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 대법원, 교통사고 후 우울증 등을 앓다 극단적 선택했다면 보험금 줘야


글 : 임용수 변호사


교통사고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우울증을 앓다 극단적 선택을 한 경우도 사망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교통사고와 극단적 선택으로 인한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는 취지입니다.

대법원 민사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사망한 이 모 씨1)의 유족이 현대해상을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2)

2016년 1월 이 씨는 현대해상의 운전자보험에 피보험자로 가입했습니다. 이 보험계약에는 '피보험자가 교통사고로 발생한 상해의 직접 결과로 사망한 경우' 보험금을 지급하는 특약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이 씨는 2017년 9월 오후 늦게 승용차 운전을 하던 중 도로에 나타난 고양이를 피하다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았습니다. 사고 당시 비가 내리고 있었고 이 씨는 사고로 연기가 나는 차 안에서 구조될 때까지 갇혀 있었습니다. 병원으로 옮겨진 이 씨는 뇌진탕, 경부 척수 손상, 추간판탈출증 등으로 10일간 입원 치료를 받았습니다. 

퇴원 이후 이 씨는 사고 후유증으로 2017년 11월부터 이듬해 3월경까지 병원에서 우울증 등의 치료를 받았습니다. 치료 과정에서 이 씨는 두통과 불안 증상을 계속 호소했고 연탄을 피우거나 처방 약을 과다복용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시도도 했습니다. 2018년 4월 이 씨는 한 대학병원에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등으로 입원치료를 받았고 퇴원 후에도 비오는 날 몸이 떨린다거나 자다가 이상행동을 했습니다.

그러다 재입원을 고려하던 중 이 씨의 남편도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하는 벌어졌습니다. 이 씨는 남편을 간병하다 병원 화장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에 이 씨 유족은 현대해상에 교통상해사망 보험금 1억원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습니다.


재판 진행 중 이 씨의 주치의는 사실조회를 통해 "이 씨는 교통사고로 발병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등으로 치료받았고, 재발이나 악화 방지를 위해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한 상황에서 남편의 교통사고나 자살 당시의 비가 내린 날씨가 이 씨를 다시 자극해 생긴 정신병리에 따라 자살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소견을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정신질환 등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경우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의 사망이었는지 여부는 나이와 신체, 정신적 심리 상황, 사망 시점의 구체적인 상태, 사망자를 에워싼 주위 상황, 사망의 시기와 동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하고, 사실심 법원은 주요우울장애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볼 의학적 견해가 증거로 제출됐다면 함부로 부정할 수 없다」면서 「만약 의학적 소견과 다르게 인과관계를 추단하려면 다른 의학적·전문적 자료를 근거로 해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이 씨는 교통사고로 인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주요우울장애를 앓게 됐고 완치되지 않은 상태에서 외상의 부정적 경험을 자극할 수 있는 외부적 상황들이 존재하는 가운데 극단적 선택을 했으며, 주치의도 자살과 관련성을 갖는 주요우울장애의 악화 가능성도 제시했다」며 「이 씨가 사고 이전에 정신질환을 겪거나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지 않았다는 사정까지 보태어 보면 이 씨가 교통사고로 인한 상해의 직접 결과로 사망했다고 추단하기 충분하다」고 판시했습니다.

앞서 1심3)은 이 씨 유족의 주장을 받아들여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하지만 2심4)은 '교통사고로 우울증이 생기긴 했지만 사망에 이르게 된 건 이 씨 자유 의지에 따른 행동이지 우울증과는 관계가 없다'는 취지에서 원고패소 판결했습니다.

임용수 변호사의 케이스메모


이번 대법원 판결은 "주요우울장애와 자살의 관련성에 관한 의학적 판단 기준이 확립돼 있으므로, 피보험자가 주요우울장애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 자살했다고 볼 만한 의학적 견해가 증거로 제출됐다면 함부로 이를 부정할 수 없고, 만약 그런 의학적 소견과 다르게 인과관계를 추단하려면 다른 의학적ㆍ전문적 자료에 기해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기존 대법원 판례5)의 입장을 재확인한 것입니다.

앞으로도 환자의 치료를 담당했던 의사(주치의)의 견해 및 그 바탕에 있는 의학적 판단 기준을 고려함이 없이 주치의의 소견을 만연히 배척해서는 안 될 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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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 등록일 : 2022년 9월 9일

1) 호칭의 편의상 피보험자에 대해 원고의 성씨를 사용합니다.
2) 대법원 2022. 8. 11. 선고 2021다270555 판결.
3) 서울중앙지방법원 2020. 7. 9. 선고 2019가단5152367 판결(원고승).
4) 서울중앙지방법원 2021. 8. 26. 선고 2020나46778 판결(원고패).
5) 대법원 2021. 2. 4. 선고 2017다281367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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