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험사들의 약관에는 '계약 전 알릴 의무 위반의 효과'로 보험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① 보험설계사 등이 계약자 또는 피보험자에게 고지할 기회를 주지 않은 경우, ② 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사실대로 고지하는 것을 방해한 경우, ③ 계약자 또는 피보험자에게 사실대로 고지하지 않게 했거나 부실한 고지를 권유한 경우에는 보험계약을 해지할 수 없고, 다만 보험설계사 등의 행위가 없었다 하더라도 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사실대로 고지하지 않거나 부실한 고지를 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만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고의 또는 중과실로 중요한 사실에 대해 사실과 다르게 알린 경우라고 하더라도 보험설계사 등의 고지 방해 행위나 미고지·부실 고지의 권유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보험사는 보험계약을 해지할 수 없습니다.
최근 판례 중에 보험설계사(박 모 씨)1)가 보험계약 당시 피보험자(김 모 씨)의 병력 고지를 방해했다면 이를 이유로 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고 판단한 법원 판결이 있습니다.
【사건 개요】
김 씨는 지난 2023년 11월 보험설계사 박 씨를 통해 흥국화재 및 흥국생명과 사이에 보험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에 앞서 김 씨가 보험계약 청약 당시 보험설계사 박 씨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박 씨에게 "4년 전쯤에 혈압 진단을 받고 한 달 치 혈압약을 처방 받은 사실이 있다"고 말하자, 박 씨는 "'아니오' 하고 넘어가 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김 씨가 그래도 되는지 묻자 박 씨는 "네, '아니오' 하고 넘어가 주세요"라고 재차 말했습니다. 이어 보험설계사인 박 씨가 "혈압으로 일단 한 번 진단 4년 전에 진단 받으시고", "약 처방 받으셨는데 그 이후로는 안 가셨다는 거잖아요?"라고 말하자, 김 씨는 그렇다고 하면서도 "그래도 상관없겠습니까? 나중에 혹시나 잘못되면 아니 괜찮을까"라고 물었는데, 박 씨는 "네네네. 일단 넘어가 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김 씨는 이튿날 병원에서 급성 심근경색 진단을 받았고 그때부터 6일간 입원·수술 등의 치료를 받고 관련 보험금을 청구했습니다.
하지만 보험사들은 "김 씨가 과거 고혈압 및 고지질혈증 등을 진단 받아 고혈압약을 처방 받은 사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알리지 않아 '계약 전 알릴 의무 사항'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보험계약을 해지하고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김 씨는 "담당 보험설계사였던 박 씨에게 자신의 병력을 모두 알렸고 그럼에도 박 씨는 김 씨가 사실대로 고지하는 것을 방해했으므로 보험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며 보험금 지급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습니다.
【법원 판단】
서울중앙지법 민사21단독 구자광 판사는 김 씨가 흥국화재, 흥국생명 등 보험사 2곳을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했다고 밝혔습니다.
구자광 판사는 "김 씨가 2020년 3월 고혈압 및 고지질혈증 진단을 받고 고혈압 약을 처방 받은 사실을 고지하지 않았음은 인정된다"면서도 "그러나 이는 보험설계사의 적극적인 고지 방해 때문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김 씨가 보험설계사의 고지 방해 행위가 없었다 하더라도 고혈압·고지질혈증 진단 및 고혈압 약 처방 사실을 사실대로 고지하지 않거나 부실의 고지를 했을 것이라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덧붙이며 흥국화재 및 흥국생명은 김 씨에게 진단비와 수술비 등 총 2800만 원(흥국화재 2500만 원 + 흥국생명 350만 원)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 보험설계사에게는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보험사에 대해 하는 고지나 통지를 수령할 권한이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2) 따라서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보험계약 당시 보험설계사에게 계약 전 알릴 의무사항에 속하는 과거 병력을 구두로 알렸다고 하더라도 그런 사실만으로 고지의무를 이행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보험설계사는 고지수령권이나 통지수령권은 없다고 하더라도,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에게 질문표 등을 통해 고지할 기회는 부여해야 합니다. 고지할 기회를 아예 부여하지 않았거나 고지 방해 행위, 미고지나 부실 고지 권유행위가 있었다면 보험사는 보험계약을 해지하거나 보장을 제한할 수 없습니다. 흥국화재 및 흥국생명이 이 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제기했고, 현재 서울중앙지법 항소부에 사건이 계속 중인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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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및 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