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판결) 만취 상태서 창문 추락사..."자살에 관한 객관적 증거 없다면 보험금 줘야"


글 : 임용수 변호사


만취 상태서 아파트 15층 창문 아래로 추락해 사망한 경우 유서조차 남기지 않는 등 명백한 자살 동기를 찾을 수 없고 실족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보험사가 자살을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부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임용수 변호사(보험전문)가 판결을 [단독] 소식으로 전하고 해설합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1-1부(재판장 허일승 부장판사)는 숨진 고 모 씨1)의 유족(자녀)이 동양생명보험을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 소송의 항소심에서 동양생명의 항소를 기각하고 "1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1심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2)

재판부는 「보험계약상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를 보험사의 면책사유로 규정하고 있는 경우,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 책임을 면하려면 면책사유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입증할 책임이 있다」며 「보험사는 자살 의사를 밝힌 유서 등 객관적인 물증의 존재나 일반인의 상식에서 자살이 아닐 가능성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이 들지 않을 만큼 명백한 주위 정황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고 씨가 사고 발생 직전 만취해 자신의 몸조차 가누기 어려운 상태에서 자신이 위험한 행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별하지 못하고 창문을 열고 기대거나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가 추락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고 씨가 떨어진 창문에는 추락을 방지하기 위한 별다른 안전장치가 없었고, 그 높이는 창문 옆에 놓여 있던 침대를 기준으로 90cm여서 키가 약 158cm인 고 씨가 침대 위에 올라설 경우 큰 어려움 없이 창문에 상체를 기대거나 창문 밖으로 상체를 내밀 수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감정인은 고 씨가 스스로 창문 난간 상단에 올라서서 난간 바깥쪽으로 상체를 이동시키는 방법으로 추락했거나 창문 난간에 올라서서 우측 창문틀 쪽을 향하는 자세로 뛰어내렸다는 의견이지만, 사고 발생 10여 분 전에 몸을 가누기도 어려운 상태였던 고 씨가 집으로 돌아간 뒤 침대에서 90cm 높이에 위치한 얇은 창문 난간 위로 정확히 올라서서 뛰어내리는 것이 가능했다고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면서 「고 씨가 사고 당시 15세에 불과한 자녀와 65세의 어머니를 홀로 부양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상황에서 유서조차 남기지 않고 자살하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판시했습니다. 


고 씨는 2017년 5월 서울 은평구 집에서 침대 바로 옆에 있는 창문으로 추락해 사망했습니다. 고 씨는 사고 전에 한 정신과의원에서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치료를 받았고 사고 발생 13일 전에도 잠을 잘 못 잔다는 내용을 상담했습니다.

이에 유족은 '고 씨가 실족 사고로 추락해 사망했다'며 동양생명에 재해사망보험금 1억 원의 지급을 청구했지만 거절당하자 2017년 9월 소송을 냈습니다. 

앞서 1심도 고 씨가 술에 취한 상태로 침대 위에서 창문에 기대어 있거나 아래를 내려보다가 중심을 잃어 추락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유로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로 보기 어렵다'며 유족 측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임용수 변호사의 케이스메모


인보험계약에서 담보되는 보험사고의 요건인 사고의 우발성과 외래성 및 상해 또는 사망이라는 결과와 사이의 인과관계에 관해서는 보험금 청구자에게 그 증명 책임이 있습니다.3)

이번 사례는 고 씨가 자신의 집에서 추락해 사망한 외래의 사고에 관한 것으로, 유족이 사고의 외형이나 유형상 고 씨의 과실 또는 제3자의 고의 또는 과실, 기타 예측할 수 없는 원인에 의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거나 그것이 통상적인 과정으로는 기대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을 증명했고, 객관적 정황상 고의에 의한 사고라는 것이 명확하지 않다고 판단, 일응 '사고의 우연성'에 관한 증명을 다한 것으로 봤던 경우입니다.

이 경우 동양생명이 보험금 지급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는 그 사고가 피보험자인 고 씨의 고의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는 점을 증명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때의 증명은 법관의 심증이 확신의 정도에 달하게 하는 것을 가리키고, 그 확신이란 자연과학이나 수학의 증명과 같이 반대의 가능성이 없는 절대적 정확성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통상인의 일상생활에 있어 진실하다고 믿고 의심치 않는 정도의 고도의 개연성을 말하고 막연한 의심이나 추측을 하는 정도에 이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보험사는 자살의 의사를 밝힌 유서 등 객관적인 물증의 존재나, 일반인의 상식에서 자살이 아닐 가능성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이 들지 않을 만큼 명백한 주위 정황 사실을 증명해야 합니다.

이 같은 법리에 따를 때 유서가 발견된 대부분의 경우는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 즉 자살로 인정되겠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 일부 판례의 입장입니다. 즉 통상 자살을 계획하는 경우 유서를 남기는 경우가 많지만 그 이외에 충동적으로 자살을 선택하는 경우 등에 있어서는 유서를 남기지 않고 자살하는 경우도 많다는 점을 참작해야 한다는 취지로 판시한 사례가 있습니다. 반면 유서를 남기는 경우라도 '심신상실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을 해친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사례도 있습니다.

유사한 사례4)가 더 있습니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모텔 창문을 통해 밖으로 추락한 사안인데, 담당 재판부는 피보험자가 술에 취해 바람을 쐬거나 구토하기 위해 머리를 밖으로 내밀었을 때 균형을 잃고 모텔 밖으로 추락할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반면, 사고 전후의 정황을 직접적으로 목격한 사람이 없다면 그 사고는 '우발적인 외래의 사고'로서 보험계약이 정한 재해라고 봐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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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 등록일 : 2021년 1월 9일

1) 호칭의 편의상 피보험자(망인)에 대해 원고의 성명을 사용합니다.
2) 서울중앙지방법원 2020. 11. 18. 선고 2019나73163 판결.
3) 대법원 2009. 12. 10. 선고 2009다56603, 2009다56610 판결, 대법원 2010. 5. 13. 선고 2010다6857 판결 등 참조.
4) 대구지방법원 2011. 12. 14. 선고 2011나11779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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