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 직업 변경 통지의무 위반했어도 약관 설명의무 위반 땐 보험금 감액 못 한다


글 : 임용수 변호사


보험 가입자가 직업 변경 사실을 보험사에 알리지 않았더라도 보험사는 보험금 전액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임용수 변호사(보험전문)가 알려 드리고 의견을 덧붙입니다.

계약 당시 직업을 직업 급수 1급의 컴퓨터프로그래머로 청약했으나 그 후 자동차 경정비원으로 직업이 변경됐고, 교통사고로 사망할 때는 직업 급수 2급의 농업에 종사하면서 화물 차량을 자가용으로 운전하고 있었던 경우라도, 보험사가 '직업 변경 시 계약후 알릴 의무'에 관한 약관 조항을 설명하지 않았다면 보험 가입자의 '직업 변경 시 계약후 알릴 의무' 위반이 있더라도 이를 이유로 보험금을 삭감할 수는 없다는 취지입니다. 

대전지법 민사13단독 방선옥 판사는 메리츠화재해상보험이 교통사고로 숨진 김 모 씨의 유족을 상대로 낸 보험금(보험금 지급 채무 부존재 확인) 소송에서 "메리츠화재의 보험금 지급 채무는 1억 원을 초과해서는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한다"며 원고패소 취지의 판결을 선고해 유족 측의 손을 들어줬습니다.1)
김 씨는 화물차를 운전해 전북 무주군 적상면 삼유로 중유마을에 있는 삼유리 전신주 앞 중앙선이 없는 노상에서 진행하던 중, 반대편에서 진행하는 버스의 앞부분을 김 씨 차량의 앞부분으로 충돌해 '심장 둔상으로 인한 심낭 압전, 심근경색, 양측 하지 및 좌측 골반 골절' 등의 상해를 입고 치료를 받다가 '패혈증에 의한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사망했습니다. 사고 당시 김 씨는 생전에 일반상해사망 1000만 원, 운전자교통상해사망 4000만 원, 운전자주말교통상해사망 5000만 원 등, 근무처를 컴퓨터프로그래머, 사망보험금 수익자를 법정상속인으로 하는 상해운전자보험에 가입한 상태였습니다. 

유족들은 사망보험금 1억 원의 지급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메리츠화재는 김 씨가 보험계약 당시에는 직업을 컴퓨터프로그래머로 알렸으나 교통사고 발생 당시에는 농업에 종사하면서 화물 차량을 운전하고 있었고, 컴퓨터프로그래머는 직업 급수 1급이지만 농업이나 화물 차량의 운전은 직업 급수 3급에 해당하는데 이처럼 직업 또는 직무가 변경됐다면 회사에게 이를 알릴 의무가 있음에도 알리지 않았으므로, 보험금을 약 4000만 원으로 감액해 지급하겠다며 유족들을 상대로 약 4000만 원을 초과하는 금액에 관한 채무 부존재 확인 청구 소송을 냈습니다. 

방 판사는 판결문에서 「김 씨는 컴퓨터프로그래머로 보험에 가입했고, 교통사고 발생 당시 농업에 종사하면서 화물 차량을 자가용으로 운전하고 있었던 사실, 컴퓨터프로그래머는 직업 급수 1급에 해당하고 농업은 직업 급수 2급에 해당하는 사실, 상해보험의 경우 직업 구분이 손해율 등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점을 감안해 직업의 위험도에 따라 직업 급수를 1급에서 3급으로 분류하고, 그 직업 급수에 따라 보험료율이 다르게 산정되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하지만 「직업 변경 시 계약후 알릴 의무에 관한 약관은 보험료율의 체계 및 보험청약서상 기재 사항의 변동 사항에 관한 것으로서 보험자가 명시·설명해야 하는 보험계약의 중요한 내용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이고, 상법 제653조가 규정한 '사고 발생의 위험이 현저하게 변경 또는 증가된' 경우에 해당하는 사유들을 개별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므로 상법 제652조 제1항이나 제653조의 규정을 단순히 되풀이하거나 부연한 정도의 조항이라고 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보험계약자이자 피보험자인 김 씨가 직업 변경 시 계약후 알릴 의무에 관한 약관의 내용을 충분히 잘 알고 있었다거나, 김 씨가 보험계약을 컴퓨터프로그래머임을 전제로 체결했기 때문에 그의 직업이 농업으로 변경된 경우 사고 발생의 위험이 현저하게 증가된 경우에 해당해 이를 메리츠화재에게 지체 없이 통지해야 한다는 점을 예상할 수 있었다고 볼 만한 자료를 찾을 수 없으므로, 결국 메리츠화재는 직업 변경 시 계약후 알릴 의무에 관한 약관 조항을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명시·설명할 의무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나아가 「김 씨가 컴퓨터프로그래머로 종사하다가 자동차 경정비원으로, 다시 농업으로 직업이 변경됐고, 화물 차량을 자가용으로 운전한다고 하더라도 교통사고 발생의 위험이 현저하게 변경 또는 증가됐다거나, 김 씨가 그런 사실을 알았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따라서 메리츠화재는 직업 변경 시 계약후 알릴 의무에 관한 약관의 내용을 보험계약의 내용으로 주장할 수 없으므로 김 씨가 직업 변경 사실을 통지하지 않았더라도 이를 이유로 보험금을 삭감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임용수 변호사의 케이스메모


손해보험사의 약관에 규정된 '상해보험 체결 후 알릴의무' 또는 상법 제652조 제1항의 '위험 증가에 따른 통지의무'가 인정되는 직업 또는 직무의 변경은, 보험계약 체결 당시 보험계약자가 변경된 직업 또는 직무에 종사하고 있었다면 보험사가 보험계약을 체결하지 않았거나 적어도 그 보험료는 보험을 인수하지 않았을 것으로 인정되는 정도의 것을 의미합니다.


예컨대 보험 청약서에 직업을 '영업관리 사무원'으로, 직무를 '영업관리'로 각각 기재(고지)했던 피보험자가 보험 가입 이후에 주기적·계속적으로 지게차 운전 업무를 수행하게 됐다면, 변경된 직업(사무원→지게차 운전원) 또는 직무(관리직→지게차 운전 업무)는 위험이 현저하게 증가된 경우이므로, 피보험자는 보험사에게 이를 통지할 의무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보험사의 언더라이팅(Underwriting, UW, 보험 인수 심사) 기준은 상해 위험 등급을 직무상 위험도를 기준으로 적용합니다. 대부분의 UW 기준에서 규정하는 '직무'는 매월 또는 매주간 피보험자가 정기적으로 종사하는 업무를 말하며, 위험이 다른 업무를 복합적·정기적으로 수행하는 사람은 그 중 가장 높은 직무 위험을 적용해서 상해 위험 등급을 적용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2)

​이런 직업 또는 직무의 변경에 관한 계약 후 알릴의무(통지의무)에 관한 약관 조항에 대해서, 어떤 하급심 판결은 거래상 일반적이고 공통된 것이어서 보험계약자가 이미 잘 알고 있는 내용이거나, 별도의 설명 없이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사항이거나, 이미 법령에 의해 정해진 것을 되풀이하거나 부연하는 정도에 불과한 사항에 해당해 보험사의 설명의무가 면제된다고 판시하는 경우가 있고 어떤 하급심 판결은 보험사의 설명의무 대상이 된다고 판시하는 경우가 있는 등 판시 내용이 일률적이지 않습니다. 

​현재까지는 상법의 규정으로부터 당연히 예상되는 내용이거나 상법 규정의 내용을 부연한 정도에 불과하다고 볼 수 없고, 오히려 상법이 정하는 통지의무의 내용을 확대해 규정한 것이라는 등의 이유로, 설명의무가 인정되는 조항이라고 판시하는 경우가 약간 더 많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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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 등록일 : 2018년 3월 31일
  • 최종 수정일 : 2020년 8월 2일(재등록)

1) 대전지방법원 2015. 10. 14. 선고 2014가단225172 판결.
2) 1차 수정일 : 2019년 2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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