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약 또는 법률의 규정에 의해 당사자의 일방이나 쌍방이 해지 또는 해제의 권리가 있는 때는 그 해지 또는 해제는 상대방에 대한 의사표시로 해야 합니다.1) 따라서 보험사의 약관 조항(계약전 알릴의무위반의 효과) 및 상법 제651조(고지의무위반으로 인한 계약해지)에 의해 해지권이 있는 보험사는 계약 상대방인 보험계약자나 그의 상속인에 대해 해지의 의사표시를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험사가 보험계약자나 그의 상속인이 아닌 보험수익자에 대해 고지의무위반을 이유로 보험계약을 해지하거나 보장을 제한한다는 취지의 의사표시를 통지했다면, 그런 계약 해지나 보장 제한도 효력이 있을까요?
최근 선고된 대법원판결 중에 보험사가 사망한 보험계약자(망인)의 상속인이 아닌 보험수익자(손 모 씨)에게 '고지의무위반'을 이유로 보험금 지급 제한 통지를 한 것은 적법하지 않다고 본 사례가 나왔습니다. 이 사례를 소개하고 간단한 해설을 덧붙입니다.
【사건 개요】
망인은 2020년 12월 처브라이프생명과 사이에 자신(피보험자)이 사망할 경우 보험기간 만료일까지 매월 132만 원을 지급하는 내용의 사망보험(이하 '사망보험')에 가입했고, 이와 별도로 자신의 사망 시에 1억1000만 원을 보장하는 내용의 추가 계약(이하 '추가 계약')도 체결하며 보험수익자를 손 씨로 지정했습니다.
망인은 2021년 3월 포터 화물차를 운전하다가 우측 도로변 휴게소에 주차 중인 차량을 충격하는 사고를 냈고, 그 사고로 인해 다발상 손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사망했습니다. 이에 손 씨는 2021년 4월 처브라이프생명에 사망보험과 추가 계약에서 정한 보험금을 청구했습니다.
하지만 처브라이프생명은 20일이 지난 즈음에 손 씨에게 보험금 지급이 1억 원 한도 내로 제한됨을 알린 뒤 추가 계약에서 정한 보험금 1억 원만 지급했습니다. '망인이 보험계약 체결 당시 고지의무(계약전 알릴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망인은 보험계약 당시 보험청약서에 자신의 구체적인 업무를 '대표(사무직), 사무'라고 기재했고, '현재 운전 중인 차종'에는 '승용차(자가용)'만 선택했으며 '화물차(영업용)'는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망인은 실제로는 2006년부터 창호 제조업체를 운영했고, 2011년 11월부터 화물차를 소유·운전하고 있었습니다.
손 씨는 사망보험에 따라 일시금으로 계산한 금액인 2억8000여만 원을 달라며 처브라이프생명을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손 씨는 "처브라이프생명이 계약자의 고지의무위반이 있다는 사실을 안 날부터 1개월 이내에 보험계약자인 망인의 상속인에 대해 보장 제한의 의사표시를 했어야 함에도 이를 지키지 못했으므로 보장 제한 의사표시의 효과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법원 판단】
[1] 1심 판결: 원고패소
1심은, 손 씨의 청구를 기각하며, 처브라이프생명이 2021년 4월 27일경 전화 통화로 '보험수익자'인 손 씨에게 망인의 고지의무위반을 이유로 보장 제한을 하고 이를 구두로 통지한 것은 적법하다고 판시하면서, "① 계약자는 대부분의 경우 상해시 보험수익자이므로 보험계약 약관에서 보장 제한 의사표시를 수령할 상대방으로 정한 '계약자'라는 문구는 '계약자'와 '보험수익자'를 아우르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고, 이 사고가 사망사고인 이상 계약자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보험수익자인 손 씨에게 보장 제한의 의사표시를 해야 하며,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약관의 취지에 반하지 않고, ② 보험수익자를 상속인이 아닌 제3자로 지정한 경우 보험금 수령권한은 오직 보험수익자에게만 있고, 상속인은 보험계약과는 이해관계가 없고 보험계약에 드러나지도 않으며, 보험사의 보장 제한의 통지 기한이 1개월로 매우 짧다는 것을 고려하면, 상속인을 특정하고 소재지를 탐문하는 것이 어렵거나 상속인이 처브라이프생명의 의사표시 수령을 거부할 가능성도 있음에도 제척기간 내에 상속인을 정확하게 파악해 상속인에게 그 의사표시를 하도록 의무를 지우는 것은 보험사에게 지나치게 가혹하며, ③ 손 씨가 들고 판례는 이 사건과 사안을 달리하므로 참고할 대상이 아니다"라는 이유를 들었습니다.2)
[2] 2심(항소심) 판결 : 원고 항소기각
항소심은 손 씨의 항소를 기각하며, 고지의무위반의 효과에 의한 보장 제한 의사표시의 상대방이 보험수익자인 손 씨가 아니라 계약자의 '법정상속인'에게 한정된다는 손 씨 주장에 대해, 처브라이프생명이 2021년 4월 27일 전화 통화로 보험수익자인 손 씨에게 보장 제한의 의사표시를 구두로 한 것은 적법하다고 판단했습니다.3) 보험계약상 보험금 수령 권한은 망인의 상속인이 아닌 손 씨에게 있고, 보험사 입장에서 망인의 계약자 지위를 상속할 상속인의 존부도 확인되지 않는 이상 보험수익자인 손 씨에게 보장 제한의 의사표시를 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약관의 취지에도 반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재판부는 이어 "대부분 보험계약에서 정한 보험사의 보장 제한의 통지 기한이 1개월로 매우 짧다는 것을 고려하면, 상속인을 특정하고 소재지를 탐문하는 것이 어렵거나 상속인이 보험사의 의사표시 수령을 거부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기한 내에 상속인을 정확하게 파악해 상속인에게 의사표시를 하도록 의무를 지우는 것은 보험사에게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손 씨의 주장과 같이 보장 제한 또는 보험 해지의 의사표시 상대방을 계약자로 한정해 해석해야만 한다면 상속인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 보험사는 계약자의 고지의무위반 등이 확인된 경우에도 계약자가 사망한 이후에는 보험 제한 또는 보험 해지를 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러 부당하다"고 덧붙였습니다.
[3] 대법원 판결: 파기환송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대법원 민사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손 씨가 처브라이프생명보험을 상대로 낸 보험금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4)
재판부는 "생명보험계약에 있어서 고지의무위반을 이유로 한 해지의 경우에 그 계약의 상대방 당사자인 보험계약자나 그의 상속인에 대해 해지의 의사표시를 해야 하고 타인을 위한 보험에 있어서도 보험수익자에게 해지의 의사표시를 한 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효력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처브라이프생명이 손 씨에게 보험계약 약관에 따른 보장 제한의 의사표시를 한 것은 실질적으로 약정된 보험금 중 보장 제한으로 지급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 보험계약을 해지한 것에 해당한다"며 "해지의 의사표시는 보험계약자인 망인의 상속인에 대해 이뤄져야 하고, 이와 달리 보험수익자인 손 씨에게 해지의 의사표시를 한 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효력이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면서 "원심은 특별한 사정의 존재가 엿보이지 않는데도 처브라이프생명이 보험수익자인 손 씨에게 보장 제한의 의사표시를 한 것이 적법하다고 판단했으니, 이런 원심의 판단에는 고지의무위반으로 인한 보험계약 해지 또는 보험계약 약관의 해석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으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고, 이를 지적하는 취지의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 보험계약의 해지권과 보장 제한은 모두 형성권이고, 이들의 행사기간은 제척기간입니다. 보험계약자의 고지의무위반을 이유로 한 계약 해지 또는 보장 제한의 의사표시는 재판상이든 재판외이든 그 기간 내에 행사하면 되는 것이나 그 의사표시는 민법의 일반원칙에 따라 보험계약의 상대방인 보험계약자 또는 그 대리인에게 해야 하고, 보험계약자가 사망한 때는 그의 상속인[또는 그의 대리인]에게 해야 하며, 상속인이 없는 때는 그 재산관리인에게 해야 합니다.5) 앞서 소개한 대법원 판결은 피보험자나 보험수익자는 해지의 상대방이 아니므로 그들에 대한 해지의 의사표시는 효력이 없다는 취지의 종전 대법원 판례6) 법리를 재확인한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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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대법원 1989. 2. 14. 선고 87다카2973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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