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판결) 진료기록에 간경화증 질병코드 있어도 증거 부족하면 고지의무 위반 이유로 보험금 거절 못해


글 : 임용수 변호사


진료기록에 간경화증을 의미하는 질병코드(K74.1)가 기재돼 있더라도 피보험자가 고지의무의 대상이 되는 간경화증 진단확정이나 그에 따른 치료를 받았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면 고지의무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결이 나왔다. 

보험 가입 전에 간경화증으로 확정 진단을 받았다는 증거가 없다면 질병사망 특약상의 '고지의무 사항에 해당하는 질병으로 과거에 진단 또는 치료를 받은 경우'(면책사유)라 할 수 없으므로 보험사는 간경화의 직접 결과로써 사망한 피보험자의 유족에게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이다. 

김 모 씨는 지난 2015년 4월 한화손해보험과 보험계약을 체결했다. 이 보험계약에 부가된 질병사망 특약에는 "피보험자(배우자 이 모 씨)1)가 보험기간 중 진단 확정된 질병의 직접 결과로써 사망한 경우, 1억5000만 원을 사망보험금으로 보험수익자(김 씨)에게 지급한다"고 기재돼 있었다. 다만 "청약서상 '계약 전 알릴 의무'에 해당하는 질병으로 과거(청약서상 해당 질병의 고지대상 기간)에 진단 또는 치료를 받은 경우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면책 약관 조항을 두고 있었다.   

이로부터 2년 1개월 뒤 배우자 이 씨는 병원에서 간경화를 직접사인으로 사망했다. 김 씨는 앞선 보험계약에 따라 한화손해보험에 1억5000만 원의 사망보험금을 청구했다. 

하지만 한화손해보험은 "이 씨는 보험계약 체결일부터 5년 이내인 2011년 6월부터 간경변, 알코올성 간염 및 간경화증 등으로 입원 및 통원 치료를 받았음에도 보험 청약서에 첨부된 '계약 전 알릴의무 사항' 중 해당 항목의 '아니오'란에 표시함으로써 고지의무를 위반했고, 김 씨의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질병사망 특별약관에 따른 면책 통보를 했으므로 보험금을 지급할 책임을 면한다"며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이 씨는 2011년 6월부터 약 10일간 병원에서 '알코올성 간염'으로 입원 치료를 받았고, 이 씨에 대한 2012년 11월 말 병원 진료기록에는 K7412)이라는 질병코드가 기재돼 있었다. 

그런데 2015년 4월 보험 가입 과정에서 김 씨는 계약 전 알릴 의무 사항 중 '최근 5년 이내 의사로부터 진찰 또는 검사를 통해 입원, 수술, 계속해 7일 이상 치료, 계속해 30일 이상 투약과 같은 의료행위를 받은 사실이 있습니까?'라는 질문과 '최근 5년 이내에 10대 질병{암, 백혈병, 고혈압, 협심증, 심근경색, 심장판막증, 간경화증, 뇌졸중증(뇌출혈, 뇌경색), 당뇨병, 에이즈 및  HIV 보균}으로 의사로부터 진찰 또는 검사를 통해 질병확정진단, 치료, 입원, 수술, 투약과 같은 의료행위를 받은 사실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모두 '아니오'라고 답변했다.


김 씨는 한화손해보험의 주장과 보험금 청구 거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한화손해보험을 상대로 보험금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4단독 송인권 부장판사는 김 씨가 한화손해보험을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 소송에서 "한화손해보험은 김 씨에게 1억5000만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전부승소 취지로 판결했다.3)

송 부장판사는 「간경화증의 경우 질병확정진단, 치료 등의 의료행위를 한 경우에만 고지의무의 대상이 되는데, 이 씨를 진료한 병원의 2012년 11월 말 진료기록에 K741이라는 질병코드가 기재된 사실을 인정할 수는 있지만, 이런 사정만으로 이 씨가 당시 간경화증으로 질병확정진단이나 그에 따른 치료를 받았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밝혔다. 

이어 「오히려 2012년 11월 말 진료기록은 이 씨에 대한 혈액검사를 하기 전에 기재된 것이고 건강보험 요양급여 내역에 기재된 그날의 병명은 '달리 분류되지 않은 지방(변화성)간'인 사실을 엿볼 수 있다」며 「피보험자가 질병확정진단을 받은 사실이 없음에도 그 질병에 대한 고지의무가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사실상 이행이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어서 상법 제663조 등에 위배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임용수 변호사의 케이스메모


보험사들의 약관에는 보험사가 '제1회 보험료를 받은 때부터 보험금 지급 사유가 발생하지 않고 2년(진단계약의 경우 질병에 대해서는 1년)이 지났을 때', 그리고 '보험계약을 체결한 날부터 3년이 지났을 때'는 각각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보험계약을 해지할 수 없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번 사례의 경우 재판 과정에서 보험계약자인 김 씨가 2015년 4월 보험계약을 체결하고 제1회 보험료를 납입한 날부터 2년이 경과한 후인 2017년 5월 피보험자인 이 씨가 사망했고, 한화손해보험이 김 씨와 보험계약을 체결한 날부터 3년 이내에 김 씨의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해서 보험계약을 해지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따라서 한화손해보험은 약관 규정에 따라 김 씨의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는 보험계약을 해지할 수 없었다. 

이처럼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는 보험계약을 해지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된 한화손해보험은 순순히 보험금을 지급하는 방법을 선택하기보다는 질병사망 특약상의 면책사유에 관한 규정을 앞에 내세워 면책 통보를 하는 오기를 부린 것 같다.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한 계약 해지권의 제척기간(해지권 행사 기간)이 경과해서 해지를 할 수 없을 뿐, 보험계약자 김 씨의 고지의무 위반 사실은 있었기 때문에 한화손해보험의 그 같은 응소 행위가 윤리적으로 비난받을 일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충분한 증거 자료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법리적 검토 없이 무턱대고 소송을 진행해 고객의 돈(보험료)으로 비축된 보험사의 기금을 허투루 낭비했다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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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 등록일 : 2020년 9월 27일

1) 호칭의 편의상 피보험자에 대해 가명을 사용한다.
2)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상 K74.1은 간경화증을 의미한다.
3) 확정된 판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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