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임용수 보험전문변호사 해설
남편을 피보험자로 하는 상해보험에 가입하면서 남편의 서명을 아내가 대신했다면 보험계약은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임용수 보험전문변호사가 판결을 소개하고 해설한다.
최 씨는 2012년 9월 소파를 들다가 넘어지면서 허리뼈(요추)가 골절되는 1차 사고를 입었고, 흥국화재로부터 척추 장해분류표상 '척추에 약간의 기형을 남긴 때'에 해당하는 후유장해 보험금 1500만 원을 받았다. 최 씨는 2020년 12월 주거지 화장실에서 넘어지면서 등뼈(흉추)가 골절되는 2차 사고를 입고 척추 장해분류표상 '척추에 심한 기형을 남긴 상태'에 해당함을 이유로 상해후유장해보험금의 지급을 청구했으나, 흥국화재는 2021년 7월 지급을 거절했다.
최 씨의 아내는 2009년 5월 당시 흥국화재와 사이에 피보험자를 최 씨로 하는 상해보험계약에 가입한 상태였다. 이에 최 씨는 "2차 사고로 인해 척추 장해분류표상 '척추에 심한 기형을 남긴 때'에 해당하는 장해가 발생했다"며 "보험금 5000만원을 지급하라"고 소송을 냈다.
흥국화재는 "이 보험계약은 보험계약자와 피보험자가 다른 타인의 사망 또는 상해를 보험사고로 하는 보험계약인데, 최 씨의 서면동의를 얻지 못해 상법 제739조, 제731조 제1항에 따라 무효이므로 보험금 지급의무가 없다"고 맞섰다.
상법 제731조 1항은 '타인의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보험계약에는 보험계약 체결 시에 그 타인의 서면에 의한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739조는 '사고에 의한 피보험자의 신체상해를 보험사고로 하는 상해보험계약의 경우에도 보험계약자와 피보험자가 다른 경우에는 타인의 생명보험계약에 관한 상법 제731조가 준용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지난해 5월 1심은 최 씨가 별도로 변호사를 소송대리인으로 선임하지 않고 당사자 본인소송을 했음에도 최 씨의 손을 들어줬다. 1심 당시 최 씨는 청약서상 '피보험자'란의 서명은 최 씨가 하지 않았고, '취급자'란의 서명자인 보헐설계사도 알지 못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이에 대해 울산지법은 "청약서상 서명을 하지 않았다는 최 씨의 주장은 단지 흥국화재 주장의 신빙성을 적극적으로 탄핵하기 위한 취지에서 한 발언으로 보일 뿐"이고, 오히려 "최 씨는 보험계약 당시 아내에게 계약 체결에 대한 서면 동의를 할 권한을 적법하게 위임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보험계약이 유효하다고 봤다.
2심 판단은 달랐다. 흥국화재는 최 씨 주장의 허점을 노리고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그 결과 2심 재판부는 "상법 제731조 1항은 도박보험의 위험성이나 피보험자에 대한 위해의 우려 또는 피보험자의 동의 없이 타인의 사망 또는 신체 상해를 사행계약의 조건으로 삼는 데서 오는 공서양속 침해의 위험 등을 배제하고자 하는 데 그 입법취지가 있는 강행법규"라며 "최 씨의 아내와 흥국화재 사이에 체결된 이 보험계약은 타인인 최 씨의 사망 또는 신체 상해를 보험사고로 하는 보험계약으로서 그 피보험자인 최 씨의 서면 동의가 없어 무효"라고 판단했다. 이어 "피보험자의 서면동의 없이 타인의 신체 상해를 보험사고로 하는 보험계약을 체결한 사람 스스로 보험계약의 무효를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 또는 금반언의 원칙에 위반되는 권리 행사라는 이유로 이를 배척한다면 입법취지를 완전히 몰각시키는 결과가 초래되므로,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그런 주장이 신의성실 또는 금반언의 원칙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최 씨가 2심 판단에 불복해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최 씨는 1심법원에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흥국화재 제출의 청약서상 '피보험자'란의 서명은 최 씨가 하지 않았고, '취급자'란의 서명자인 보험설계사도 알지 못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고, 변론기일에서도 "이 보험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아내로부터 보험계약 체결 등에 관해 들은 사실이 없고, 아내는 흥국화재 측 보험설계사로부터 설명만 듣고 계약서에 서명·날인했다"는 취지로 진술함으로써 보험계약 당시 청약서상 서면동의가 없다는 사실을 자인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처럼 청약서에 기재돼 있는 최 씨 명의의 서명은 최 씨의 자필이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만일 그 서명이 최 씨로부터 서면동의를 할 권한을 구체적·개별적으로 수여받았음이 분명한 제3자가 대행했다면 그런 서면동의도 상법 제731조 제1항에 따른 것으로서 유효하다고 볼 수 있다」면서도 「최 씨의 아내가 작성한 사실확인서의 기재만으로는 청약서상 서명이 최 씨로부터 서면동의를 할 권한을 구체적·개별적으로 수여받아 이뤄진 것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아울러 「최 씨의 아내라 하더라도 아내가 최 씨를 대신해 청약서에 서명날인했다는 사정만으로는 상법 제731조 제1항의 규정 취지에 비춰 최 씨의 서면동의가 이뤄졌다고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최 씨의 아내와 흥국화재 사이에 체결된 이 보험계약은 타인인 최 씨의 사망 또는 상해를 보험사고로 하는 보험계약으로서 그 피보험자인 최 씨의 서면에 의한 동의가 없어 무효라고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임용수 보험전문변호사 해설 및 법률 조언
상법 규정의 문언과 그 입법취지를 고려하면, 타인의 신체 상해를 보험사고로 하는 이른바 '타인의 상해보험'을 체결하는 경우 보험계약 당시 그 타인의 서면동의를 얻어야 한다. 나아가 상법 제731조 제1항은 강행법규로서, 보험계약자가 이를 위반해 타인의 상해보험을 체결하면서 보험계약 체결 당시 그 타인의 서면동의를 얻지 않았다면 그 보험계약은 무효라고 봐야 한다.
이 사례는 보험가입자(원고) 측이 별도로 변호사를 소송대리인으로 선임하지 않고 진행하는 나홀로소송(당사자 본인소송)의 1심 재판 과정에서 자기의 주장이 자기에게 불리한 사실상의 '재판상 자백'(裁判上 自白)에 해당하는 줄도 모르고 직접 변론활동을 하다가 낭패를 본 경우다.
- 보험전문변호사 해설 -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