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판결) 설계사가 계약자 통장·체크카드 갖고 약관대출 및 계약 해지 했다면 보험사는 면책 안돼


글 : 임용수 변호사


보험 가입자의 통장과 체크카드를 갖고 보험 가입자 행세를 한 보험설계사에게 약관대출을 해주고 해약환급금을 지급했다면 보험사는 면책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보험가입자를 위해 직접 소송대리를 했던 임용수 변호사[보험전문]가 판결의 주요 내용을 [단독] 소식으로 알려 드리고 진진한 해설과 법률 조언을 덧붙입니다. 보험 법률문제와 관련한 법률상담을 원하거나 보험소송 의뢰를 원하는 분들은 약관, 청약서, 보험증권, 보험사로부터 받은 관련 서류 등 자료 전부를 지참하고 방문 상담해 주세요. 보험 가입자의 주소나 거주지가 지방이더라도 모든 보험소송은 서울에서 진행할 수 있습니다.]

이 모 씨는 2001년부터 친하게 알고 지내던 케이비손해보험의 보험설계사 한 모 씨를 통해 2007년 8월부터 2018년 2월까지 7건의 보험계약에 가입했다. 그러던 중 2011년 1월 한 씨로부터 '월급에 압류가 들어왔다. 보험 모집을 하려면 통장이 필요하니 통장 하나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받고 한 씨에게 우체국 통장, 체크카드 및 비밀번호를 제공했다. 하지만 한 씨는 딴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는 2011년 1월 전후로 케이비손해보험의 ARS, 콜센터,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계약자 이 씨의 명의로 146건의 약관대출을 받아 챙긴 후 필리핀으로 도주했다. 한 씨는 나아가 2014년 9월에는 이 씨가 가입한 보험 두 개를 해지하고 해약환급금 1600여만원을 받아가기도 했다.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이 씨는 2019년 8월 "보험계약 대출과 보험해지는 무효"라며 케이비손해보험을 상대로 보험계약해지무효확인 등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고법 민사34부[재판장 구자헌 부장판사]는 최근 원고패소 판결한 1심을 변경하고 2011년 1월 이전에 이뤄진 보험계약대출약정 등을 제외한 보험계약대출약정 및 보험계약 해지가 무효임을 확인한다며 원고 일부승소(소송물가액 2억1328만원 중 80% 승소) 판결을 내렸다.1)

케이비손해보험은 "한 씨가 이 씨의 통장과 체크카드 등을 제시해 이 씨인 것처럼 대출약정을 체결하고 보험계약을 해지한 행위에 대해서는 민법 제126조 표현대리 법리가 유추적용되므로 이 씨는 한 씨의 행위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민법 제126조는 '대리인이 그 권한 외의 법률행위를 한 경우 제3자가 그 권한이 있다고 믿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는 때는 본인은 그 행위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민법 제126조의 표현대리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대리인에게 일정한 기본대리권이 있고, 대리인이 기본대리권의 범위를 넘는 대리행위를 했으며, 상대방이 대리인에게 대리행위를 할 대리권이 있다고 믿고 또 그렇게 믿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재판부는 「이 씨가 한 씨의 부탁을 받고 우체국 계좌를 개설해 그 통장, 체크카드 및 비밀번호를 제공한 것은 한 씨에게 이 씨를 대리해 우체국 계좌의 입출금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권한을 수여했다고 봐야 하고, 이는 표현대리 법리의 유추적용에 있어 기본대리권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정당한 이유가 있다는 케이비손해보험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대출업무를 담당하는 케이비손해보험으로서는 본인 확인에 관해 일반인보다 고도의 주의의무가 있고, 특히 ARS를 통한 대출과 같은 비대면거래의 경우 본인 확인의 필요성이 더 높다」며 「신용카드 인증 이외에 타인이 쉽게 입수할 수 없는 본인 명의 휴대전화 또는 공인인증서를 통한 인증 방식을 거치지 않음으로써 본인 확인을 위한 조치가 불충분했다고 보이므로, 케이비손해보험이 한 씨가 이 씨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으로 믿은 데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어 콜센터를 통한 대출과 같은 비대면거래와 관련해서 「케이비손해보험에 등록된 고객 전화번호는 보험설계사 또는 콜센타 상담원에 의해 언제라도 쉽게 변경이 가능하므로 대출신청 시 걸려온 전화번호와 등록된 전화번호가 동일하다는 것만으로 본인임을 확인할 수 있다고는 보기 어려운 점, 각 대출금이 10만 원 미만의 소액이기는 하나 본인확인 절차를 전혀 거치지 않았던 점 등에 비춰 보면, 케이비손해보험이 한 씨가 이 씨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으로 믿은 데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보험계약 해지무효확인 청구와 관련해서는 「보험계약 해지와 같이 보험계약자의 권리의무에 큰 영향을 미치는 행위에 대해서는 본인 확인의 필요성이 더 높다고 할 것인 점, 본인 명의 휴대전화 또는 공인인증서를 통한 인증 방식을 거치지 않아도 되도록 한 것은 본인 확인을 위한 조치로서는 불충분했다고 보이는 점 등에 비춰 보면 보험계약 해지와 관련해 케이비손해보험이 한 씨가 이 씨 본인으로서 이씨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으로 믿은 데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앞서 1심은 '케이비손해보험이 한 씨를 이 씨라고 믿은 데 정당한 이유가 있다'며 원고패소 판결하고 케이비손해보험의 손을 들어줬다.

임용수 변호사의 케이스메모


소송이 종결되기까지 1심과 항소심을 합해 총 2년 6개월 가량의 기간이 소요된 사건이다. 보험 실무적인 측면에서나 법리적인 측면에서 재판부를 설득하고 이해를 시키는 것이 매우 어려웠던 사안이었던 것 같다.

항소심 판결에 대해서도 일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으나, 의뢰인 이 씨가 우체국 통장과 체크카드, 비밀번호 등을 제공한 잘못이 있다는 점과 대법원이 원칙적으로 법률심이라는 점 등을 고려해 승복하기로 결정했고, 이 판결은 쌍방이 항소하지 않아 확정됐다.

민법 제126조의 표현대리는 자칭 대리인이 본인을 위한다는 의사를 명시 또는 묵시적으로 표시하거나 대리의사를 가지고 권한 외의 행위를 하는 경우에 상대방에게 자칭 대리인에게 대리권이 있다고 믿고 그 같이 믿는 데 정당한  이유가 있을 것을 요건으로 성립한다. 단지 본인의 성명을 도용해 자기가 마치 본인인 것처럼 기망, 본인 명의로 직접 법률행위를 한 경우는 표현대리가 성립될 수 없다.

민법 제126조의 표현대리는 대리인이  본인을 위한다는 의사를 명시 혹은 묵시적으로 표시하거나 대리의사를 가지고 권한 외의 행위를 하는 경우에 성립하고, 사술을 써서 대리행위의 표시를 하지 않고 단지 본인의 성명을 모용해 자기가 마치 본인인 것처럼 상대방을 기망, 본인 명의로 직접 법률행위를 하는 경우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한해서만 민법 제126조 소정의 표현대리의 법리를 유추적용할 수 있다. 여기서 특별한 사정이란 본인을 모용한 사람에게 본인을 대리할 기본대리권이 있었고, 상대방으로서는 그 모용자가 본인 자신으로서 본인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으로 믿은 데 정당한 사유가 있었던 사정을 의미한다.2)

한편, 민법 제126조에 의한 표현대리 행위에 있어 그 주장·입증책임은 그것을 유효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있다.3)

표현대리의 법리가 적용될 권한을 넘은 행위는 그 대리인이 가지고 있는 진실한 대리권과 동종임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4) 약관대출이나 보험계약 해지와 같은 금융거래에 있어서 금융기관은 본인 및 대리권의 확인에 관해 일반인보다 높은 고도의 주의의무가 있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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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 등록일 : 2022년 2월 20일

1) 확정된 판결이다. 이하에서는 원고승소 부분에 한해서만 판결 내용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2) 대법원 2002. 6. 28. 선고 2001다49814 판결 참조.
3) 대법원 2000. 3. 23. 선고 99다50385 판결, 대법원 1968. 6. 18. 선고 68다694 판결 등 참조.
4) 대법원 1963. 8. 31. 선고 63다326 판결 등 참조.
5) 대법원 2003. 12. 12. 선고 2001다29896 판결 등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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