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임용수 변호사
정신과 진료 및 약물 처방을 받고 여러 종류의 약을 복용했다가 파록세틴 중독으로 사망한 사건에서, 보험사는 급성약물중독(파록세틴)은 급격하고도 우연한 외래의 사고로 상해를 입은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고 '극단적 선택'을 하기 위해 고의로 파록세틴을 복용한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보험사고에 해당한다며 유족에게 사망보험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임용수 변호사[보험전문]가 판결을 소개하고 해설한다. [ ※ 유사해 보이는 사건이라도 개별 사안에 따라 판단이나 결론이 각기 달라질 수 있으므로, 소개해 드린 판결 사례와 동일한 결론이 나올 것이라고 전망하거나 단정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
홍 씨의 동거남이 2020년 2월 17일 밤 10시쯤 귀가했는데, 당시 홍 씨가 안방 바닥에 누워 잠을 자고 있어서 그 옆으로 들어가 잠에 들었다. 그가 이튿날 새벽에 잠에서 깬 뒤 홍 씨를 침대로 옮기려고 하다가 홍 씨의 다리가 경직돼 있어 호흡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119에 신고했으나 홍 씨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유족이 사망보험금을 청구했는데, 흥국화재는 '급성약물중독은 급격하고도 우연한 외래의 사고로 상해를 입은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지급을 거절했다. 이에 반발한 유족이 흥국화재를 상대로 법원에 소송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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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홍 씨의 정신건강의학과 초진일, 치료 기간, 내원 간격, 처방 받은 약물의 종류 및 수, 파록세틴의 마지막 처방일과 홍 씨가 사망한 날 사이의 간격 등을 고려할 때, 홍 씨가 사망할 무렵 파록세틴을 과다하게 복용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설령 홍 씨가 어떤 이유로 파록세틴을 다소 과다하게 복용했더라도 사망이라는 결과를 예견하고 이를 의도했다고 볼 만한 사정이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홍 씨는 잦은 과음으로 간 기능이 저하된 상태에서 파록세틴을 복용했다가 파록세틴 성분이 체내에 축적돼 치사농도에 이르는 사고로 사망에 이르렀다」며 「따라서 홍 씨의 사망사고는 '급격하고도 우연한 외래의 사고로 상해를 입고 그 직접결과로써 사망한 경우'로서 계약에서 보장하는 보험사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흥국화재는 '홍 씨가 고의로 파록세틴을 과다하게 복용해 일으킨 사고'라며 '보험계약 약관에 따라 사망보험금 지급 의무는 면책된다'는 주장도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홍 씨가 극단적 선택의 의사를 밝힌 유서 등 객관적인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고 볼 만한 정황 역시 드러나지 않은 사정 등을 종합하면, 홍 씨의 사인이 극단적 선택이 아닐 가능성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이 들지 않을 만큼 명백한 주위 정황사실이 증명됐다고 볼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홍 씨의 사망사고는 보험계약 약관에서 정한 면책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결국 흥국화재의 항변은 이유 없다」고 판시했다.
임용수 변호사의 케이스메모
인보험계약에서 담보되는 보험사고의 요건 중 우발적인 사고란 '피보험자가 예측할 수 없는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사고로서 고의에 의한 것이 아니고 예견치 않았는데 우발적으로 발생하고 통상적인 과정으로는 기대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는 사고'를 의미하고, 외래의 사고란 '사고의 원인이 피보험자의 신체적 결함 즉 질병이나 체질적 요인 등에 기인한 것이 아닌 외부적 요인에 의해 초래된 것'을 의미한다. 이런 사고의 우발성과 외래성 및 상해 또는 사망이라는 결과와 사이의 인과관계에 관해서는 보험금 청구자에게 그 증명책임이 있다.2) 한편 보험계약의 보험약관에서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를 보험사의 면책사유로 규정하고 있는 경우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는 면책사유에 해당하는 사실을 증명할 책임이 있다. 이 경우 보험사는 극단적 선택의 의사를 밝힌 유서 등 객관적인 물증의 존재나, 일반인의 상식에서 극단적 선택이 아닐 가능성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이 들지 않을 만큼 명백한 주위 정황사실을 증명해야 한다.3) 이 판결은 앞서 말한 대법원 판례와 그 법리에 충실한 판단을 내린 사례라고 평가할 수 있다.
최근에 선고된 판결 중에도 정신과적 증상을 완화할 목적으로 여러 종류의 약물을 과다 복용했다가 약물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사망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존재했던 사건에서 "이는 망인이 예견하지 않았는데 우발적으로 발생하고, 통상적인 과정으로는 기대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온 사고에 해당한다"며 "보험계약에서 정한 '보험기간 중에 급격하고도 우연한 외래의 사고로 신체에 상해를 입고 그 직접적인 결과로써 사고일로부터 2년 이내에 사망'한 것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사례가 있다.4)
반면 혈중알코올농도 0.252%로 술에 취한 상태에서 급성약물중독(쿠에티아핀, 알프라졸람, 설트랄린 등)으로 사망한 사건에서 "다량의 약물을 복용하는 방법으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으로 판단해 보험금 지급 면책사유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사례도 있다.5)
반면 혈중알코올농도 0.252%로 술에 취한 상태에서 급성약물중독(쿠에티아핀, 알프라졸람, 설트랄린 등)으로 사망한 사건에서 "다량의 약물을 복용하는 방법으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으로 판단해 보험금 지급 면책사유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사례도 있다.5)
2) 대법원 2010. 5. 13. 선고 2010다6857 판결 등 참조.
3) 대법원 2010. 5. 13. 선고 2010다6857 판결 참조.
4) 서울남부지방법원 2023. 10. 31. 선고 2022가단261552 판결.
5) 서울중앙지방법원 2023. 11. 7. 선고 2023가단5195057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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