가증(D45), 본태성 혈소판증가증(D47.3) 등}이 보험계약의 특별약관상 부보되는 만성골수증식질환(D47.1)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해 약관의 해석을 둘러싼 분쟁이 수차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한 사례가 있습니다.3)

골수섬유증은 의학적으로 일차성(특발성)과 이차성으로 분류됩니다. 일차성 골수섬유증은 JAK2, MPL, CALR 등의 유전자 변이가 일으키는 골수증식종양(MPN)의 하나입니다. 이러한 유전자 변이로 인해 적절한 세포기능에 필요한 경로에 이상이 생겨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차성 골수섬유증은 특정한 기저질환이 있고, 이에 대한 반응으로 섬유화가 일어나는 경우로, 선행하는 혈액질환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우도 있고, 결핵 등의 감염과 자가면역질환에서 발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4)

통계청의 회신에 따르면 '골수섬유증은 2008년 국제질병분류의 업데이트 안건 논의 결과 분류코드가 D47.1에서 D47.4로 변경된 바 있으나, 이러한 국제질병분류를 제6차 및 제7차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에 반영하는 과정에서 골수증식성 질환으로 인한 골수섬유증의 경우 분류코드가 D47.1로 잘못 수록됐고, 위 오류 사항은 2020년 7월 고시 예정인 제8차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 개정 시 삭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에 의하면 특별약관에 의해 보장 대상이 되는 특정암이 통계청이 고시하는 제6차 또는 제7차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를 기초로 하고 있고, 위 오류 사항이 수정되지 않은 이상 골수섬유증을 만성골수증식성질환의 하위 질병으로서 특정암 진단비 지급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달리 표현하면, 위 오류 사항이 수정될 때까지는 특정암을 보장하는 특별약관에 가입한 피보험자가 주치의로부터 '만성골수증식성 질환의 하나로서 골수섬유증'이라는 진단이나 '골수섬유증, 만성골수증식질환'으로 동시 진단을 받은 경우에는 골수섬유증을 만성골수증식질환의 일종으로 보는 해석도 충분히 가능하고, 그러한 해석에 객관성과 합리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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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 등록일 : 2025년 6월 21일

1) 통계청 코딩지침서 참조.
2) 부산지방법원 2024. 9. 10. 선고 2022가단317150 판결 참조.
3) 서울중앙지방법원 2024. 11. 21. 선고 2023나49082 판결.
4)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중 '골수섬유증'(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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