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사의 오진으로 담낭암이 악화되는 바람에 환자가 사망한 경우 유족은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받을 수 있을까요? 의사의 담낭암 진단이 늦어 제때 치료 못해 환자(이 모 씨)1)가 사망했다면 약관에서 정한 '재해'에 해당하므로 재해사망보험금이 지급돼야 한다고 판단한 항소심 판결이 최근 나왔습니다. 임용수 보험전문변호사가 판결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해설합니다.
【사건 개요】
이 씨는 2003년 9월 우체국(대한민국)이 출시한 재해안심보험에 가입했습니다. 이 보험계약에 따르면 평일 발생한 재해로 인해 사망했을 때 3000만 원, 휴일 발생한 재해로 인해 사망했을 때 5000만 원의 보험금을 보험수익자(남편)에게 지급합니다. 그리고 '재해'에 대해 '우발적인 외래의 사고로서 약관 별표에 있는 재해분류표에 따른 사고'라며 외과적 및 내과적 치료 중 환자의 재난(분류번호 Y60–Y69)이 '재해'의 범위에 포함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중 Y66의 제목은 '외과적 및 내과적 치료의 불이행[조기 중단]'입니다.
이 씨는 2018년 6월 종합 검진 결과 '다수의 담낭 용종, 총담관 확장(1.5cm), 담낭팽창' 진단을 받았고 약 5개월 뒤 D병원에서 복부CT 검사 결과를 받았는데 의료진은 이 씨에게 담낭 절제를 권고했습니다.
이 씨는 그해 11월 말 D병원 CT영상 및 판독 결과를 지참해 E병원 소화기내과에 내원했습니다. E병원 의료진은 D병원 CT영상을 재판독하거나 추가 검사는 시행하지 않은 채 6개월 뒤 추적검사(복부 초음파)를 하기로 했습니다.
이 씨는 약 6개월 후인 2019년 5월 E병원에 다시 내원했습니다. E병원 의료진은 상복부 초음파 검사를 하고 D병원 CT영상을 재판독했는데, 담낭암이 의심된다는 소견을 밝혔습니다.
이후 E병원은 이 씨에 대한 췌담도 CT, 담췌관 내시경초음파, 자기공명담도조영술, PET-CT 등의 검사를 시행한 결과 말기 담낭암을 진단했습니다. 이에 E병원이 2019년 6월 담낭암을 절제하기 위한 수술을 시행했습니다. 하지만 복막에 전이된 것이 확인돼 담낭암을 근본적으로 절제하지는 못했습니다. 이 씨는 항암치료와 통증 조절 치료 등을 받다가 2019년 8월 담낭암의 악화로 사망했습니다.
유족들은 E병원을 운영하는 재단법인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E병원 의료진이 이 씨의 담낭암을 제대로 진단하지 못해 담낭암이 악화되는 것을 차단할 기회를 놓치게 한 과실이 있고, 그런 과실과 이 씨의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도 인정된다"며 의료과실을 인정하고 그 책임을 25%로 제한하는 내용의 일부인용 판결을 했고 그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습니다.
그 뒤 이 씨의 남편(원고, 이하 '유족')이 2022년 6월 우체국에 보험계약에 따른 재해사망보험금을 청구했습니다. 하지만 우체국은 이 씨의 사망이 보험계약에서 정한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유족은 대한민국을 상대로 보험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유족은 "E병원에서 담낭암을 제대로 진단하지 못해 이 씨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게 한 것이 '재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맞서 우체국은 그런 사정만으로 외래성 요건이 충족되지 않아 '재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주장했습니다.
【법원 판단】
[1] 1심 판결 : 원고일부승소
1심 법원인 서울북부지법은 유족의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다만 '재해 발생일'은 이 씨의 사망일인 토요일이 아니라 E병원 의료진의 진단상 과실이 발생한 수요일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므로 휴일재해사망보험금 5000만 원이 아닌 평일재해사망보험금 3000만 원이 적용돼야 한다며 대한민국은 유족에게 3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1심 법원은 "보험계약에서 이미 의료진의 부작위(외과적 및 내과적 치료의 불이행)도 '재해'에 해당할 수 있음을 예정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씨가 E병원에 내원했을 때 병원 의료진의 진단상 과실로 인해 이 씨가 사망이라는 결과가 발생한 것이므로 이는 결국 외부로부터의 작용에 의해 피보험자인 이 씨의 신체가 훼손된 사고, 즉 '재해'에 해당한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2] 2심 판결 : 우체국의 항소 기각
항소심 법원도 1심과 마찬가지로 유족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서울북부지법 민사4부[재판장 이동욱 부장판사]는 이 씨가 대한민국 우체국을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 소송의 항소심에서 우체국의 항소를 기각했다고 밝혔습니다.
2심 재판 과정에서는 1심에서 패소한 우체국이 "유족은 E병원에서 이 씨의 담낭암을 조기에 진단하지 못한 것이 보험계약상 보험금 지급사유 중 하나인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 중 분류번호 Y66 '외과적 및 내과적 치료의 불이행'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주장하지만, Y66['외과적 및 내과적 치료의 불이행']은 '외과적 및 내과적 치료의 조기 중단'만을 의미하고, 이는 의사가 어떤 진단을 전제로 그 질병이나 상처를 낫도록 하기 위해 치료행위에 '착수'했으나 이를 조기에 중단함으로써 치료 채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것을 의미할 뿐, '병을 진단하지 못한 경우'까지 포함하는 것이라 볼 수 없다"며 "따라서 E병원에서 망인의 담낭암을 진단하지 못한 것은 Y66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추가·강조했고, 이에 따라 재판부는 우체국의 추가 주장에 대해 판단을 했습니다.
재판부는 「분류번호 Y66이 정의하는 '외과적 및 내과적 치료의 불이행'을 우체국 주장처럼 '의료진의 치료 착수 후 치료가 더 가능함에도 조기에 중단한 경우'로만 의미를 한정한다면, '의사가 환자를 진단해 질병의 원인을 밝혔고 나아가 치료도 가능하나 고의나 과실로 치료를 중단하는 경우'를 상정하기란 지극히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약관의 조항의 뜻이 명백하지 않은 경우에는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에서 정한 바에 따라 고객에게는 유리하게, 약관 작성자에게는 불리하게 해석해야 한다」며 「'외과적 및 내과적 치료의 불이행'은 '의료진의 치료 착수 후 치료가 더 가능함에도 조기에 중단한 경우'로 가장 좁게 볼 것이 아니라 '의사가 환자의 질병에 대해 마땅히 해야 할 치료를 불이행하는 경우'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나아가 「설령 분류번호 Y66이 정의하는 '외과적 및 내과적 치료의 조기 중단'을 우체국의 주장대로 좁게 보더라도, 이 씨가 몸에 이상을 느껴 병원에 내원해 의료진의 진단을 받아 치료에 착수한 뒤 치료가 가능함에도 의료진이 2018년 11월 추가검사를 시행하지 않는 등 치료를 중단하는 바람에 이 씨의 질병이 악화돼 말기 담낭암으로 사망에 이르게 됐다」며 「이 경우를 '의료진의 치료 착수 후 치료가 더 가능함에도 조기에 중단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 우체국(대한민국)이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장을 제출한 상태인데요.
이 사례와 관련된 소송이라 할 수 있는 이 씨의 유족들과 E병원을 운영하는 재단법인 사이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도 판시한 바와 같이, E병원 의료진이 2018년 11월 D병원 CT영상을 재판독하거나 추가적인 정밀검사를 실시했다면 담낭암 또는 그로 진행할 가능성을 진단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실시하지 않아 이 씨로 하여금 담낭을 절제해 담낭암으로 진행하거나 담낭암이 악화되는 것을 차단할 기회를 놓치게 했다고 판단됩니다. 나아가 2018년 11월 E병원 의료진이 곧바로 담낭절제술을 시행했다면 담낭암이 악화돼 진행되지 않을 수 있었고, 사망이라는 결과를 피하거나 적어도 이 씨의 생존기간을 연장시킬 수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같은 점에 비춰 볼 때, 2018년 11월 E병원 의료진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당시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적어도 절제가 권고됐던) 이 씨의 담낭암에 대한 치료가 가능한 상황이었다고 보는 게 타당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병원 의료진이 6개월 동안이나 치료를 보류하거나 중단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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