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직으로 인한 무직 ... 위험변경증가로 직업변경 통지의무 대상이 될까



보험사들은 피보험자의 직업 및 직무 내용에 따라 직업급수를 구분하고 보험료 등을 달리 책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직업 및 직무 수행의 위험도 차이로 인해 보험사고 발생 가능성이 달라질 수 있음을 고려한 것입니다. 보험사들의 약관에는 계약자 또는 피보험자는 계약을 맺은 후 피보험자가 그 직업 또는 직무를 변경한 경우에는 지체 없이 서면으로 보험사에 알려야 하고(이하 '계약 후 알릴 의무'), '뚜렷한 위험의 증가'와 관련된 계약 후 알릴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을 때는 손해의 발생 여부에 관계 없이 보험계약을 해지할 수 있고 계약의 해지가 손해 발생 후에 이뤄진 경우에는 변경 전 요율의 변경 후 요율에 대한 비율에 따라 보험금을 삭감해 지급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피보험자의 직업 변경과 관련된 통지의무(계약 후 알릴 의무) 위반 여부가 소송에서 주된 쟁점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중에는 보험계약 당시 대학생이었던 피보험자가 취업한 사실을 보험사에 알리지 않았더라도 보험사는 통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보험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고 본 판례가 있습니다.1) 

이와 달리 사무직 종사자가 정년퇴직으로 무직이 된 사실을 보험사에 알리지 않은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요? 보험계약 당시의 피보험자(김 모 씨)의 직업이 다른 종류의 직업으로 바뀌면 보험사에 꼭 알려야 하지만, 정년퇴직으로 직업을 소극적으로 상실한 경우 즉 무직이 된 경우까지 통지할 의무가 있다고 할 수 없고 무직이 된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통지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사례가 최근에 나와 이를 소개합니다. 




【사건 개요】

김 씨는 2016년 3월 케이비손해보험과 사이에 김 씨를 피보험자 및 수익자로 하는 보험계약을 체결했는데, 보험계약 당시 김 씨가 케이비손해보험에게 고지한 직업은 '보건의료 관련 사무직 관리자'였습니다.

김 씨는 2023년 4월 뇌졸중으로 진단받았고, 케이비손해보험은 2023년 7월 김 씨에게 뇌졸중진단비 등 보험계약에 따른 보험금을 지급했습니다.

케이비손해보험은 김 씨에게 보험금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김 씨가 정년퇴직한 사실을 알게 되자, 김 씨에게 '김 씨는 보험계약을 체결한 후 직업이 무직으로 변경된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통보했습니다. 이후 김 씨의 직업 변경에 따라 보험료가 증액돼야 하므로 이에 대해 서면으로 동의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김 씨는 케이비손해보험의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케이비손해보험은 2023년 8월 김 씨에게 통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보험계약을 해지한다고 통보했고, 같은 날 김 씨에게 해지환급금을 지급했습니다.

이에 김 씨는 "정년퇴직으로 인해 무직이 됐다 하더라도 상해 위험이 증가했다고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정년퇴직으로 인해 무직이 되면 상해 위험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알 수도 없었으므로, 케이비손해보험의 보험계약 해지는 무효"라며 소송을 냈습니다.




【법원 판단】

재판을 담당한 광주지법 민사11부[재판장 유상호 부장판사]는 김 씨가 케이비손해보험을 상대로 낸 보험에 관한 소송에서 "케이비손해보험의 보험계약 해지는 무효임을 확인한다"며 김 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재판부는 "제출된 자료들만으로는 남성 사무직에서 남성 무직으로 직업이 변경되는 경우 질병 발생이나 극단적 선택의 증가 등 상해 위험이 증가한다고 볼 만한 구체적인 근거를 확인할 수 없는 데다, 사무직에서 무직으로 직업이 변경되는 경우 교통수단을 덜 이용해 교통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줄어들거나 업무상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돼 질병 발생률이 감소하는 등 오히려 상해 위험이 낮아진다고 볼 여지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설령 사무직에서 무직으로 직업이 변경되는 경우 상해 위험이 증가되는 것으로 본다 하더라도 케이비손해보험이 김 씨에게 정년퇴직으로 인해 직업이 무직으로 변경되면 상해 위험이 증가된다는 사실을 설명했다는 사실이 인정되지 않고, 달리 김 씨가 무직으로 직업이 변경되는 경우 상해 위험이 현저하게 증가된다는 점을 알았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면서 "김 씨가 정년퇴직으로 인해 직업을 상실한 사실을 통지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는 상법상의 통지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케이비손해보험이 이를 이유로 보험계약을 해지할 수는 없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또 '김 씨가 종전에는 통지의무를 이행해야 함을 알지 못했더라도 케이비손해보험이 김 씨의 직업 변경을 인지해 김 씨에게 통지의무 절차 이행 및 보험료 재산정을 요구했을 당시에는 김 씨가 명백하게 이를 인지했음에도 통지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케이비손해보험의 주장에 대해서는 "보험사고 발생 후 케이비손해보험이 이미 인식하고 있는 내용을 김 씨가 케이비손해보험에게 통지할 의무가 있다고 볼 수는 없다"며 이와 다른 전제에 선 케이비손해보험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보험기간 중에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사고 발생의 위험이 현저하게 변경 또는 증가된 사실을 안 때는 지체 없이 보험사에게 통지해야 합니다.2) 여기서 '사고 발생의 위험이 현저하게 변경 또는 증가된 사실'이란 그 변경 또는 증가된 위험이 보험계약의 체결 당시에 존재하고 있었다면 보험사가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거나 적어도 그 보험료로는 보험을 인수하지 않았을 것으로 인정되는 사실을 말하고, '사고 발생의 위험이 현저하게 변경 또는 증가된 사실을 안 때'란 사고 발생의 위험과 관련된 특정한 상태의 변경이 있음을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상태의 변경이 사고 발생 위험의 현저한 변경·증가에 해당된다는 것까지 안 때를 의미합니다.3) 

이 사례의 경우, 피보험자의 나이에 비춰 멀지 않은 장래에 정년퇴직으로 직업을 상실하게 될 것임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계약이 체결된 이후 보험계약이 장기간 유지된다면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로서는 피보험자의 신상에 변동이 있더라도 통지의무를 간과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보험사로서는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에게 적어도 통지의무를 안내 혹은 설명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어야 함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보험사에서는 '무직'도 직업으로 분류하고 있지만, 일반인의 관점에서는 '무직'을 정년퇴직으로 직업에 종사하게 된 경우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직업의 국어사전적 의미는 '개인이 사회에서 생활을 영위하고 수입을 얻을 목적으로 한 가지 일에 종사하는 지속적인 사회활동' 또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해 종사하는 일'을 뜻하는데, '무직'을 생활을 영위하고 수입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활동 또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종사하는 일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보험법의 법리에 부합하는 판결입니다. 케이비손해보험이 항소하지 않아 판결이 확정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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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 등록일 : 2025년 4월 5일

1) 같은 취지: 대법원 2014. 7. 24. 선고 2013다217108 판결.
2) 상법 제652조 제1항.
3) 대법원 2014. 7. 24. 선고 2013다217108 판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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