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임용수 변호사
승객이 버스정류장에 정차한 버스에서 내리다 계단 끝에 걸려 넘어져 다친 사고에 대해 버스회사에 일부 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이 나왔다.
이제까지 버스회사들은 버스가 멈춘 상태에서 일어난 이런 유형의 사고들에 대해 '운행 중' 일어난 사고라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배상을 거절하는 경우가 많았다. 임용수 변호사가 버스 회사에 대해 일부 배상책임을 인정한 주목할 만한 판결을 소개하고 해설한다.
정차된 버스서 내리다 계단 끝에 걸려 넘어져…버스 회사 "100% 승객 부주의" 주장
2019년 7월 서울 중구 을지로에 있는 시청광장 버스정류장, 버스 승객인 김 모 씨는 멈춘 버스에서 내리기 위해 버스 뒤쪽 계단을 내려오던 중 계단 끝에 걸려 넘어졌다. 이 사고로 김 씨는 오른쪽 발 관절 인대 파열 등의 부상을 입었다.
김 씨가 버스회사와 공제계약을 체결한 공제사업자인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연합회’)에 배상을 청구하자 연합회는 김 씨의 치료비로 116만여 원을 지급한 뒤, 2020년 1월 김 씨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채무부존재확인 청구 소송을 냈다. 버스회사나 연합회는 김 씨에 대해 더 이상의 손해배상(공제금 지급) 채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취지였다.
연합회는 재판에서 "이 사고는 버스가 완전히 정차한 상태에서 김 씨의 부주의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버스의 운행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사고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 씨는 "버스의 내부 계단에 설치된 미끄럼방지판은 그 턱이 높고 각이 져있으며 바닥면에 완전히 고정이 되지 않아 틈이 벌어져 있는 상태로 설치·관리상 하자가 있었고, 김 씨는 미끄럼방지판의 턱에 신발의 앞부분이 걸려 넘어지게 된 것"이라며 "연합회는 버스회사의 공제사업자로서 이 사고로 인해 김 씨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맞서며 연합회를 상대로 공제금 지급을 구하는 반소를 제기했다.
법원 "버스에 내재된 위험요인인 미끄럼방지판 등 원인" 버스회사 일부 배상 인정
서울중앙지법 민사63단독 민경현 판사는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가 김 씨를 상대로 낸 채무부존재확인 청구 소송에서 "연합회가 김 씨에게 282만 원을 배상하라"며 원고일부승소 판결했다고 밝혔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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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자배법) 제3조 본문은 '자기를 위해 자동차를 운행하는 자는 그 운행으로 인해 다른 사람을 사망하게 하거나 부상하게 한 경우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운행으로 인한 것"인지는 운행과 사고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2) 자동차를 주·정차한 상태에서 하차할 때 주·정차하는 곳에 내재된 위험요인이나 자동차 자체에 내재된 위험요인이 하차에 따른 사고 발생의 한 원인으로 경합돼 사람이 부상한 때는 자동차의 운행으로 인해 발생한 사고에 해당한다.3)
사건의 주된 쟁점은 버스회사의 '운행으로 인해' 김 씨가 부상을 입었는지 여부였다. 이런 유형의 사례에서 대법원은 "자동차손배배상 보장법 제3조 단서 제2호는 '승객이 고의나 자해행위로 사망하거나 부상한 경우'를 면책사유로 규정하고 있는바, 자동차사고로 승객이 부상을 입은 경우 운행자는 그것이 승객의 고의로 인한 것임을 주장·입증하지 못하는 한 운전상의 과실 유무를 가릴 것 없이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진다"는 입장이다.4)
민경현 판사는 이 같은 대법원 판결의 법리를 근거로 「버스 내부의 뒤쪽 계단 끝에는 미끄럼방지판이 설치돼 있는 사실, 승객인 김 씨는 버스에서 하차하던 중 계단의 미끄럼방지판에 발이 걸려 넘어진 사실, 미끄럼방지판은 다른 버스나 시설 등의 그것과 비교해 볼 때 바닥면과의 높이 차이가 존재했던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며 「앞서 인정한 사실을 대법원 판결 법리에 비춰 보면, 김 씨는 버스 자체에 내재된 위험요인인 미끄럼방지판 등이 한 원인이 돼 넘어져 다친 것으로서 이 사고는 자동차의 운행으로 인해 발생한 사고라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민경현 판사는 이어 「승객인 김 씨가 운행 중에 부상을 당한 경우 연합회 주장과 같이 김 씨의 과실로 사고가 발생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사고가 김 씨의 고의 또는 자해행위로 인한 것임을 주장·증명하지 못하는 한 버스 운전상의 과실 유무를 가릴 것 없이 연합회는 승객의 부상에 따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김 씨가 버스의 운행으로 말미암아 부상을 입지 않았다고 단정하기 어려우므로, 이와 다른 전제에 선 연합회의 면책항변은 이유 없다」며 「결국 연합회는 버스회사의 공제사업자로서 이 사고로 인해 김 씨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임용수 변호사의 케이스메모
민경현 판사는 김 씨의 100% 잘못으로 이 사고가 발생했다는 연합회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버스 자체의 미끄럼방지판 등 내재적 위험 요인을 부상의 한 원인으로 지목해 배상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다만 김 씨가 청구한 금액 모두를 인정하진 않았다. 이 사고 전부터 발목 불안정 및 염좌로 여러 차례 진료를 받아왔던 김 씨로서는 버스에서 하차할 경우 기둥을 잡고 계단을 천천히 내려가거나 계단 끝부분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함에도 이를 소홀히 한 과실이 있단 이유에서다.
민경현 판사는 김 씨의 그런 과실이 손해의 발생 또는 확대의 중요한 원인이 됐으므로, 연합회가 배상해야 할 손해액을 산정함에 있어 참작해 김 씨의 과실을 50%로 보고, 연합회의 책임을 50%로 제한했다. 이와 함께 김 씨의 기왕증인 발목 불안정 및 염좌의 기여도를 50%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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