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임용수 변호사
법원이 보험 소비자에게 운전자보험 상품을 정확히 설명해야 할 의무를 위반한 보험사에 형사합의금에 상당하는 보험금 전액을 보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약관 설명의무를 위반한 경우 약관의 내용을 보험계약의 내용으로 주장할 수 없도록 하던 기존 판결과는 다르게 보험설계사에 의해 설명된 내용대로 계약 당사자 간에 별도의 합의 내지 개별약정이 성립된 것으로 인정한 판시 내용이어서 주목된다.
김 모 씨는 2018년 8월 한 유한회사 소유의 영업용 화물차를 운전하다 교통사고를 일으켜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 김 씨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으로 기소돼 항소심 재판 중인 2019년 6월 피해자의 유족들에게 1500만 원을 합의금으로 지급했다. 이후 김 씨는 디비손해보험에게 합의금에 상당하는 보험금의 지급을 요구했다.
그러나 디비손해보험은 김 씨가 가입한 보험 약관에 "자가용" 자동차를 운전하다 일어난 사고에 대해서만 보험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김 씨가 사고를 일으킬 당시 운전한 자동차는 자가용 자동차가 아니라 "영업용" 자동차였으므로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며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그러자 김 씨는 보험계약을 체결할 당시 디비손해보험의 보험설계사가 회사 트럭을 운전하다 사고를 일으킬 경우도 합의금이 지급된다고 설명했으므로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며 법원에 소송을 냈다. 실제로 김 씨가 보험계약 당시 보험설계사에게 "회사 트럭으로 운전하다가 사고가 나면 따로 보상을 받을 수 있어요?"라고 문의했고, 이에 대해 보험설계사가 "그럼요 회사 차를 운전하다가 사고가 일어날 수 있고 그럴 때 개인적인 합의라든지, 나라에서 나오는 벌금이라든지, 변호사를 선임해야 하는 비용이라든지 이런 비용들은 내 차 남의 차 상관없이 다 나가시는 것이에요"라고 답변한 사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주지법 민사1부(재판장 오재성 부장판사)는 김 씨가 디비손해보험을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 소송의 항소심에서 디비손해보험의 항소를 대부분 기각하고 "1천500만 원을 지급하라"며 김 씨 측의 손을 들어줬다고 밝혔다.1)
재판부는 「일반적으로 당사자 사이에서 보통보험약관을 계약내용에 포함시킨 보험계약서가 작성된 경우 계약자가 그 보험 약관의 내용을 알지 못하는 경우라도 그 약관의 구속력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나, 다만 당사자 사이에서 명시적으로 약관의 내용과 달리 약정한 경우 약관의 구속력은 배제된다고 봐야 한다」며 「보험회사를 대리한 보험대리점 내지 보험외판원이 고객에게 보통보험약관과 다른 내용으로 보험계약을 설명하고 이에 따라 계약이 체결된 경우 그때 설명된 내용이 보험계약의 내용이 되고 그와 배치되는 보통약관의 적용은 배제돼야 한다(대법원 88다4645 판결 참조)」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어 「비록 디비손해보험의 보험 상품 가입을 권유한 보험설계사가 마지막에 영업용 차량을 운전하는 경우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약관을 설명했다고는 하나, 이는 일반론을 설명한 것에 불과하고 그에 앞서 김 씨에게 명시적으로 회사 트럭을 운전해 사고를 일으키는 경우 보험금이 지급된다고 설명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영업용"이란 단어의 통상의 용례에 따르면 보통의 주의의무를 가진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영업용"을 '회사가 영업을 위해 사용하는'이라고 이해해 회사 소유의 차량은 "영업용"이라고 이해할 가능성이 높다」며 「따라서 김 씨가 개별적·구체적으로 문의한 '회사 트럭'에 대해 보험설계사가 "영업용"인지 "자가용"인지 구분하지 않고 보험금이 지급될 것이라고 단언해 설명했다면, 김 씨로서는 영업용 자동차에 대해서는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는다는 일반 약관이 존재하기는 하나 자신이 개별적·구체적으로 문의한 '회사 트럭'에 대해서는 일반 약관에 우선하는 특별 규정이 존재할 것이라고 받아들였을 것이고, 이 같은 해석이 소비자를 보호하는 약관규제법상의 목적에 부합하는 해석이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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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결국 김 씨와 디비손해보험 사이에는, 김 씨가 회사 트럭을 운전하다가 사고를 일으킨 경우라도 교통사고처리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하는 합의가 있었다고 봐야 하므로, 디비손해보험은 김 씨에게 김 씨가 이 사고로 피해자에게 지급한 교통사고처리지원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다만 약관에 따르면 피보험자가 형사합의금으로 지급한 금액을 지급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디비손해보험은 형사합의서에 기재된 2100만 원 중 김 씨가 피해자에게 실제로 지급한 1500만 원을 지급하도록 했다.
임용수 변호사의 케이스메모
보험사나 보험 모집 종사자는 보험계약을 체결할 때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에게 보험 약관에 기재돼 있는 보험 상품의 내용, 보험료율의 체계 및 보험청약서상 기재 사항의 변동 사항 등 보험계약의 중요한 내용에 대해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설명할 의무가 있다. 보험사가 약관 설명의무에 위반해 보험계약을 체결한 때는 그 약관의 내용을 보험계약의 내용으로 주장할 수 없다.2) 보험사를 위해 보험계약 체결을 중개하는 보험설계사의 잘못되거나 허위·과장된 설명으로 인해 보험계약자에게 손해가 발생했을 때는 보험사는 금융소비자보호법 제45조 제1항에 따라 보험계약자에게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 하지만 약관 설명의무 위반으로 인해 발생하는 법률 효과는 보험사가 설명하지 않은 약관 조항을 보험계약의 내용으로 주장할 수 없는 데 그치는 것이며, 약관과 다른 내용으로 보험계약이 체결됐다는 보험계약자 측의 주장이 곧바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즉 보험 약관의 내용과 다른 개별약정 내지 합의가 성립됐다는 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은 그 사실을 주장하는 보험금 청구자 측에 있다는 취지다.
이 판결의 판시 내용 중에는 "보험회사를 대리한 보험대리점 내지 보험외판원"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통상적인 보험모집인으로서의 보험설계사는 보험계약 체결을 대리할 "대리권" 즉 계약 체결 대리권이 없다. 보험설계사는 보험계약의 체결을 중개하는 사실행위만 할 수 있는 것이 원칙이다. 이 판결은 디비손해보험 측의 보험설계사에게 계약 체결 대리권이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삼고 있으나, 보험사가 계약 체결 대리권을 수여한다는 취지의 위촉계약 당사자 간의 특약이 없는 한 보험설계사는 계약 체결 대리권이 없는 중개인에 불과하다.
만약 보험설계사가 보험회사로부터 보험계약 체결에 관한 대리권을 수여받은 사실이 있다면 구두에 의한 계약이든 청약서 등의 서면에 의한 계약이든,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보험설계사가 고객에게 약관과 다른 내용으로 보험계약을 설명하고 이에 따라 계약이 체결된 경우 그때는 설명된 내용이 보험계약의 내용이 되고 그와 배치되는 약관의 적용은 배제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계약 체결을 중개하는 사실행위만 하는 보험설계사가 약관과 다른 내용의 설명을 했다고 해서 설명된 내용이 보험계약의 내용이 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보험설계사의 잘못된 설명에 대해 디비손해보험 측에게 손해배상책임을 지우는 것이 합당했다고 생각된다.
2) 대법원 2015. 11. 17. 선고 2014다81542 판결 등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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