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판결) 피보험자인 동생의 서면 동의 없이 누나가 체결한 보험계약은 무효


글 : 임용수 변호사


누나가 남동생을 피보험자로 한 타인의 사망보험을 체결하면서 동생으로부터 서면 동의를 대행할 권한을 명시적으로 받지 않았다면 보험계약이 무효가 된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임용수 변호사(보험전문)가 판결 내용을 [단독] 소식으로 전하고 해설합니다.

전주지법 민사8단독 위수현 판사는 농협생명보험이 최 모 씨를 상대로 낸 채무 부존재 확인 청구 소송에서 "농협생명의 최 씨에 대한 보험금 지급 채무는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한다"며 원고승소 판결했다고 밝혔습니다.1)

▶ 남동생의 서명을 대신한 누나의 실수

 
최 씨는 2002년 9월 남동생을 피보험자로 하고 피보험자의 사망 시 수익자를 최 씨로 하는 농협생명의 한 보험 상품에 가입했습니다. 최 씨는 보험 가입 당시 남동생으로부터 서면 동의를 받지 않은 채 남동생을 대신해서 보험 청약서에 대리 서명을 했습니다.  

그렇게 농협생명의 생명보험에 가입해 약 10년을 유지해오던 중 지난 2012년 6월 말 남동생이 전주시 완산구에 있는 아파트 15층 창문에서 추락해 사망했습니다. 

최 씨는 농협생명에게 보험금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농협생명은 최 씨의 남동생이 자살했다는 이유로 책임준비금 787,393원만 지급하고 재해사망 보험금은 지급하지 않으면서 최 씨를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 서면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상법 규정에 위반하면 계약 무효


위 판사는 판결문에서 「타인의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보험계약에는 보험계약 체결 시에 그 타인의 서면에 의한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상법 규정은 강행 법규로서 이에 위반해 체결된 보험계약은 무효」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보험계약 체결 당시 최 씨가 보험 청약서에 동생 이름으로 대신 서명한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으므로, 이 보험계약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타인의 사망보험인데도 불구하고 타인의 동의가 없어 무효」라고 판시했습니다.

위 판사는 이어 「최 씨가 동생의 대리인으로서 보험계약서를 작성했다고 항변하지만, 누나가 동생에게 보험계약의 내용을 설명한 후 동생으로부터 명시적으로 권한을 수여받아 보험계약서에 동생의 서명을 대행했음을 인정할 만한 아무런 증거가 없으므로, 최 씨의 항변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임용수 변호사의 케이스메모


이 판결은 최 씨가 남동생을 피보험자로 한 생명보험을 체결한 뒤 약 10년이 지나서 남동생이 자신의 아파트 15층 창문에서 추락해 사망한 사건으로, 남동생이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에 해당하는지 여부와 재해사망 보험금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됐는지 여부도 쟁점이었지만, 동생의 서면동의 유무(보험계약의 유무효)에 관한 쟁점에 대해서만 판단한 판결입니다.

타인의 생명보험에서 피보험자의 동의가 있다고 하기 위해서는 그 동의가 명시적이고 명확한 것이어야 한다는 데는 이론이 거의 없습니다. 

이 판결은 보험계약자인 최 씨가 피보험자인 남동생에게 "보험계약의 내용을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전제로 삼고 있습니다. 

피보험자가 해당 보험계약의 내용에 대해서 설명을 듣지 않은 상태에서는 자신을 보험대상자로 하는 보험계약의 체결에 대해 이의가 없다는 취지의 의사표시(의사의 통지)를 하는 것을 뜻하는 '피보험자의 동의'가 실제로 이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보험계약의 내용에 대한 설명은 어떤 방식으로든 필요합니다. 

다만 반드시 보험계약자만 설명할 수 있다는 어떤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므로 피보험자가 보험계약자뿐 아니라 보험회사 등(보험회사의 임직원이나 보험설계사를 포함합니다)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계약 당사자 중 어느 한 쪽에 명시적으로 동의의 의사표시를 하면 된다고 봅니다. 


타인(피보험자)의 서면에 의한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상법 규정은 강행 법규이므로 그 타인의 동의가 없으면 보험계약은 무효입니다. 1996년 11월, 타인의 사망보험에서 피보험자의 서면 동의가 없다면 계약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언론은 보험금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강조해 보도했습니다. 

그 당시는 많은 아내들이 남편에게 사고가 발생했을 때 보험금을 받아 생계를 꾸릴 생각으로 남편의 서면 동의 없이 보험에 가입하는 사례가 지금보다 훨씬 많았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사장단 결의문이 상법상의 강행 법규에 위반하는 내용이므로, 보험사들로서는 피보험자의 자필 서명이 없음을 이유로 언제든지 보험금 지급을 거절할 수 있다는 데 있었습니다. 실제로 사장단 결의문이 광고까지 된 이후에도 보험사들은 틈틈이 피보험자의 자필 서명 미필을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고, 이런 경우 법원은 보험사들의 보험금 지급 거절이 신의칙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시했습니다. 

어쨌든 보험 가입자들로서는 보험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보험계약의 무효를 이유로 납입 보험료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고(다만 이때는 법원이 피보험자의 서면 동의가 없었다는 보험 가입자의 주장에 대해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도 있으므로 무조건 납입 보험료를 돌려 받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보험사고가 발생한 후라면 보험업법상의 요건을 충족해야 보험금 대신 보험금 상당의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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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 등록일 : 2018년 6월 14일
  • 1차 수정일 : 2020년 8월 23일(재등록)

1) 확정된 판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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