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 피보험자 사망 사실 모르고 장기요양등급 판정… "장기요양진단비 보험금 지급사유 발생 안 돼"


글 : 임용수 변호사


장기간병요양진단비를 보험금으로 지급하는 내용의 보험계약에 가입한 피보험자가 사망했는데도 국민건강보험공단 등급판정위원회가 사망 사실을 모르고 장기요양등급 1급 판정을 했다면 보험회사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민사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DB손해보험이 사망한 남 모 씨1)의 유족을 상대로 낸 채무부존재확인 본소 및 유족의 보험금 반소 청구 상고심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울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2)

남 씨는 2014년 3월 DB손해보험과 신(新)장기간병요양진단비(1, 2, 3등급)를 보험금으로 지급하는 내용의 보험계약을 체결했다. 그 보험계약의 보통약관에는 피보험자가 보험기간 중 사망할 경우 보험계약은 소멸하고, 신장기간병요양진단비 보험금은 피보험자가 '보험기간 중 노인장기요양보험 수급대상으로 인정됐을 경우' 지급하며, '노인장기요양보험 수급대상으로 인정됐을 경우'란 '국민건강보험공단 등급판정위원회에 의해 1등급, 2등급 또는 3등급의 장기요양등급을 판정받은 경우'를 말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남 씨는 2017년 6월 1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장기요양인정을 신청했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같은달 8일 남 씨가 입원해 있던 병원에 방문해 실사를 마쳤는데, 그날 밤 남 씨는 사망했다. 하지만 국민건강보험공단은 13일 뒤 남 씨에 대한 장기요양등급을 1등급으로 판정했다. 

이후 남 씨의 유족[남편]은 보험금을 청구했다. 하지만 DB손해보험은 남 씨의 사망으로 보험계약이 소멸됐으므로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면서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을 냈다. 보험 약관에 '보험대상자가 보험기간 중 사망할 경우 계약은 소멸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등급판정이 남 씨의 사망 이후 이뤄졌으므로 보험금 지급 의무가 없다는 취지였다. 

1심과 2심[원심]은 "보험계약에서 정한 '보험기간 중 보험사고(등급판정)의 발생'은 장기요양등급 판정의 원인이 되는 사실로서 피보험자의 건강상태가 장기요양을 필요로 하는 정도가 확인되면 충분하고, 장기요양등급 판정일이 보험계약의 효력이 소멸한 피보험자의 사망 후라도 달리 볼 수 없다"며 유족 측의 손을 들어줬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이렇게 보지 않을 경우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등급 판정 시기에 따라 보험금 지급 여부가 달라질 수 있어 불합리한 결과에 이르게 된다"고 설명했다. 보험 대상자인 피보험자의 생존 여부보다는 건강상태에 중점을 둔 판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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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보험계약이 정한 보험금 지급사유로서 '피보험자가 보험기간 중 노인장기요양보험 수급 대상으로 인정됐을 경우'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피보험자가 보험기간 중 국민건강보험공단 등급판정위원회에 의해 장기요양등급을 판정받은 경우'를 말한다」며 「피보험자가 노인장기요양보험 수급 대상에 해당할 정도의 심신상태임이 확인됐다고 하더라도 장기요양등급 판정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보험계약이 소멸했다면 보험기간 중 보험금 지급사유가 발생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노인장기요양보험법상 장기요양급여는 성질상 피보험자의 생존을 전제로 하므로 장기요양인정 신청인의 사망 후에는 장기요양등급을 판정할 수 없다」며 「등급판정위원회가 그 사망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장기요양등급 판정을 했더라도 사망자에 대한 장기요양등급 판정이어서 법률상 효력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보험자의 사망 후 장기요양등급 판정이 이뤄졌더라고 해서 보험약관이 정하는 보험금 지급사유가 발생했다고 할 수 없다」며 「피보험자가 장기요양인정 신청을 한 후 사망한 경우 장기요양등급 판정 시점에 따라 보험금 지급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사정만으론 보험금 지급사유에 관한 약관이 보험계약자의 정당한 이익과 합리적인 기대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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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계약의 주요한 부분인 보험사고나 보험금액의 확정절차는 보험증권이나 약관에 기재된 내용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보통이고, 보험증권이나 약관의 내용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 이에 더해 당사자가 보험계약을 체결하게 된 경위와 과정, 동일한 종류의 보험계약에 관한 보험회사의 실무처리 관행 등 여러 사정을 참작해 결정해야 한다.3)

한편 보험약관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당해 약관의 목적과 취지를 고려해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해석하되, 개개의 계약당사자가 기도한 목적이나 의사를 참작함이 없이 평균적 고객의 이해가능성을 기준으로 보험단체 전체의 이해관계를 고려해 객관적·획일적으로 해석해야 한다.4)

보험약관이 비록 보험사가 다수의 보험계약자와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마련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보험약관의 내용 등이 보험계약자의 정당한 이익과 합리적인 기대에 반할 뿐 아니라 사적자치의 한계를 벗어나는 등 무효라고 볼 만한 사정이 없다면, 법원이 이를 함부로 배척하거나 보험약관 내용을 그 목적과 취지 등과 달리 개별 사건마다 임의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5)

디비손해보험의 보통약관은 ① '보험기간 중' ② '국민건강보험공단 등급판정위원회에 의해 1등급, 2등급 또는 3등급의 장기요양등급을 판정받은 경우'를 보험사고(= 보험금지급사유)의 요건으로 정하고 있다. 여기서 '보험기간'이란 보험자의 책임이 시작돼 종료될 때까지의 기간을 뜻하고, 대부분의 경우 '보험계약이 성립해 존속하거나 유지되는 기간'을 의미하는 보험계약기간과 일치한다. 이 사례처럼 장기요양등급 판정이 이뤄지기 전에 피보험자의 사망으로 보험계약이 종료(소멸)된 경우, 보험사고의 요건 중 위 '보험기간 중'(= 보험계약의 효력 유지) 장기요양등급 판정이라는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게 되므로, 보험기간 중 보험금 지급사유가 발생했다고 볼 수 없다. 보험약관 해석에 관한 당연한 법리를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는 대법원 판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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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 등록일 : 2023년 11월 4일

1) 호칭의 편의상 피보험자에 대해 원고의 성 씨를 사용한다.
2) 대법원 2023. 10. 12. 선고 2020다232709, 2020다232716 판결.
3) 대법원 2008. 11. 13. 선고 2007다19624 판결, 대법원 2014. 6. 12. 선고 2013다208661 판결 참조.
4) 대법원 2010. 11. 25. 선고 2010다45777 판결, 대법원 2020. 10. 15. 선고 2020다234538, 234545 판결 등 참조.
5) 대법원 2023. 10. 12. 선고 2020다232709, 2020다232716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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