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판결) 치사량 수면제 복용 당시 음주 명정상태였다면, 약물 중독사도 재해사망으로 봐야


글 : 임용수 변호사


치사량에 달하는 수면제를 복용하고 사망했더라도 수면제 복용 당시 음주로 인한 명정상태였다면 보험사는 보험금 지급을 거부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임용수 변호사[보험전문]가 판결 내용을 국내 최초 [단독] 뉴스로 알려 드리고, 변호사의 의견을 담은 해설과 법률 조언을 덧붙입니다. 보험 소송 의뢰를 원하거나 보험 법률상담을 원하는 분들은 '위치와 연락'에 열거된 보험 관련 서류 등 자료 전부를 지참하고 방문 상담해 주세요.

노 모 씨1)는 2004년 3월 동양생명보험()의 생명보험 상품에 가입했습니다. 이 보험 상품에는 피보험자가 보험기간 중 재해를 직접적인 원인으로 사망했을 때 재해사망보험금 1억 원을 지급한다는 특약이 부가돼 있었습니다.

노 씨는 지난 2016년 정년퇴직한 후 특별한 직업 없이 지내던 중, 2018년 8월 오전 9시경 외출해 옛 직장동료들과 동기모임을 하면서 음주를 하고 오후 4시경 귀가했습니다. 평소 불면증이 있던 노 씨는 2013년경부터 스틸녹스(졸피뎀)와 자낙스(알프라졸람)를 처방받아 복용해 왔는데, 이날도 잠을 청하기 위해 방으로 들어갔다가 잠이 안 온다면서 다시 나와 스틸녹스정 10mg과 자낙스정 0.5mg을 복용한 후, 가족들에게 "자전거로 한 바퀴 돌고 오겠다"고 말하고 외출했고, 이때 휴대폰을 가지고 나가지 않았습니다. 

노 씨는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다음날 오전 11시 40분경 집에서부터 자전거로 약 7분 거리에 있는 여관의 객실 침대 위에서 사망한 상태로 여관 주인에 의해 발견됐습니다. 수사 결과 노 씨는 여관 투숙 당시 그 여관의 주인에게 "아침에 늦게 일어날 수도 있으니 깨우지 말라"고 이야기하면서 투숙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노 씨는 평소 개별포장된 처방약들의 봉지를 모두 찢어 약통에 보관하면서 챙겨 가지고 다녔는데, 사망 3일 전에 처방받은 졸피뎀 28정, 자낙스 28정 역시 찢어진 봉지만 망인의 휴지통에서 발견됐습니다. 노 씨는 사망 전날 집을 나설 당시도 약통을 가지고 나갔는데, 노 씨가 사망한 객실 안에서 발견된 약통 안에는 자낙스 1정만 들어있었습니다. 

노 씨의 시신에 대한 부검 결과, 사망 당시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44%로 분석됐고 혈액에서는 치사농도 수준의 졸피뎀 성분과 독성농도 이상의 알프라졸람이 검출됐습니다. 이에 수사기관은 노 씨가 약물들을 과다복용해 급성중독사 했다고 추정하고 범죄 혐의점에 관한 추가조사 없이 내사종결 처리했습니다. 

이후 유족이 노 씨의 사망에 대해 보험금 지급을 청구했지만, 동양생명은 주계약에 따른 사망보험금 4000만원만을 지급하고, 재해사망특약에 따른 사망보험금에 대해서는 '노 씨가 고의로 약물을 과다복용해 사망했으므로 이는 재해에 따른 사망으로 볼 수 없다'며 지급을 거절했습니다. 

이에 대해 유족은 '노 씨는 이미 섭취한 술과 수면제의 복합 작용 등으로 인해 자유로운 의사결정능력이 없게 된 상태에서 과량의 약물을 복용해 사망에 이르렀고, 그렇다면 노 씨의 사망은 우발적인 외래의 사고에 해당한다'며 동양생명을 상대로 보험금 청구 소송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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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의 2심 재판을 맡았던 서울중앙지법 제3-1 민사항소부[재판장 석준협 부장판사]는 최근 동양생명의 항소를 기각하고 '동양생명은 유족에게 보험금 1억원을 지급하라'고 판시한 1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했다고 밝혔습니다.2)

재판부는 「노 씨는 사망 전날 옛 직장동료들과 만나 모임을 갖는 등 평범한 시간을 보냈고, 유서를 남기지 않았다」며 「노 씨가 불면증뿐만 아니라 다소간의 고혈압, 알코올중독, 우울증 등을 겪고 있기는 했으나 일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었고, 그 무렵 삶에 대한 애착을 잃을 정도의 특별한 동기가 있었다고 밝혀진 바도 전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비록 노 씨의 사망 당시 혈중알코올농도가 경도의 명정상태에 해당하는 수치인 0.144%로 측정되기는 했으나, 사망 추정 시각과의 간극 등을 고려해 계산하면 여관 투숙 무렵의 혈중알코올농도는 약 0.2%로서 당시 이미 중등의 명정상태(사고력이 떨어지고 판단능력이 저하됨)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습니다. 

아울러 「노 씨는 이미 술을 마신 상태에서 2종의 수면제를 정량 이상으로 복용한 후 외출했으므로, 약물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블랙아웃에 빠졌을 개연성이 있고 그 바람에 복용법을 준수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결국 노 씨는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의도치 않게 수면제를 과다복용해 사망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습니다. 

임용수 변호사의 케이스메모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보험계약에서 보험금의 지급 대상이 되지 않는 '고의 사고'는 사망자가 자기의 생명을 스스로 끊어 사망의 결과를 발생하게 한 행위를 말하고, 피보험자가 정신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사망의 결과를 발생하게 한 경우까지 포함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피보험자가 정신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사망의 결과를 발생하게 한 경우, 사망의 결과를 발생하게 한 직접적인 원인행위가 외래의 요인에 의한 것이라면 그 보험사고는 피보험자의 고의에 의하지 않은 우발적인 사고로서 '재해'에 해당한다고 봐야 합니다.

피보험자가 치사량의 수면제 등 약물을 복용하고 급성중독으로 사망한 사안들의 경우, 치사량의 약물을 복용했다는 사정을 중요하게 여겨 보험사의 면책사유(고의 사고)에 해당한다고 판시하는 판결들도 있지만, 재해[상해] 사망보험금을 지급하라고 판시하는 판결들도 있습니다.

이같은 사례에서는 사고 당시 피보험자가 명정상태, 정신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약물을 과다 복용했는지 여부가 중요한 판단 기준 중 하나인 것 같아 보이지만, 반드시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피보험자가 혈중알코올농도 0.0785%의 음주 상태에서 졸피뎀을 과다 복용하고 사망한 사건에서 법원은 피보험자의 고의에 의한 것으로 추정해야 한다며 보험사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반면 피보험자가 음주 상태에서 여러 약물을 혼합 복용한 뒤 집에서 자다가 사망한 사안에서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3곳의 병원과 약국에서 처방받은 약을 한꺼번에 투약함으로써 그 부작용으로 사망에 이른 것으로 추정될 뿐,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치기 위해 다량의 약물을 투약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시한 사례도 있습니다. 이런 유형의 사건은 판사의 가치관과 재량에 전적으로 좌우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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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 등록일 : 2022년 10월 30일

1) 호칭의 편의상 피보험자에 대해 원고의 성 씨를 사용합니다.
2) 동양생명의 항소 포기로 확정된 판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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