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 임용수 보험전문변호사
☞ 보험계약 체결 2주 전 급성신우염으로 입원치료를 받은 사실과 보험계약 당일 백혈구, 혈소판 등 수치가 높게 확인된다는 소견이 기재된 진료의뢰서를 발급받은 사실이 있었으나, 보험청약서상의 '최근 3개월 이내에 의사로부터 진찰 또는 검사를 통해 의료행위를 받은 사실이 있느냐'는 질문에 거짓으로 '아니오'라고 답하며 이런 사실들을 고지하지 않은 보험 가입자(이하 '권 씨')에 대해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 거절이 정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사실관계】
권 씨는 보험회사인 현대해상과, 피보험자를 권 씨의 약혼자로, 보험수익자를 권 씨로 하는 보험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런데 약혼자는 보험계약이 체결되기 약 2주 전에 급성 신우신염으로 10여 일간 입원치료를 받았고, 보험계약 당일 약혼자가 의사로부터 발급받은 진료의뢰서에는 "백혈구와 혈소판 수치가 지속적으로 높게 확인돼 감염내과, 혈액내과 진료를 의뢰한다"라는 내용이 기재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권 씨는 보험계약 당시 현대해상에게 약혼자의 입원치료 사실 및 진료의뢰서 발급 사실을 고지하지 않았고, 약혼자는 보험계약 체결 약 4개월 후 상급병원에서 '만성기 만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후 권 씨가 보험금을 청구했지만, 현대해상은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하고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습니다. 이에 권 씨가 현대해상을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그러나 권 씨는 보험계약 당시 현대해상에게 약혼자의 입원치료 사실 및 진료의뢰서 발급 사실을 고지하지 않았고, 약혼자는 보험계약 체결 약 4개월 후 상급병원에서 '만성기 만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후 권 씨가 보험금을 청구했지만, 현대해상은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하고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습니다. 이에 권 씨가 현대해상을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한편 현대해상은 권 씨와 그의 약혼자, 담당 보험설계사를 보험사기방지특별법위반 혐의로 고소했지만, 권 씨와 약혼자는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고 담당 보험설계사에게는 무죄가 확정됐습니다.
【법원의 판단】
[1] 1심 판결: 원고승소(무변론판결)
권 씨(원고)는 보험계약 당일 담당 보험설계사에게 '약혼자가 급성신우염으로 입원 치료를 받은 사실'과 '병원에서 진료의뢰서를 발급받은 사실'을 모두 말했고, 현대해상 또한 입원치료 사실을 확인한 후 입원급여금 등 보험금을 지급했으므로 그때부터 1개월 이상이 지난 후에는 해지권 제척기간을 정한 약관 조항에 따라 계약을 해지하거나 보장을 제한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현대해상이 답변서 제출기간 내에 답변서를 제출하지 않았고, 1심 법원은 변론 없이 바로 판결선고기일을 지정한 후 '무변론'으로 (권 씨가 청구한) 1억 1000만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승소 판결했습니다.1)
[2] 원심(2심) 판결: 원고일부승소
2심에서는 권 씨가 보험계약 당시 약혼자의 입원치료 및 진료의뢰서 발급 사실 등을 알리지 않은 고지의무위반과 보험사고 발생 간에 인과관계가 존재하는지가 쟁점이 됐습니다.
권 씨는 "보험계약 당시 약혼자의 입원치료 사실과 진료의뢰서 발급 사실을 고지하지는 않았으나, 이는 이미 고지한 병력인 신우신염에 관한 것이므로 고지의무 위반에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볼 수 없고, 현대해상의 해지 통지는 1차 보험금(입원급여금 등) 청구를 통해 현대해상이 고지의무 위반 사실을 알게 된 때부터 1개월이 경과한 후에 이뤄진 것이어서 부적법하다"면서 "보험계약은 고지의무 위반으로 인해 해지됐다고 할 수 없고, 설령 이와 달리 보더라도 고지의무 위반과 보험사고의 발생 사이에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으므로 적어도 현대해상은 상법 제655조 단서에 따라 보험금을 지급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2심은, 보험계약이 권 씨의 고지의무위반으로 해지된 사실은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진료의뢰서상 약혼자의 백혈구, 혈소판 등 수치가 높게 확인된다는 기재가 있고 이런 증상이 만성 골수성 백혈병을 의심하는 지표 중 하나라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권 씨의 고지의무 위반과 보험사고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봤습니다. 이에 따라 「현대해상은 보험계약 해지에도 불구하고 상법 제655조 단서에 따라 권 씨에게 보험사고에 따른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암 진단금 1억 원만 인정하고 추가 청구한 입원급여금 등 1000만 원에 대해서는 보험금청구권의 발생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원고일부승소).2)
[3] 대법원 판결 : 원심판결 파기환송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2심은 권 씨의 고지의무 위반과 보험사고 발생 간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대법원 민사1부(주심 신숙희 대법관)은 기존 대법원 판례의 법리를 설시하면서, 백혈구 및 혈소판 수치의 지속적 증가는 만성 골수성 백혈병을 의심할 수 있는 주된 지표인 점, 약혼자는 진료의뢰서 발급 시점으로부터 4개월이 지난 뒤에야 만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는데 4개월 가량의 시간적 간격이 백혈구 및 혈소판 수치의 증가와 만성 골수성 백혈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전혀 인정할 수 없을 정도로 장기간이라고 볼 수 없는 점 등을 들어 권 씨의 고지의무위반 사실과 보험사고 발생 사이에 인과관계가 존재할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고, 이와 달리 판단한 원심을 파기·환송했습니다.3)
☞ 이 사례에서 인용한 '인과관계의 부존재에 대한 입증책임'과 관련된 대법원 판례의 법리는 현대해상 등 손해보험회사의 약관 규정에 따를 때만 적용이 가능하다고 봐야 합니다. 인과관계의 부존재에 대한 증명책임(소재)에 대해 손해보험회사의 약관 규정과는 완전 상반되는 내용의 약관 규정을 두고 있는 생명보험회사의 사례에도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급심 판결 중에는 이런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현재까지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임용수 변호사, 보험법 제3판』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2) 부산지방법원 2024. 7. 18. 선고 2023나58718 판결.
3) 대법원 2025. 1. 9. 선고 2024다272941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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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및 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