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판결) 업무상 재해로 자살한 작업자 유족에게 상해사망 보험금 지급

업무상 과로 및 스트레스

글 : 임용수 변호사


업무상의 과로나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의 심화로 정신병적 증상이 발현돼 자살한 근로자 유족에게 보험사가 상해사망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수원지법 민사2부(재판장 윤희찬 부장판사)는 숨진 작업자 양 모 씨1) 유족이 현대해상화재보험을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1심의 원고 패소 판결 일부를 뒤집고 양 씨 유족 측의 손을 들어줬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현대해상에 대해 유족에게 보험금 1억1천만 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습니다.2)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하자 보수 업무를 담당하는 작업자였던 양 씨는 2014년 6월 대전 유성구에 있는 자택 아파트 옥상에서 전선으로 목을 매는 방법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에 유족 측이 업무상 재해로 인한 사망임을 인정하는 관련 행정소송 판결을 선고받은 이후 보험계약에 따른 보험금 지급을 청구했지만, 현대해상은 행정소송 판결 내용만으로는 보험사고가 약관 면책조항의 예외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고, 보험금 청구권의 소멸시효도 완성됐다며 그 지급을 거절했습니다. 강력 반발한 유족은 현대해상을 상대로 법원에 소송을 냈습니다.

재판의 쟁점은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로 발생한 우울증의 심화로 자살에 이른 경우 재해에 해당할 수 있느냐였습니다. 

재판부는 「자살은 원칙적으로 보험 면책조항에 의해 보험금 지급 대상이 되지 않지만, 예외적으로 정신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 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사망했다면 면책조항의 예외에 해당해 보험사는 면책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양 씨가 적성에 맞지 않는 과도한 업무와 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불안감과 불면증을 겪으면서 우울증이 발생했고 여기에 업무 처리에 대한 상관의 질책, 작업 현장 내 인간관계의 어려움 및 해외 파견 문제 등이 더해져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더욱 심해졌다」며 「그로 인해 정신병적 증상이 발현됨으로써 정상적인 인식 능력이나 행위 선택 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에서 자살에 이르게 됐다」는 점을 근거로 양 씨의 사망을 면책조항의 예외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다른 쟁점인 '2014년 6월부터 보험금 청구권의 소멸시효 기간인 2년이 경과한 2017년 10월 소송을 제기했으므로 보험금 청구권이 시효로 소멸됐다'는 현대해상 측의 시효 소멸 주장에 대해서는 「유족으로서는 관련 행정소송 판결이 선고된 2017년 6월 이전에는 보험사고의 발생 여부를 과실 없이 알지 못했던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며 「유족이 그때부터 2년의 소멸시효가 완성되기 전인 2017년 10월 현대해상을 상대로 소를 제기한 이상 유족의 보험금 청구권은 시효로 소멸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 현대해상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임용수 변호사의 케이스메모


보험금 지급 면책사유인 자살은 의도적으로 자기의 생명을 끊어 사망의 결과를 발생하게 한 행위를 말하며 이는 피보험자가 정신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 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스스로 사망한 경우까지 포함하는 것은 아닙니다. 현대해상의 보험 약관에도 피보험자(보험대상자)가 심신상실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 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을 해친 경우에는 보험금을 지급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사안의 경우 유족이 2014년 9월 근로복지공단에 양 씨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유족급여 및 장의비의 지급을 청구했으나 근로복지공단은 2015년 6월 양 씨의 사망과 업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유족급여 등의 지급을 거부하는 처분을 했습니다. 그 후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도 2015년 근로복지공단의 거부처분에 관한 유족의 재심사 청구를 기각하는 재결을 했습니다.

이에 유족은 2015년 12월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거부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서울행정법원은 2017년 6월 양 씨의 업무량, 근무 환경 및 신체적·정신적 상황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해 양 씨의 자살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고 유족의 청구를 인용하는 판결을 내렸으며 그 판결은 2017년 7월 확정됐습니다.

이번에 소개한 판결은 파기환송심의 것으로 이 사례에서 재판부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령의 고의에 의한 사망 중 예외적으로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는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의 자해 행위는 약관의 면책조항에서 정하는 면책 예외 사유와 거의 일치한다"고 판시했습니다. 이것은 이 판결에 앞서 선고된 대법원 파기 환송 판결(대법원 2020. 7. 9. 선고 2019다302718 판결)에서의 판시 내용을 그대로 인용한 내용인데,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의 업무상 재해 요건과 민영 보험사 약관에 규정된 재해 내지 상해의 요건, 양자의 보호 범위, 입법 취지 및 목적 등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간과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판시 내용은 무난하고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 같습니다. 

한편, 보험금 청구권은 보험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추상적인 권리에 지나지 않을 뿐이고, 보험사고의 발생으로 인해 구체적인 권리로 확정돼 그때부터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되므로,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칙적으로 보험금 청구권의 소멸시효는 보험사고가 발생한 때부터 진행합니다. 다만 보험사고가 발생한 것인지 여부가 객관적으로 분명하지 않아 보험금 청구권자가 과실 없이 보험사고의 발생을 할 수 없었던 경우도 보험사고가 발생한 때부터 보험금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진행한다고 해석하면 보험금 청구권자에게 너무 가혹해 사회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반할 뿐만 아니라, 소멸시효 제도의 존재 이유에 부합된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이처럼 객관적으로 볼 때 보험사고가 발생한 사실을 확인할 수 없는 상태에 있는 경우는 보험금 청구권자가 보험사고의 발생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던 때부터 보험금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진행합니다.3)

이 파기환송심 판결에서 담당 재판부는 관련 행정소송의 선고 시점을 보험금 청구권 소멸시효의 기산점으로 해석하는 판단을 하고 있는데, 관련 행정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보험금 청구권자에 대해서는 소멸시효가 언제부터 진행된다고 봐야 하는지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앞서 적시한 이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파기 환송 판결인 대법원 2019다302718 판결의 경우 보험금 청구권의 시효 소멸 여부는 쟁점화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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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 등록일 : 2020년 12월 12일

1) 호칭의 편의상 피보험자에 대해 원고(유족)의 성명을 사용합니다.
2) 수원지방법원 2020. 10. 23. 선고 2020나74214 판결.
3) 대법원 2012. 9. 27. 선고 2010다101776 판결 등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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