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가 탈곡작업 등 밭농사 돕다 사고 나면 상해보험금 받을 수 있을까



보험 가입자는 보험 가입 후 직업이나 직무가 변경되면 그 사실을 보험사에 반드시 알려야 하는 의무(계약 후 알릴의무)가 있습니다. 계약 후 알릴의무(통지의무)란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보험계약을 맺은 후에 피보험자의 직업·직무 변경 혹은 보험목적물의 상태나 용도 변경 등과 같은 중요한 사항의 변경이 생길 경우 이를 보험사에 통지해야 하는 의무를 말합니다. 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보험금이 감액되거나 지급되지 않을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계약이 해지되는 등의 불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보험계약에 적용되는 직업분류표 및 상해위험등급에 의하면 전업주부는 1급, 작물재배 농업인 등은 2급입니다. 1급의 경우 위험도가 가장 낮고 3급의 경우 위험도가 가장 높습니다. 상해보험의 경우 전업주부가 보험 가입 후 농업인으로 직업이 바뀐 후 이를 알리지 않고 농사일을 하다 사고가 발생한 경우, 보험사는 위험이 증가한 상황을 반영해 보험계약을 해지하고 보험금의 일부만 지급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전업주부가 보험계약을 맺은 후 남편의 밭농사를 돕다가 중상해를 입은 경우 직업변경을 안 알렸어도 상해보험금을 받을 수 있을까요. 전업주부(최 모 씨)가 남편과 딸의 탈곡작업을 돕다가 왼쪽 손목이 절단되는 중상을 입고 보험금을 청구한 사안에서, 법원은 피보험자의 직업 변경 사실을 부인하고 계약 후 알릴의무 위반을 이유로 한 보험사의 보험금 감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사건 개요】

최 씨는 2016년 3월 케이비손해보험과 사이에 자신을 피보험자로 하는 상해보험에 가입하면서, 직업을 '전업주부'로 고지했습니다.

최 씨는 2023년 11월 주거지 앞 텃밭에서 배우자 및 딸의 탈곡작업을 도와주던 중 좌측 손이 탈곡기에 말려들어가 좌측 손목 외상성 절단 사고를 당했습니다.

최 씨는 병원에서 20일간 입원치료를 받은 후, 케이비손해보험에게 보험사고 발생으로 인한 보험금을 청구했지만, 케이비손해보험은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고 '상법 제652조와 보험계약 약관에서 정한 계약 후 알릴 의무 위반을 이유로 보험계약을 해지한다'고 통보했습니다. 이에 최 씨는 케이비손해보험을 상대로 보험금 지급을 구하는 소송을 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케이비손해보험은 "최 씨가 보험계약 가입 당시에 주부로 직업을 고지했으나, 최 씨가 2017년 4월 농업인 안전재해보험에 가입한 점에 비춰 보면, 보험기간 중인 2017년 4월부터 실제 농업에 종사하게 되면서 농업인으로 직업이 변경됐고, 따라서 보험계약은 해지됐으며, 최 씨에게 지급될 보험금은 보통약관이 정한 직업 변경 전에 적용된 보험요율의 직업 변경 후에 적용해야 할 보험요율에 대한 비율에 따라 감액된 금액뿐"이라고 항변했습니다. 이에 대해 최 씨는 "보험계약 체결 이후 단지 배우자의 농업 관련 일손이 부족할 경우 부수적인 일을 도와줬을 뿐이고, 사고 역시 주거지 앞 텃밭에서 배우자와 딸의 탈곡작업을 도와주던 중 발생한 것으로서, 보험계약 체결 이후부터 현재까지 자신의 직업은 전업주부였고 농업인으로 직업이 변경된 것이라 볼 수 없다"고 다퉜습니다.




【법원 판단】

서울중앙지법 민사84단독 김홍도 판사는 최 씨가 케이비손해보험을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 소송에서 "케이비손해보험은 최 씨에게 3200여만 원을 지급하라"며 최 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1)

김홍도 판사는 보험계약 이후 최 씨의 직업이 변경됐는지 여부와 관련해 "약관상 '계약 후 알릴 의무' 또는 상법상 '위험증가에 따른 통지의무'가 인정되는 직업 또는 직무의 변경은, 보험계약 체결 당시 보험계약자가 변경 후의 직업 또는 직무에 종사하고 있었다면 보험사가 보험계약을 체결하지 않았거나 적어도 그 보험료로는 보험을 인수하지 않았을 것으로 인정되는 정도의 것을 말하고, 이런 직업 또는 직무의 변경은 보험계약 체결 이후에 일어난 것이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 농업인 안전재해보험 가입 사실만으로 직업변경 됐다고 인정 못해

이어 "최 씨가 2017년 4월 농업인 안전재해보험에 가입한 사실은 인정되나, 그 보험이 농업인이면 누구나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강제보험이 아닌 이상 보험 미가입자라 해서 농업인이 아니라고 추단할 수 없고 보험 가입자라 하더라도 그 가입한 무렵에 비로소 농업인이 된 것이라고 추단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면서 "농업인 안전재해보험 가입 사실만으로 최 씨가 원래는 전업주부이다가 그 무렵에 농업인으로 직업을 변경하거나 추가하게 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고[계약 체결 당시에 이미 동일한 직업 활동에 종사하면서도 직업을 주부로만 고지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달리 보험계약 이후 최 씨의 직업이 전업주부에서 농업인으로 변경됐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이와 반대 전제에 선 케이비손해보험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케이비손해보험이 이 판결에 대해 항소 제기를 하지 않아 1심 판결이 2025년 2월 말 그대로 확정됐습니다. 

농업인이란 농업에 종사하는 개인으로서 ① 1천제곱미터 이상의 농지에서 농작물 또는 다년생식물을 경작 또는 재배하거나 1년 중 90일 이상 농업에 종사하는 자, 또는 ② 농지에 330제곱미터 이상의 고정식온실·버섯재배사·비닐하우스, 그 밖의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농업생산에 필요한 시설을 설치해 농작물 또는 다년생식물을 경작 또는 재배하는 자, ③ 대가축 2두, 중가축 10두, 소가축 100두, 가금(집에서 기르는 날짐승) 1천수 또는 꿀벌 10군 이상을 사육하거나 1년 중 120일 이상 축산업에 종사하는 자, ④ 농업경영을 통한 농산물의 연간 판매액이 120만 원 이상인 자를 말합니다(위 ① 내지 ④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를 말합니다).2)

그런데 이 사례의 경우 농지대장(구 농지원부)에 최 씨의 직업이 농업인으로 등재됐는지 여부가 확인된 바 없습니다. 농지대장이란 농지 소유 실태와 농지 이용 실태를 파악해 이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관리하기 위해 농지 소재지를 관할하는 시, 구, 읍, 면에서 작성해 비치하는 행정자료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최 씨의 탈곡작업을 '직업'으로 농업에 종사했다거나 농업인으로 직업을 변경했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한 이 판결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최 씨가 보험계약 체결 당시 이미 동일한 탈곡작업을 하면서도 직업을 주부로만 고지했을 가능성이 충분하고, 이 같은 경우 탈곡작업은 계약 전 알릴의무(고지의무) 대상이 되는지 여부가 문제될 수 있을 뿐, 계약 후 알릴의무(통지의무)의 대상은 될 수 없습니다. 


  • 최초 등록일 : 2025년 3월 12일

1) 2025년 2월 28일 확정된 판결입니다.
2) 농업법 제2조 제2호, 농업법시행령 제3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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