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임용수 변호사
장기간 우울증을 앓다 술을 많이 마신 탓에 증세가 급격히 악화돼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면 사망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임용수 변호사[보험전문]가 판결의 주요 내용을 알려 드리고 해설을 덧붙인다.
정 씨는 2012년 2월 한화손해보험과 사이에 '일반상해사망후유장해'를 보장하는 보험계약을 체결했다. 보험수익자는 법정상속인인 정 씨의 부모로 지정됐다.
2010년부터 우울증 치료를 받던 정 씨는 자신을 둘러싼 경제적 문제 등으로 우울증 증세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고, 결국 2019년 11월23일께 술을 마신 뒤 극단적 선택을 해 숨졌다. 2018년 11월경 우울증 등 진단을 받았을 때 담당의사는 입원 치료가 필요한 수준이라는 소견을 밝히기도 했다.
정 씨는 물품 배송을 하다 2019년 5월 허리를 다쳐 진료를 받았고 극단적 선택을 하기 보름 전 쯤에는 일을 그만뒀다. 정 씨는 개인사업자로 등록돼 있어 산업재해 보상을 받지 못했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확인됐다. 사망 당일에는 정 씨는 새벽까지 지인들과 많은 양의 술을 마시기도 했다.
이후 유족이 한화손해보험을 상대로 사망보험금을 청구했지만 거절당했다. 한화손해보험은 정 씨가 사망 당시 정상적인 분별력을 갖고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상태였으므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면책사유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로피플닷컴은 여러분의 든든한 보험 법률 파트너 법률상담 문의 ☎ 02-595-7907 |
1심은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1심은 정 씨가 '심신상실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을 해친 경우'에 해당한다며 한화손해보험이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1심과 달리 2심은 한화손해보험 측의 손을 들어줬다. 정 씨가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2심은 "정 씨가 사망 직전 유족과 통화하며 '미안하다, 죽고 싶다'는 말을 하는 등 자신의 행위가 가지는 의미를 인식하고 있었고, 목을 매는 극단적 선택 방식 등에 비춰 볼 때 충동적이거나 돌발적이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극단적 선택에 이르렀다고 판단할 여지가 충분하다」며 판단을 다시 뒤집었다.
재판부는 「의사로부터 우울병 등의 진단을 받아 상당 기간 치료를 받아왔고 그 증상과 극단적 선택 사이에 관련성이 있어 보이는 경우,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였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극단적 선택을 할 무렵의 상황을 평가할 때는 그 상황 전체의 양상과 극단적 선택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고 특정 시점에서의 행위를 들어 그 상황을 섣불리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 씨는 9년 전부터 주요 우울병 등의 진단 하에 진료를 받아오다가 1년 전에는 입원치료가 필요한 상황에 이르렀고 우울증을 겪으며 반복적으로 죽음을 생각해온 것으로 보인다」며 「극단적 선택 무렵의 신체적·경제적·사회적 문제로 정 씨를 둘러싼 상황이 지극히 나빠졌고 특히 극단적 선택 직전에는 술을 많이 마신 탓에 우울증세가 급격히 악화돼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극단적 선택에 이르렀다고 판단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판시했다.
임용수 변호사의 케이스메모
이 대법원 판결은 우울증 등의 진단을 받고 장기간 치료를 받아오던 환자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경우, 그 환자가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있었는지를 판단할 때는 우울증 진단 시점부터 극단적 선택을 할 무렵까지 상황 전체의 양상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판시한 첫 사례다.
주요우울장애와 극단적 선택의 관련성에 관한 의학적 판단 기준이 확립되어 있으므로, 사실심법원으로서는 주요우울장애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볼 만한 의학적 견해가 증거로 제출됐다면 함부로 이를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의 일관된 태도다.
[복제·배포 또는 방송 금지]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