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임용수 변호사
우울증 치료제와 골격근 이완제의 과다 복용에 의한 약물 중독으로 사망했다는 사정만으로는 피보험자의 고의에 의한 사망이라고 볼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보험전문 임용수 변호사가 판결의 주요 내용을 알려 드립니다.
이 씨는 2011년 3월 말부터 수면장애 등으로 지속적인 신경정신과 진료를 받아왔는데, 2012년 4월 중순에 마지막으로 내원해 한 달간 복용할 수 있는 아미트리프틸린(우울증 치료제)과 디아제팜(신경안정제), 아티반(신경안정제) 등의 처방을 받았습니다.
이 씨는 사망 직전 무렵 온종일 취해 있을 정도로 술을 많이 마셨고, 수면장애나 술이나 신경안정제에 의존해 잠을 이루곤 했습니다. 2012년 5월 중순부터 6월 초까지 여자친구와 같이 살았으나, 이후 그녀와 헤어져 독신으로 지내오던 중 2012년 7월 초 자신의 거주지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됐습니다. 사망 당시 그의 신체는 이미 부패가 진행된 상태였으나, 그밖에 특별한 외상이나 내부 장기에서의 병변이 발견되지 않았으며, 사체의 머리맡 휴지통에는 신경정신과 의원의 처방에 따른 약봉지와 알약이 발견됐습니다.
부검 결과 이 씨의 간조직에서 아미트리프틸린(이 씨가 처방 받은 약), 노르트리프틸린(아미트리프틸린의 생체 내 대사체), 시클로벤자프린(골격이완제로 이 씨가 이를 구한 경위는 밝혀지지 않음), 노르다제팜(처방받은 디아제팜의 생체 내 대사체)이 검출됐는데, 그 중 아미트리프틸린, 노르트리프틸린, 시클로벤자프린은 치사량에 달했고, 이는 주사제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복용에 의해 검출될 수 있는 수치였습니다. 앞서 열거한 약물들과 알코올의 동시 섭취에 의해 중추신경 억제 작용을 증강시킬 위험은 있으나, 이로 인해 약물 검출에 관한 분석 결과가 달라진다거나 치사량의 범위가 달라진다는 점에 관해서는 의학계에 보고된 바 없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이 씨에 대해 "부패 변성으로 단정할 수 없으나, 약물 중독(아미트리프틸린, 노르트리프틸린, 시클로벤자프린)의 가능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 있음"이라는 감정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수사기관은 이 씨의 변사 사건에 관해 그가 홀로 지내던 중 소지하고 있던 약물을 다량 복용한 후 사망에 이른 것으로 추정되고, 타살 혐의 없다는 이유로 내사를 종결했습니다.
재판부는 「앞서 본 여러 사정들을 종합해 이 씨의 사망이 보험계약에서 정한 '상해에 의한 사망' 즉 우울증 치료제와 골격근 이완제의 과다 복용에 의한 약물 중독으로 사망에 이르렀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엘아이지손해보험은 이 씨가 약물 중독으로 사망했다면 이는 '상습적으로 흡입, 흡수 또는 섭취한 결과로 생긴 중독 증상'에 따른 것으로서 보험 약관에서 정한 면책사유에 해당하므로 보험금 지급 의무가 면책된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나, 이 씨가 치료 목적으로 의사로부터 처방받은 약을 복용하던 중 소지하고 있던 약물을 다량 복용한 후 사망에 이른 것을 두고 상습적으로 유독 물질 등을 흡입, 흡수 또는 섭취한 결과로 생긴 중독 증상에 따라 사망한 것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임용수 변호사의 케이스메모
보험약관에서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를 보험사의 면책사유로 규정하고 있는 경우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는 그 면책사유에 해당하는 사실을 입증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 경우 자살의 의사를 밝힌 유서 등 객관적인 물증의 존재나, 일반인의 상식에서 자살이 아닐 가능성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이 들지 않을 만큼 명백한 주위 정황 사실을 입증해야 합니다.3)
재판부는 이 씨가 보험계약 체결 당일부터 수면 장애뿐 아니라 '자살 충동'으로 신경정신과 진료를 받아왔으며, 치사량에 달하는 우울증 치료제 등을 복용해 사망에 이른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그런 사실만으로는 엘아이지손해보험이 면책사유에 해당한다는 사실에 관한 입증을 다하지 못했다고 봤습니다. 오히려 약물과 알코올의 동시 섭취에 의해 중추신경 억제 작용을 증강시킬 위험이 있었다는 사실에 주안점을 두고 이 씨가 술에 취해 판단력이 흐려진 상태에서 실수로 평소 복용하던 약을 과다 복용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2) 서울중앙지방법원 2015. 7. 1. 선고 2014가합567492 판결.
3) 대법원 2002. 3. 29. 선고 2001다49234 판결 등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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