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 빠른 속도로 부정확하게 전화로 질문했더라도 보험 가입 전 병력 안 알렸으면 고지의무 위반


글 : 임용수 변호사


보험사 측이 과거 병력 등 중요 사항을 질문하고 '예', '아니오' 등으로 답변하는 형식의 전화 보험 가입 과정에서 보험 모집인이 빠른 속도로 부정확하게 질문을 했더라도, 가입자가 질문 내용을 다시 확인하지 않은 채 별다른 생각 없이 대충 대답했다면 모집인의 질문을 제대로 이해했던 것으로 봐야 하므로 가입자의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한 보험사의 보험계약 해지는 유효하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임용수 변호사(보험전문)가 판결 내용을 소개하고 해설합니다. 

서울고법 민사2부(재판장 권기훈 부장판사)는 현대해상화재보험이 박 모 씨를 상대로 낸 채무 부존재 확인 소송 항소심에서 1심과 같이 원고승소 판결했다고 밝혔습니다.1)

박 씨는 2014년 1월 비씨카드 현대해상 소속이라고 말하는 전화 상담원(모집인)의 보험 가입 권유 전화를 받고 상해후유장해와 질병후유장해, 상해사망을 보장하는 현대해상의 보험 상품에 가입했습니다. 전화 통화(음성 녹음)를 통한 보험 가입 과정에서 보험 모집인은 박 씨의 과거 병력 등 건강 상태를 질문했고, 그 중 박 씨는 "최근 5년 안으로 입원, 수술, 제왕 절개 또는 계속해 7일 이상 치료 또는 계속해 30일 이상 투약 받은 적 있으세요?"라는 모집인의 질문에 "없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모집인이 매우 빠른 속도로 연이어 질문을 했고, 박 씨는 많은 부분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지만 모집인의 질문에 다시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실과 다른 대답이었습니다. 박 씨는 보험 가입 전인 2011년 7월 '우측 상악 악성 법랑 모세포종 절제술 및 장골 이식술'이라는 암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보험에 가입한 박 씨는 이후 2014년 10월 암(법랑 모세포종)이 재발해 수술을 받은 뒤 후유장해가 발생하자 현대해상에 보험금을 청구했습니다. 하지만 현대해상은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고 "박 씨가 병력을 미리 알리지 않았다"며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보험계약을 해지했습니다. 

박 씨는 "보험 모집인인 상담원 말이 빨랐고 발음도 부정확해 병력 고지 기회를 충분히 주지 않았다"거나 "계약 체결 당시 정신없이 바빴기 때문에 보험 모집인의 계속되는 질문에 별다른 생각 없이 답변했다"며 "다른 보험사에는 수술 전력을 고지했는데, 현대해상이 다른 보험사 계약 내용을 확인하는 등의 방법을 거쳤다면 병력을 충분히 검토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맞섰습니다.


재판부는 「보험 모집인은 계약 체결 당시 박 씨가 고지 사항과 관련된 질문에 허위 또는 거짓 대답하는 경우 보험사고가 발생해도 보상이 되지 않고 보험계약이 해지되니 유의하기 바란다고 말했고, 박 씨도 이해했다는 취지로 '예'라고 대답했다」며 「박 씨가 수술 병력이 없다고 대답했지만 2011년 7월 수술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수술 관련 병력은 보험계약 체결 여부 및 조건을 결정할 때 고려되는 중요한 사항으로 추정돼 고지의무의 대상」이 됨에도 「박 씨는 이 같은 고지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또 「설령 보험 모집인의 말이 빠르고 발음이 부정확했다 할지라도 박 씨가 내용을 다시 확인하지 않은 채 대답한 점에 비춰 보면, 모집인이 하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했던 것으로 봐야 한다」며 「보험모집인은 박 씨에게 과거 병력을 고지할 기회를 충분히 부여했다고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재판부는 다른 보험사에 병력을 고지했다는 박 씨의 주장에 대해서도 「보험 심사를 할 때 보험계약자가 다른 보험회사와 체결한 보험계약에서 고지한 내용에 대해 조회할 의무가 있다거나 적어도 그럴 것이라는 점을 예상할 수 있다고 볼 만한 사정을 찾아볼 수 없다」며 「보험회사들 사이에 피보험자의 개인 신상에 관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다거나 보험회사가 보험개발원 등을 통해 피보험자의 기존 보험금 청구 내역에 관한 정보 등을 용이하게 확인할 수 있다고 볼 만한 자료도 없으므로 현대해상의 과실이 있다고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임용수 변호사의 케이스메모


고지의무자는 보험사가 고지를 요구한 질문 사항에 대해 성실하게 답변하면 고지의무(계약 전 알릴의무)를 이행한 것이 됩니다. '성실한' 답변을 했는지, 아니면 '불성실한' 답변을 했는지가 고지의무를 위반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보험 가입자가 어떤 보험 청약을 하며 다른 보험사에게 자신의 병력을 고지했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그 병력 정보가 보험사들의 정보 공유 대상이 된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보험사들 사이에는 보험금 지급 이력과 관련된 보험 가입자의 개인 신상에 관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인 보험사고정보시스템(ICPS, Insurance Claims Pooling System)이 매우 잘 갖춰져 있습니다. 


보험사고정보시스템의 존재는 보험사들끼리만 공유하고 쉬쉬하는 그들만의 공공연한 사실인데도 이제까지 소송 등의 분쟁 과정에서 일부 보험사는 그 존재 사실 자체를 부인하며 오리발을 내밀곤 했습니다. 이런 경우 어떤 법원은 순순히 믿어 줬고, 어떤 법원은 거짓 구실에 철퇴를 내렸습니다.

모든 생보사와 손보사는 보험개발원(현재 관할 : 한국신용정보원)이 운영하는 보험사고정보시스템상의 보험금 지급 이력 정보를 제공받아 보험 가입자들의 보험사고 정보를 공유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현대해상은 다른 보험사들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자사가 개발하고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언더라이팅 지원 시스템(UDSS, Underwriting Decision Support System = 보험사고정보시스템을 적극 활용한 시스템)을 구축해 자체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보험사고정보시스템에는 보험사고가 발생한 보험 가입자의 보험금 청구 이력[예를 들면, 가입 보험사, 보험의 종목, 보험사고 발생 일시, 사고 접수일, 보험금 지급일, 지급 보험금 액수, 사고 구분, 사고 내용(① 병명이나 교통사고 등 상해의 사고 원인, ② 입원 일수, 통원 일수, 입원 시기 등의 치료 내역)을 포함한 일체의 질병 및 상해 사고 정보 등]이 비교적 상세하게 기재돼 있습니다.

보험사들은 그동안 보험개발원에서 아이디(ID)와 비밀번호(PW)를 부여받은 뒤 보험사고정보시스템에 접속해 보험금 지급 이력 정보를 신속하게 확인해왔습니다. 그러나 이 보험사고 정보시스템은 2018년 12월 10일 보험개발원에서 한국신용정보원으로 이관됐습니다.

한국신용정보원은 자체 개발한 '보험신용정보 통합조회시스템(ICIS, Insurance Claim Information System)'인 '보험사기 다잡아'를 구축한 상태입니다. 보험사들은 보험개발원의 ICPS로 보험 가입자의 과거 보험금 지급 이력 정보만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한국신용정보원의 ICIS는 보험금 지급 이력 정보는 물론 보험계약 정보와 공제 기관들의 가입 내역까지도 통합 조회해 보험 사기를 예측하고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한국신용정보원이 2017년 2월 보험사 실무진과 보험개발원 등 유관 기관과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기존 ICIS의 기능을 개선한 '보험사기 예측 모형'을 개발하는 작업을 한 만큼 한국신용정보원이 개발한 '보험 사기 예측 모형'을 비롯한 ICIS 등의 자료는 일정한 절차를 거쳐 보험사들의 보험 인수 및 보험금 지급 심사를 하는 담당자들에게 제공돼 활용될 것이고, 그 결과 현재까지도 여전히 보험 가입자들의 보험금 지급 이력 정보가 보험사들 간에 공유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런 사실 때문에 과거에 존재했던 보험사의 계약 해지권 제한 문제는 현재도 동일하게 발생합니다. 보험사의 '계약 전 알릴 의무 위반의 효과'에 관한 약관 조항에는 『'(보험)회사가 계약 당시에 그 사실을 알았거나 과실로 인해 알지 못했을 때'는 계약을 해지하거나 보장을 제한할 수 없다』며 해지권 제한에 관한 규정(「약관상 보험사의 고의·과실 조항」)을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피보험자가 보험계약 체결 전에 보험사가 주장하는 고지의무 위반 사항과 동일한 사실로 이미 보험금을 지급받은 이력이 있었다면 보험사로서는 그 피보험자의 보험금 지급 이력에 관한 정보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고 할 수 있으므로 「약관상 보험사의 고의·과실 조항」에 따라 보험계약을 해지하거나 보장을 제한할 수 없게 됩니다(참고로, 이때의 보험사의 과실은 중과실이 아니라, 경과실이 포함된 '과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보험금 지급 이력에 관한 정보에 대해서 「약관상 보험사의 고의·과실 조항」이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보험사고 및 보험금 지급 내역이 포함된 보험금 지급 이력 정보가 고지의무의 대상이 되는 사실일 때만 「약관상 보험사의 고의·과실 조항」이 적용된다고 풀이됩니다. 하급심 판결 중에도 고지의무의 대상 즉 가입 거절 대상이 '최근 3년 이내에 오토바이를 소유 또는 운전한 사실이 있는 오토바이 운전자'인 경우, 보험계약 체결일로부터 과거 약 13년 전에 발생한 오토바이 사고 및 보험금 지급 사실은 보험계약에 따른 고지의무의 대상이 되는 사실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보험사가 이런 사실을 확인하지 않은 것이 「약관상 보험사의 고의·과실 조항」상의 '회사가 계약 당시에 그 사실을 알았거나 과실로 인해 알지 못했을 때'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한 사례가 있습니다.2) 

약관 설명의무와 관련된 판결이기는 하지만, 이번에 소개한 판결의 판시 내용과 완전 반대되는 취지의 같은 법원 판결도 있습니다. 보험 가입자 소모(48세)씨가 "보험계약일부터 암에 대한 책임 개시일3)의 전일 이전에 암 진단 확정을 받으면 보험계약을 무효로 한다는 약관 조항을 제대로 설명 듣지 못했으므로, 보험계약은 무효가 아니다"라며 라이나생명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서울고법은 「전화 통화로 보험계약을 체결하면서 라이나생명과 업무 제휴 관계에 있는 정유 회사 영업사원이 빠른 속도로 읽어 준 보험약관 내용 중 '암에 관한 책임 개시일은 계약일부터 그날을 포함해 90일이 지난날의 다음날로 합니다'라는 부분이 포함돼 있는 것만으로는 보험 가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설명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 없다」며 「그렇다면 라이나생명은 면책 약관을 보험계약의 내용으로 주장할 수 없으므로, 암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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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 등록일 : 2019년 1월 12일
  • 1차 수정일 : 2020년 9월 6일(재등록)

1) 서울고등법원 2017나2055603 판결.
2) 1차 수정일 : 2019년 2월 21일 (글 추가)
3) 암 보장에 관해서는 '보험계약일로부터 그날을 포함해 90일의 지난 날의 다음날'을 책임개시일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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