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의 보험사에 피보험자가 여러 개의 보험계약을 체결한 경우, 피보험자가 직업 변경으로 인한 위험 증가 사실을 보험회사에 알릴 때 어떤 보험계약에 대한 내용인지 특정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통지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볼 수 있을까요. 대법원은 최근 판결에서 '위험의 변경 또는 증가'와 관련한 통지의무를 이행했다고 봤습니다. 이 판결은 보험계약 약관에서 정한 직업 변경 통지의무와 관련해 처음으로 통지의무 이행 여부에 대한 명확한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사안 개요】
정 씨와 현대해상은 2006년 6월 김 씨1)를 피보험자로 하는 상해보험계약을 맺었습니다. 김 씨가 상해사고로 사망하거나 후유장해를 입은 경우 보험금을 지급받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시 김 씨의 직업은 경찰관이었습니다.
2015년 10월 김 씨는 일반 경찰관에서 화물차 운전기사로 직업을 바꿨고, 2년 뒤인 2017년 10월 정 씨는 현대해상과 사이에 김 씨를 피보험자로 하는 운전자보험계약을 맺었습니다. 현대해상이 새로 발급한 운전자보험증권에 김 씨의 직업이 '경찰관'으로 기재돼 있는 것을 확인한 정 씨는 현대해상 소속 보험설계사에게 김 씨의 직업이 화물차운전사로 바뀌었다고 알렸습니다. 이에 현대해상은 김 씨의 직업을 '6종건설기계운전자'로 변경하고 운전자보험료를 증액했고, 정 씨는 2017년 11월(최초 납입 : 2017년 10월분)부터 변경된 보험료를 납부했습니다.
김 씨는 2018년 9월 교통사고를 당해 경추척수 등 상해를 입었고 사지마비, 신경인성 방광, 배변장애 등의 후유장해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후 정 씨가 현대해상에 보험금을 청구했으나, 현대해상은 정 씨가 '직업변경 사실 통지의무를 위반했다'며 1억1700여만 원의 보험금을 감액해 지급한다고 통지했습니다. 상해보험 약관에는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직업을 변경했을 경우 즉시 보험사에 이를 알려야 한다'고 적혀 있는데, 정 씨가 즉시 알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약관에는 '직업 변경 사실을 즉시 알리지 않았을 경우 직업이 변경된 후 적용해야 할 보험요율이 직업이 변경되기 전 적용된 보험요율보다 높을 때는 보험금을 삭감해 지급한다'고 기재돼 있었습니다. 정 씨는 현대해상의 보험금 감액 지급은 부당하다며 소송을 냈습니다.
【법원 판단】
[1] 1심 판결 : 원고승소
1심은 '계약 후 알릴 의무'를 이행했다고 판단하고 정 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2) 1심은 "정 씨가 김 씨의 직업 변경 사실을 현대해상에 통지해 운전자보험의 보험료를 변경한 2017년 10월경 정 씨가 '계약 후 알릴 의무'를 이행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어 "정 씨가 직업변경 사실을 알린 보험설계사는 정 씨와 수십 년 동안 알고 지낸 사이로 김 씨가 경찰관이었고 운전자보험 외에 상해보험계약이 체결됐다는 사정을 알고 있었다"며 "약관상 '알릴 의무' 규정의 취지를 고려하더라도 이 사건과 같이 명시적인 직업변경 사실 통지가 보험사에게 도달해 보험사가 직업변경을 이유로 한 각종 조치를 취한 경우에까지 다시 서면으로 보험계약을 특정해 직업변경 사실을 통지할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고 부연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정 씨가 알릴 의무를 이행한 이상 현대해상은 알릴 의무 위반을 이유로 한 보험계약 해지 및 삭감을 주장할 수 없다"며 "현대해상은 정 씨에게 보험계약에 정해진 보험금 전액에서 이미 지급한 금액을 공제한 나머지 1억1700여만 원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2] 2심 판결 : 원고패소
그러나 항소심은 정 씨가 통지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3) 운전자보험 체결 업무를 담당한 보험설계사에게 직업 변경 사실을 이야기한 것만으로는 상법이나 보험 약관이 규정하고 있는 '위험의 변경 또는 증가'와 관련한 통지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3] 대법원 판결 : 원심판결 파기환송
대법원 민사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정 씨가 현대해상을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4)
대법원은 정 씨가 '위험의 변경 또는 증가'와 관련한 통지의무를 이행했다고 봤습니다. 재판부는 "하나의 보험회사에 대해 피보험자가 여러 개의 보험계약이 체결돼 있는 경우 여러 개의 보험계약에 관해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위험변경증가 통지의무를 이행했는지 여부는 보험회사와 사이에 체결된 보험계약의 내역,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보험회사에 알린 내용과 알리게 된 경위, 이후 보험회사의 처리경과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고 전제했습니다.
이어 "정 씨로서는 담당 보험설계사에게 직업 변경 사실을 통지하면서 운전자보험과 피보험자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상해보험에 관해서도 현대해상에게 통지가 이뤄졌다고 믿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정 씨가 김 씨의 직업변경 사실을 알릴 당시 운전자보험만을 특정한 것으로 보이지 않으며, 피보험자의 직업변경을 상해보험을 제외한 채 운전자보험에 한해서만 통지할 이유도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현대해상이 보험설계사로부터 김 씨의 직업변경 사실을 전달받아 이를 인식하게 됐고,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보유, 관리하고 있는 내부 자료에 전달받은 내용을 입력해 문서화한 이상, 정 씨가 서면으로 알리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정 씨의 직업변경에 관한 통지 효력에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원심은 정 씨가 상법이나 보험약관이 규정하고 있는 '위험의 변경 또는 증가'와 관련한 통지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이런 원심 판단에는 위험변경증가 통지의무 또는 계약 후 알릴 의무의 이행 여부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음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 보험기간 중에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사고 발생의 위험이 현저하게 변경 또는 증가된 사실을 안 때는 지체 없이 보험사에게 통지해야 하고, 보험사가 위험변경증가의 통지를 받은 때는 1월 안에 보험료의 증액을 청구하거나 계약을 해지할 수 있습니다. 이때 하나의 보험회사에 대해 피보험자가 동일한 여러 개의 보험계약이 체결돼 있는 경우 여러 개의 보험계약에 관해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위험변경증가 통지의무를 이행했는지 여부는 보험회사와 사이에 체결된 보험계약의 내역,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보험회사에 알린 내용과 알리게 된 경위, 이후 보험회사의 처리경과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해 판단해야 합니다. 이런 법리는 피보험자의 직업이나 직무에 따라 적용해야 할 보험요율에 차이가 있는 상해보험 약관에서 피보험자가 보험계약 체결 후 직업 또는 직무를 변경하는 경우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가 보험자에게 그 사실을 알리도록 규정하고 있는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사례는 하나의 보험회사에 피보험자가 동일한 여러 개의 보험계약이 체결된 경우 위험변경증가의 통지의무 이행 여부에 대한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선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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