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 차에서 내리다 빙판에 미끄러져 넘어져 머리 부상, 보험금 지급해라


글 : 임용수 변호사


운전대를 잡고 있을 때 사고가 일어나야만 자동차보험에서 정하는 보험사고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를 멈추고 운전대를 놓고 있던 상태일지라도 자동차 보험사고가 생길 수 있다. 운전자석을 벗어나더라도 자동차 사고로 입은 상해나 사망을 보상하는 '자기신체사고(자손사고)'가 될 수 있다는 취지다.

운전자가 차에서 내리다가 겨울 한파 속에 꽁꽁 얼어버린 빙판길에 미끄러져 머리에 심한 부상을 입었다면, 그런 부상을 자동차 사고로 인한 것으로 인정받아 보험금을 받을 수 있을까? 임용수 변호사(보험전문)와 함께 살펴보도록 한다.

최 모 씨는 어느 겨울 저녁 집 앞 도로에 자동차를 잠시 세우고 조수석에 함께 탄 아내가 장바구니를 내리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 시동과 전조등이 켜진 상태에서 운전석 문을 열고 내리던 중 사고를 당했다. 최 씨가 차에서 내리다가 무언가에 걸려 균형을 잃고 빙판길에 넘어지면서 벌어진 사고였다. 사고 당시 머리를 다친 최 씨는 우반신 마비와 언어장애, 의식장애 등 심각한 후유장해를 입고 100%의 노동능력을 잃었다는 진단을 받았다. 

최 씨 부부는 최 씨가 차에서 내리던 도중 외투가 보조 제동 장치(사이드 브레이크)에 걸려 넘어지면서 벌어진 사고이므로 자동차를 그 용법에 따라 사용하다가 발생한 보험사고라고 주장했다. 즉 자동차의 고정 장치인 사이드 브레이크 때문에 사고를 당한 것이니 보험사였던 현대해상이 보험계약에 따라 부상보험금과 후유장해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하지만 현대해상은 최 씨가 사이드 브레이크에 걸려 사고를 당했다면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보험사고에 해당하지만 자동차의 구조상 실제로 그런 사고가 발생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고 그런 주장을 믿기도 어렵다고 반박했다. 현대해상은 보험사고에 해당하는지를 따져보겠다며 최 씨 부부를 상대로 채무 부존재 확인 소송을 걸었고, 최 씨는 보험금을 지급하라며 맞소송(반소)으로 대응했다.

이 사건에서 담당 재판부인 광주고등법원 전주부(재판장 황병하 부장판사)는 현대해상이 최 씨에게 부상보험금과 후유장해보험금으로 1억 20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며 최 씨 측의 손을 들어줬다. 최 씨가 당한 사고는 자동차보험계약 약관상 '자기신체사고'에 해당하기 때문에 현대해상의 보상 책임이 인정된다고 밝혔다.1)

머리 부상을 입고 우반신 마비 등으로 100% 후유장해 진단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자동차를 하차하기에 부적당한 곳에 주차함으로써 하차를 하다가 차량 밖에 떨어져 다친 사고도 자동차의 운행으로 인한 사고로서 자동차를 그 용법에 따라 사용하다가 그 자동차로 인해 상해를 입은 경우에 해당한다」는 법리를 인용했다.

이어 「최 씨는 일시 정차한 후 시동과 전조등이 켜진 상태에서 하차하던 중 무언가에 걸려 균형을 잃고 차 옆 경사지인 빙판길에 미끄러져 넘어지는 바람에 사고를 당했다」며 「이는 결국 사고 당시 눈이 내린 상태에서 하차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곳임에도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하차하는 과정에서 차량과의 비정상적인 접촉으로 말미암아 몸의 균형을 잃고 넘어져 사고를 당한 것으로서, 자동차 주행의 직후 단계인 정차 상태에서 문을 열고 하차하며 자동차를 그 용법에 따라 사용하던 도중 그 자동차로 인해 상해를 입은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최 씨가 보조 제동 장치에 걸리지 않고 넘어진 것이라면 보험사고가 아니다'라는 현대해상의 주장에 대해서는 전제부터가 잘못된 것이라는 취지로 「최 씨의 사고가 보험사고인지 여부와 관련해 검토해야 할 핵심은 최 씨가 보조 제동 장치에 걸려 넘어졌는지 여부가 아니다」라고 판시하며, 「설사 최 씨가 사고를 당할 당시 그의 외투가 보조 제동 장치에 걸리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최 씨가 차량을 정차한 곳은 눈이 내린 경사지로서 빙판길이었고 그는 그런 사정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그곳에서 하차하던 중 차량과의 비정상적인 접촉으로 말미암아 몸의 균형을 잃고 눈길에 미끄러져 사고를 당했던 것으로 인정되는 이상, 최 씨가 당한 사고는 최 씨의 개인적인 사정이 아니라 자동차 자체 또는 주위의 외부 환경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서 보험사고에 해당한다」고 결론 내렸다. 

임용수 변호사의 케이스메모


현대해상이 1·2심 판결에 대해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자기신체사고에 관한 자동차보험계약에 있어서 보험사고나 운행으로 인한 보험사고의 성립, 하차 시 사고와 운행기인성 등에 관한 법리오해 혹은 판례 위반 등의 위법이 없다」는 이유로 현대해상의 상고를 기각했다.2)

 1  주위의 외부 환경 때문에 일어난 사고이더라도 자기신체사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사례가 있다. 대법원은 차량 운전자가 폭설에 조난 상태가 되자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구조자를 만나기 위해 차량을 벗어나 약 10시간 이상 주위를 헤매다가 추위에 체력이 저하돼 숨진 경우는 자동차 사고로 다치거나 죽은 것이 아니라고 봤다.3)


빙판길에 넘어져 부상을 입는 이런 유형의 사고와 관련해서는 보험금 청구권자인 피보험자 측이 급격하고도 우연한 외래의 사고로 인한 신체의 손상(상해) 내지 우발적인 외래의 사고(재해)가 실제로 발생했다는 사실뿐 아니라 「피보험자가 주장하는 사고」와 「보험급 지급 사유」간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주장·입증해야 한다. 

 2  하급심 판결 중에 피보험자가 빙판에 미끄러지는 재해로 '반달연골 이상, 불명외측반달연골 등'으로 수술을 받고 25일간 입원 치료를 받은 후 약관상 재해에 해당하므로 보험계약에 따른 재해수술보험금을 청구한 사건에서, 담당 재판부는 피보험자가 기존부터 퇴행성 관절염을 앓아오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사고 주장일 이전에 같은 수술 부위의 우슬연골 파열로 인해 수술을 받기도 한 점, 처음 보험금 청구 당시 질환에 따른 수술 급여금 등을 청구해 지급받기도 한 점 등을 종합해 빙판길에 미끄러지는 사고가 실제 발생했는지 또는 해당 사고가 약관상 재해에 해당하는지의 점을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피보험자 측의 보험금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선고했던 사례가 있다.

상해(또는 재해) 보험이 '외래성'을 보험사고의 요건으로 갖출 것을 요구하는 이유는 보험사고에서 '질병'을 제외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보험금 청구권자인 피보험자가 소송의 처음 단계인 소장 기재 내용에서부터 사고의 원인이 질병으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외래의 사고로 인한 것인지가 불분명하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면 피보험자 스스로 입증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되고 결국 패소에 이를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이런 결과를 피하기 위해서는 외래의 사고로 인한 상해 내지 재해 관련 보험금을 청구하는 피보험자 측은 소장에서 주장하는 사고의 원인이 외래의 사고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질병으로 인한 것인지를 명확하게 기재하고 소송 과정에서 이를 증명할 자료를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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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 등록일 : 2018년 12월 27일
  • 2차 수정일 : 2020년 9월 5일(재등록)
  • 최종 수정일 : 2024년 7월 15일

1) 광주고등법원(전주) 2008. 7. 18. 선고 2007나4306 (본소), 2007나4313 (반소) 판결.
2) 대법원 2009. 2. 26. 선고 2008다59834, 2008다59841 판결. 
3) 대법원 2012. 9. 27. 선고 2012다35736, 2012다35743 판결.
4) 1차 수정일 : 2019년 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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