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임용수 변호사
피보험자가 추락사 했을 가능성이 있는 경우 보험사는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라는 점을 명백하게 입증하지 못하면 약정된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임용수 변호사[보험전문]가 최근 선고된 이 판결의 주요 내용을 [단독] 소식으로 알려드리고 해설과 법률 조언을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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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씨는 1999년 4월부터 2003년 2월에 걸쳐 농협생명과 3건의 생명보험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약관에는 모두 '재해'를 '우발적인 외래의 사고'라고 정의하는 한편,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를 보험금 지급의 면책사유로 정하고 있습니다. 만성 췌장염과 허리디스크를 앓고 있던 배 씨는 2020년 6월 한 병원에 입원, 검사와 치료를 받던 중 3일 뒤 밤 10시 40분쯤 오심 증상이 있어 잠시 바람을 쐬고 오겠다며 병실을 나섰습니다. 배 씨는 다음날 새벽 2시48분경 입원 중인 병원 동관 앞 지하주차장 비상계단 지하 5층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고, 사체를 검안한 의사는 배 씨의 사망 종류를 외인사[추락], 사망 원인을 두개골 및 다발성 골절로 진단했습니다.
이에 배 씨의 유족은 생명보험계약에 따른 보험금을 청구했습니다. 하지만 농협생명이 '우발성을 결여해 보험금 지급사유에 해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피보험자인 배 씨의 고의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며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자 유족은 소송을 냈습니다.
농협생명 측은 배 씨의 평소 언행과 사고 당일 행적, 사고 장소 및 시각, 경찰의 내사 결과 등을 근거로 배 씨가 자신의 신병을 비관해 병원 내 지하주차장 비상계단에서 스스로 투신해 사망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유족 측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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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보험사고의 요건인 '사고의 우연성' 개념에 '피보험자의 고의에 의하지 않은 것'이라는 의미가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하면서 그에 관한 증명책임을 보험금 청구자가 부담한다고 보는 것은,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를 보험사의 면책사유로 보고 그에 관한 증명책임을 보험사에게 부담시키는 것과 일견 모순된 것으로 볼 여지가 있으므로, 양자를 조화롭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보험금 청구자로서는 보험사고가 사고의 외형이나 유형상 피보험자의 과실 또는 제3자의 고의 또는 과실, 기타 예측할 수 없는 원인에 의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거나, 그것이 통상적인 과정으로는 기대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객관적 정황상 고의에 의한 사고라는 것이 명확하지 않다면, 일단 '사고의 우연성'에 관한 증명을 다한 것」이라며 「이 경우 보험사로서는 그 사고가 피보험자의 고의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는 점을 일반인의 상식에서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명백히 증명해야 보험금 지급책임을 면할 수 있게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아울러 「그 같은 법리를 고려할 때 지하주차장 비상계단의 난간 높이가 약 90~95cm로 키 169cm의 배 씨가 난간에 기대에 몸을 기울일 경우 얼마든지 그 아래로 추락할 수 있는 구조였고, 사고가 발생한 시각이 시야가 제한되는 어두운 밤이었던 점, 배 씨가 오심과 구토, 어지러움 등의 증상이 심해져 공원에서 이어지는 지하주차장 비상계단으로 들어갔다가 순간적으로 균형 감각이 현저히 저하되거나 상실된 상태에서 실수로 난간 아래로 추락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 객관적 정황상 사고가 배 씨의 고의에 의한 것임이 명확하지 않은 점 등을 근거로 사고의 우발성과 외래성, 사망이라는 결과와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해 일단 증명했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평소 '죽고 싶다'거나 '이렇게 해서 어떻게 사냐'와 같은 말을 여러 차례 하기는 했지만 이는 계속적인 투병 생활로 인해 정신력과 의지가 많이 약해진 상태에서 육체적 고통에 따른 괴로움과 분노 등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고 자신의 신체를 한탄하는 습관적인 표현으로 보일 뿐 객관적 물증이나 정황이 존재하지 않고, 사고 당시 배 씨가 추락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한 사람도 없는 점 등을 고려하면, 농협생명의 고의 사고 면책 주장이 충분히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고, 따라서 농협생명은 보험계약에 따른 보험금 지급책임 면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임용수 변호사의 케이스메모
이번 사례에서 경찰은 유족의 추측성 진술에 의존해 사체에 타살 흔적이 없다는 점을 참작해 사망원인(자·살)을 판단하고 내사를 종결했습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변사사건에 관한 수사기관의 조사는 변사자의 사망에 제3자가 그 원인을 제공했을 여지가 있는지 여부를 밝히기 위한 것이므로, 사고에 관한 수사기관의 조사 결과가 제3자의 개입 없이 배 씨가 혼자서 추락해 사망했다는 사실 외에 그 추락이 배 씨의 고의에 의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배 씨의 과실에 의한 것이었는지까지 밝힌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을 보험사의 면책 항변을 배척하는 근거로 덧붙이고 있습니다.
한편 재판부는 배 씨의 추락사가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농협생명의 면책 항변을 배척했으므로 유족의 또다른 주장에 관해서는 따로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유족의 다른 주장으로는 설령 배 씨의 사망이 약관상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라고 하더라도 배 씨는 보험계약의 체결일 또는 책임 개시일부터 1년 뒤에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로서 보험약관 규정에 따라 보험금 지급 면책사유에서 제외된다는 약관 규정을 근거로 한 것이었는데, 이 면책 제한 규정에 의해서도 농협생명은 보험계약에 따른 보험금 지급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즉 배 씨의 사망은 보험계약의 체결일 또는 책임 개시일부터 1년 뒤에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이므로 이에 의해서도 '재해'사망에 해당합니다.
2) 확정된 판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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