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첸 전기밥솥 사용하다 화재 난 경우 제품 결함 원인으로 손해배상 받을 수 있을까



고도화된 기술 집약으로 대량 생산되는 제품의 생산 과정은 전문가인 제조업체만이 알 수 있어서 그 제품에 어떤 결함이 존재했는지, 그 결함으로 인해 손해가 발생한 것인지 여부는 일반인으로서는 밝힐 수 없는 특수성이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사용자가 제품의 결함 및 그 결함과 손해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과학적·기술적으로 입증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기존 민법의 불법행위책임하에서 피해자는 제조업체 또는 공급업체의 고의 또는 과실을 입증해야만 했으나, 제조물책임법에서는 제품이 정상적으로 사용되는 상태에서 사고가 발생한 경우 피해자인 사용자 측에서 그 사고가 제조업체의 배타적 지배하에 있는 영역에서 발생했다는 점과 그 사고가 제품의 결함 없이는 통상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고 하는 사정만 증명하면, 제조업체 측에서 그 사고가 제품의 결함이 아닌 다른 원인으로 말미암아 발생한 것임을 입증하지 못하는 이상 그 제품에 결함이 존재하며 그 결함으로 말미암아 사고가 발생했다고 추정하게 됩니다. 이는 사용자가 제품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 제품의 결함을 입증하기가 곤란하기 때문에 제조업체에게 제품의 결함이 아닌 다른 원인으로 인해 발생한 것임을 입증토록 하는 입증책임의 완화를 의미합니다.

최근 아파트 화재가 '쿠첸 전기밥솥 전원선의 제품 결함' 때문으로 추정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이 화재로 8890만여 원 상당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는데, 법원은 이 화재가 전기밥솥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만큼 쿠첸도 일부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전기밥솥 내부의 안정성과 객관적인 성능이 결여됐다고 본 사례입니다.




【사건 개요】

메리츠화재는 2022년 7월 남양주시에 있는 한 아파트의 입주자대표회의와 보험목적물을 아파트 건물 및 일반 가재, 부속설비로 하는 주택화재보험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 아파트에 거주하던 한 임차인이 쿠첸이 제조·판매한 전기밥솥을 2021년 8월에 구입한 후 보조주방에 두고 사용했는데, 2022년 12월 보조주방에 있던 전기밥솥 전원코드의 미확인단락으로 인한 사고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메리츠화재는 이 화재로 아파트 주민들에게 약 8890만여 원에 이르는 재산 피해가 발생하자,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와 체결한 주택화재보험계약에 따라 재산 피해액 상당의 보험금을 피해자들에게 지급했습니다. 이후 메리츠화재는 쿠첸의 전기밥솥 제품 결함으로 화재가 발생한 것이라며 쿠첸을 상대로 보험금 지급 액수만큼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취지로 구상금 청구 소송을 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는 화재의 원인이 쟁점으로 떠올랐습니다. 화재를 조사한 관할 소방서는 '전기밥솥 전원선의 미확인단락'을 화재 발생 원인으로 지목했습니다. 전기밥솥과 보조주방에 함께 있던 에어프라이기, 전자레인지, 하이라이트 등은 발화 원인에서 배제했습니다. 방화 가능성이나 자연적인 요인도 발화 원인에서 배제했습니다. 전기밥솥도 사용자에 의해 정상적으로 사용됐다고 봤습니다. 그러면서 전기밥솥 전원선의 미확인단락에 의해 화재가 발생했다고 추정했습니다. 전기밥솥 전원선 내부에서 예상치 못한 전류 흐름으로 불이 난 것으로 추측되지만 뚜렷한 원인을 알 수 없다는 취지입니다. 




【법원 판단】

[1] 1심 판결 : 원고일부승소

서울중앙지법 민사69단독 이진영 판사는 메리츠화재가 쿠첸을 상대로 낸 구상금 청구 소송에서 "쿠첸은 메리츠화재에게 4445만여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일부승소 판결했습니다.1) 이 화재로 발생한 8890만여 원의 재산 피해 중 50%를 쿠첸의 책임으로 인정한 것입니다.

이진영 판사는 "이 화재는 쿠첸의 전기밥솥 본체와 콘센트 사이의 전원선에 단락이 생기면서 발생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고, 사용자로서는 전원선을 콘센트에 연결해 사용할 뿐 전원선 내부를 분해하거나 본체에 결합돼 있는 전원선을 임의로 교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므로 전기밥솥의 전원선은 본체와 마찬가지로 쿠첸의 배타적 지배하에 있는 영역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단락이 발생한 전원선에서는 미확인단락이 발견됐을 뿐 전원선 단락이 전원선 피복의 눌림, 꺾임 등 외적인 손상에 의한 것인지 여부를 정확히 알 수 없고, 사용자가 전원선을 눌렀다거나 꺾이게 했다는 등 일반적인 사용 방법이나 사용 환경을 벗어나 사용상의 부주의가 있었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이 화재 발생 당시 쿠첸의 전기밥솥은 정상적으로 사용되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면서 "결국 이 화재는 쿠첸의 배타적 지배하에 있는 전기밥솥이 정상적인 용법으로 사용되는 상태에서 발생했고, 이 화재가 전기밥솥이 아닌 다른 원인으로 발생한 것임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앞서 본 법리에 따라 전기밥솥에 결함이 존재하고 그 결함으로 말미암아 이 화재가 발생했다고 추정할 수 있으므로 전기밥솥을 제조한 쿠첸은 제조물 책임법에 따른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대해 쿠첸이 불복 항소했습니다.




[2] 2심 판결 : 원고일부승소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제5-2민사부[재판장 염기창 부장판사]는 "쿠첸은 메리츠화재에게 3560만여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일부승소 판결했습니다.2) 이 화재로 인한 쿠첸의 손해배상책임을 손해액의 40%로 제한해 인정한 것입니다. 

2심에서도 법원은 사용자의 부주의 가능성에 대한 증거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전원선의 단락이 화재의 주된 원인임을 확인했습니다. 쿠첸의 책임 비율이 1심보다 10% 낮아진 이유는 사용자가 집을 비워 신속한 초기 진화를 하지 못해 손해가 확대된 점과 전기밥솥 구매일로부터 화재 발생 시까지 약 1년 4개월 동안 제품 내부에서 화재의 원인이 될 만한 특이사항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심 판결에 대해 쿠첸이 상고하지 않으면서 이 판결은 확정됐습니다. 통상 가정집에서 사용하는 전기밥솥은 일정한 위치에 두고 콘센트에 꽂아둔 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 화재 발생 전 아파트 보조주방 내 선반 위에 있던 쿠첸의 전기밥솥 역시 콘센트에 그대로 연결된 상태로 계속 사용 중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전기밥솥의 전원선은 그 위치나 상태가 변경됨이 거의 없이 계속 사용 중인 상태였으므로 사용자가 전원선을 꽂았다 빼는 것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그 전원선이 손상됐을 가능성은 낮다고 보는 게 합리적입니다. 사용자(소비자) 보호와 제품 안정성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제조물책임법의 취지에 부합하는 합당한 판결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쿠첸의 경쟁업체인 쿠쿠전자의 전기밥솥 결함을 인정한 사례도 나오고 있습니다. 서울의 한 아파트에 거주하던 사용자가 전기밥솥으로 취사를 마치고 보온 전환을 확인한 후 외출한 사이 화재가 발생해 주방 벽면과 천장 일부가 소실됐던 첫 번째 화재 사고와 다른 아파트에 거주하던 사용자가 주방 싱크대에 있던 전기밥솥에서 불꽃이 발생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즉시 집안에 있던 분말 소화기를 전기밥솥에 뿌려 화재를 진화했던 두 번째 화재 사고에 관한 것인데, 쿠쿠전자 측은 정상적으로 사용되던 상태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에 대한 입증이 부족해 전기밥솥 결함이 없다고 반박했으나, 법원은 "전기밥솥을 정상적인 용법에 따라 사용했음에도 내부에서 발화된 것으로 보이며 이 같은 발화는 제조업자의 과실 없이는 통상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며 "안정성과 객관적인 성능이 결여됐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3) 다만 두 번째 화재에 대해서는 전기밥솥이 제조된 지 10년 이상 경과한 점, 사용자가 제조일로부터 오랜 기간이 지난 전기밥솥에 대한 점검이나 청소 등의 관리를 어떻게 해왔는지 알기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해 쿠쿠전자의 책임을 70%로 제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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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 등록일 : 2025년 5월 24일

1) 서울중앙지방법원 2024. 7. 25. 선고 2023가단5126020 판결.
2) 서울중앙지방법원 2025. 4. 16. 선고 2024나48475 판결.
3) 서울중앙지방법원 2023. 10. 6. 선고 2022가단5315878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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