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 대법원, 주요우울장애 진단 또는 치료 사실 없지만 ... 극단적 선택에서 사망보험금 첫 인정


글 : 임용수 변호사


주요우울장애와 유사한 증상으로 인한 심신상실이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고 산업재해로 인정됐다면 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사망한 사람이 생전에 주요우울장애 진단을 받았거나 관련된 치료를 받은 사정이 없었더라도 주요우울장애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극단적 선택에 이른 경우로 인정할 수 있다는 취지의 대법원 첫 판결이다. 보험전문 임용수 변호사가 판결을 소개하고 해설한다.

대법원 1부는 김 모1) 씨의 유족이 현대해상, 디비손해보험, 엠지손해보험, 케이비손해보험, 메리츠화재 등 보험사 5곳을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창원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2) 보험사들의 손을 들어줬던 2심 판결을 파기한 것이다. 

김 씨는 2018년 2월 야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안방 욕실에서 허리띠를 샤워기 고정 핀에 연결하고 목을 매는 방법으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 김 씨는 평소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와 육아 부담으로 우울감을 호소해왔다. 사망할 무렵에는 폭증한 업무량으로 말미암아 연장근무를 하는 일이 잦았다. 김 씨는 직장동료나 남편에게 죽고 싶다는 말을 여러 차례 하는 등으로 심리적, 정서적으로 불안한 상태를 보였다. 극단적 선택 직전 두 달 정도 피로나 활력의 상실, 집중력 감소, 식욕 감소 및 소화기 장애, 수면장애와 같은 증상이 나타났다. 이런 증상은 주요우울장애를 겪는 환자의 증상과 유사하다. 

이에 근로복지공단 산하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2018년 11월 김 씨의 사망이 업무상 사유로 정상적인 인식(판단) 능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이뤄졌다며 사망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를 근거로 유족들은 사망보험금을 청구했다. 

하지만 보험사들은 김 씨가 정상적인 의사결정이 어려운 심신상실 상태에 있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며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고 결국 소송으로 이어졌다. 

1심 재판부는 김 씨가 사망 당시 심신상실 상태였으므로 보험사 5곳이 유족들에게 보험금 1억5500만 원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며 원고승소 판결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패소 판결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김 씨가 평소에 정신질환 진단이나 진료를 받은 적이 없고 사망 직전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등 정신실환이 있었던 것으로 평가되는 의사의 진단서나 소견서 등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근로복지공단의 판단도 업무상의 사유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인지의 인과관계가 없다는 판단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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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대법원은 원심(2심)과는 다른 판단을 했다. 대법원은 「김 씨가 극단적 선택에 이르기 전에 주요우울장애를 진단받거나 치료받은 사실은 없지만 극단적 선택에 이를 무렵 극심한 업무 스트레스를 호소했고 주요우울장애 증상과 유사한 증상이 나타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어 「김 씨의 사망은 근로복지공단에서 업무상 재해로 인정됐고 정신보건임상심리사가 작성한 심리학적 의견서에도 주요우울장애가 의심된다는 내용이 기재돼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이런 사정에 비춰 보면, 김 씨가 극단적 선택에 이를 무렵 주요우울장애를 겪고 있었고 이로 인해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사망에 이르게 됐을 여지가 없지 않다」며 「따라서 원심으로서는 김 씨가 사망하기 전의 상태를 알 수 있는 객관적 자료, 유족 등 주변인의 진술 등을 비롯한 모든 사정을 토대로 사망 당시 정신적 심리상황 등에 대한 의학적 견해를 확인하는 등의 방법으로 김 씨의 주요우울장애 발병 가능성 및 그로 인해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극단적 선택에 이른 것인지 여부 등을 심리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원심은, 김 씨가 생전에 정신질환 진단 또는 진료를 받은 적이 없고, 사망 직전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등 정신질환이 있었던 것으로 평가하는 의사의 진단서나 소견서 등이 없다는 사정만을 근거로 김 씨가 극단적 선택에 이를 당시 정신질환이나 심신상실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을 해친 경우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이런 원심의 판단에는 보험계약 약관의 면책 예외사유 해석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임용수 변호사의 케이스메모


기존 대법원 판례는 미국정신의학협회에서 발행한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매뉴얼 제5판(The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Fifth Edition, DSM-5)에서 제시한 진단기준을 기초로 법원으로서는 주요우울장애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볼 만한 의학적 견해가 증거로 제출됐다면 함부로 이를 부정할 수 없고, 만약 법원이 그런 의학적 소견과 다르게 인과관계를 추단하려면 다른 의학적·전문적 자료를 바탕으로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3) 

이 대법원 판결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망한 사람이 생전에 주요우울장애 진단이나 관련 치료를 받은 사정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법원으로서는 사망한 사람의 나이와 성행, 그가 극단적 선택에 이를 때까지의 경위와 제반 정황, 사망한 사람이 남긴 말이나 기록, 주변인들의 진술 등 모든 자료를 토대로 사망한 사람의 정신적 심리 상황 등에 대한 의학적 견해를 확인하는 등의 방법으로 사망한 사람의 주요우울장애 발병 가능성 등을 비롯, 그가 주요우울장애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극단적 선택에 이른 것인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판시한 사례다. 주요우울장애로 진단을 받았거나 관련된 치료를 받았던 사실은 주요우울장애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점에 대한 소송상 입증을 용이하게 하는 자료일 뿐, 그런 자료의 유무에 따라 사망한 사람의 정신적 심리 상황을 다르게 평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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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 등록일 : 2024년 5월 25일

1) 호칭의 편의상 피보험자(망인)에 대해 유족의 성 씨를 사용한다.
2) 대법원 2024. 5. 9. 선고 2021다297529 판결.
3) 대법원 2021. 2. 4. 선고 2017다281367 판결 등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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