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임용수 보험전문변호사
보험계약자의 고지의무위반이 사기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보험계약 당사자가 약관에 사기 계약의 취소 요건 등을 약정해 놓았다면, 보험사는 약관의 사기계약조항에 따라서만 보험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임용수 보험전문변호사가 판결을 소개하고 해설한다.
김 씨는 2019년 3월 동양생명이 판매하는 생명보험에 가입했다. 보험 가입 당일 김 씨는 췌장암 의증 진단을 받은 상태였으나, 계약 전 알릴 의무사항의 질문지를 작성하면서 '최근 3개월 이내에 의사로부터 진찰 또는 검사를 통해 질병확정진단, 질병의심소견, 치료, 입원, 수술, 투약의 의료행위를 받은 사실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변했다. 이후 김 씨는 2019년 8월 췌장암(췌장두부암) 최종 진단을 받았고, 2023년 10월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유족이 김 씨의 사망보험금 9,000만 원을 청구했지만 동양생명은 계약이 고지의무위반 및 사기에 의해 맺어졌다며 지급을 거절했다. 이에 강력 반발한 유족은 동양생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동양생명은 김 씨가 보험대리점의 지점장 겸 보험설계사로서 근무했던 만큼 계약 당시 피보험자 등의 고지의무를 잘 알고 있었으며, 검사 결과 췌장암 소견을 받고도 검사 결과를 숨긴 채 청약했다고 주장했다. 김 씨의 보험설계사 경력을 들어 일반계약자의 보험 청약과는 다르게 평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현종 판사는 보험 약관에 명시된 사기 계약으로 인정하기 위한 요건인 '뚜렷한 사기 의사'가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현종 판사는 「보험사가 사기 계약을 주장하려면 계약자가 보험금을 편취할 의도를 갖고 보험계약을 체결했음이 명백한 경우라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며 「김 씨가 보험 가입 당시 받은 진단은 '췌장암 의증'일 뿐, 췌장암을 앓고 있다는 최종 진단 내지 확정 진단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보험대리점의 지점장이자 보험설계사인 김 씨가 췌장암의 임상적 추정 내지 의증 진단을 받고도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생명보험에 가입한 것이 직업윤리나 사회도덕적 측면에서 비난 받을 여지가 결코 작지 않다」면서도 「사기 계약 조항의 '뚜렷한 사기의사'는 보험계약자 등의 행동이 사기 계약 조항에 나열된 구체적인 예시와 엇비슷하게 '보험사고의 우연성'과 같은 보험의 본질을 해할 정도에 이르러야 비로소 인정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김 씨가 췌장암 최종 진단을 받고도 4년이상 생존한 점과 가입 당시 최종 진단 내지 확정 진단을 받지 않은 상황, 췌장암 의증만으로 보험사고 발생의 개연성이 농후하다고까지 평가하기는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할 때, 보험계약의 가입을 청약할 때 '뚜렷한 사기 의사'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동양생명이 이 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제기한 상태다.
임용수 보험전문변호사의 케이스메모
약관에 '사기에 의한 계약'이라는 제목하에 명시된 『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대리진단, 약물사용을 수단으로 진단 절차를 통과하거나 진단서 위·변조 또는 청약일 이전에 암 또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의 진단확정을 받은 후 이를 숨기고 가입하는 등 사기에 의해 계약이 성립됐음을 보험사가 증명하는 경우에는 계약일부터 5년 이내(사기 사실을 안 날부터 1개월 이내)에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는 규정은 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보험사고 발생의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숨기거나 적극적으로 허위 사실을 고지하는 등으로 보험사를 기망해 보험금을 편취할 의도를 갖고 보험계약을 체결했음이 객관적으로 명백한 경우 보험사가 취소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서, 민법 제110조에 기한 취소권 행사를 제한하는 규정이라고 풀이된다.
이같이 약관이 보험사의 계약 취소권 행사를 민법 제110조보다 보험사에게 불리하게 제한하고 있으므로, 보험계약자가 고지의무를 위반한 사실만으로는 보험계약이 보험계약자의 기망으로 인해 체결된 것이라고 인정하기 어렵고,3) '보험가입의 동기나 당시의 정황 등을 종합해 보험계약자가 보험사로부터 보험금을 편취할 의도였음이 객관적으로 명백한 경우' 즉 보험계약자가 '뚜렷한 사기의사'에 의해 행동한 경우에만 보험사가 보험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
- 최초 등록일 : 2024년 12월 4일
1) 호칭의 편의상 피보험자에 대해 원고(유족)의 성 씨를 사용한다.
2) 서울중앙지방법원 2024. 11. 6. 선고 2024가단5238128 판결.
3) 대법원 2005. 4. 29. 선고 2005다1247 판결 참조.
Tags
로피플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