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임용수 변호사
술을 지나치게 마신 뒤 냉기가 흐르는 거실 바닥에 그대로 엎드려 잠을 자다가 급성 주정중독으로 숨졌다면 보험사는 유족에게 재해사망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판결을 [단독] 소식으로 전하고 변호사 의견을 덧붙입니다.
조 씨는 친구와 함께 입간판 보수 작업을 마치고 소주 3병을 나눠 마신 후, 거실 난로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아 불을 쬐며 졸던 중 그대로 거실 바닥에 엎드려 잠을 자다 사망했습니다. 조 씨는 사망 전에 술을 자주 마셨지만, 술로 인한 질병 등으로 치료를 받은 적은 없었습니다.
조 씨의 사망 후 시체 부검 결과 경도의 심비대 소견을 보였고 심방 및 심실의 확장 등 확장성 심장 근육 병증을 시사하는 소견을 보였으나 조 씨의 사망 원인과 연관된 소견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혈중 알코올 농도가 치사 농도에 해당하는 0.51%로 조 씨의 사망 원인은 급성 주정 중독으로 판단된다는 소견 결과가 나왔습니다.
재판부는 「재해 사고의 요건 중 우발적인 사고란 사고가 피보험자가 예측할 수 없는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서, 고의에 의한 것이 아니고 예견치 않았는데 우연히 발생하고 통상적인 과정으로는 기대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인데, 조 씨가 친구와 소주 3병을 나눠 마시고 거실 바닥에 엎드려 잠을 자다가 사망한 사실은 있으나 조 씨가 사망의 결과를 예견하고도 계속해서 술을 마시다가 사망에 이르렀다고 볼 수는 없으므로, 우발적인 사고의 요건은 충족된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외래의 사고란 상해 또는 사망의 원인이 피보험자의 신체적 결함 즉 질병이나 체질적 요인 등에 기인한 것이 아닌 외부적 요인에 의해 초래된 모든 것을 의미하는데, 조 씨가 술을 과도하게 마신 탓으로 급성 주정 중독을 일으켜 사망했으므로 결국 조 씨의 과도한 음주라는 외부적 요인에 의해 신체 기능상의 장애를 입고 사망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어 사고의 외래성도 인정된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면서 「조 씨의 사망은 약관 재해분류표 항목의 '의도 미확인 사건' 중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 분류 항목 Y15의 '알코올에 의한 의도 미확인의 중독 및 노출' 항목에 해당하는 사고이고, 조 씨의 고의에 의한 사고가 아닌 이상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 분류 항목 분류번호 X65의 '알코올에 의한 자의의 중독 및 노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습니다.
임용수 변호사의 케이스메모
이번에 소개한 판결은 치사량에 달할 정도로 술을 과도하게 마시고 급성 주정 중독을 일으켜 사망한 경우에 과음을 외부적 요인으로 판단한 사례입니다. 이 사건처럼 시체 부검을 시행한 때는 대체로 부검 결과를 따릅니다. 따라서 과음을 한 후 사망했다고 해서 모두 일률적으로 외래의 사고 즉 재해로 판단하지는 않습니다.
이 사건과는 조금 다른 내용인데, 술을 과도하게 마신 사람이 구토를 하는 과정에서 폐로 들어간 토사물 등으로 폐렴이 발병함으로써 사망한 사안에서, 법원이 과음을 외부적 요인 내지 외부의 행위라고 판단해 보험사의 사망보험금 지급 의무가 인정된다고 판시한 판결도 있습니다.
반면에 어떤 사건에서는 과음 후 사망했더라도 사망 원인이 우발적인 음주인지 아니면 지속·반복적 음주인지 불분명하고, 사망 직전의 음주량, 음주 지속 시간, 혈중 알코올 농도 등의 객관적인 자료가 없다는 사실 등을 고려해 약관에서 정하고 있는 외래의 사고가 아니라고 판단한 경우가 있습니다.
▶피보험자가 택시 영업을 끝내고 귀가한 후 소주 3~4병을 마시고 잠을 자다 입술이 파랗게 질려 있는 상태로 사망한 채 발견된 사안에서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혈중 알코올 농도가 0.447%인 급성 알코올 중독 상태로서 치명적인 수치이기는 하지만 사망 원인을 급성 알코올 중독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통상인이라면 의심을 품지 않을 정도의 고도의 개연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또 피보험자와 같이 허혈성 심장 질환이 있는 사람이 음주 등에 의해 원래 가지고 있던 질병인 허혈성 심장 질환이 발생 또는 악화돼 사망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고 할 것이나 그런 경우에도 음주가 사망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알 수 없는 데다가 피보험자의 경우 심장에서 고도의 비후 소견을 보이고 관상동맥 3개 분지에서 다국소적인 고도의 경화 및 협착 소견이 있고 좌하행 관상동맥에서 최대 90% 정도의 협착 소견을 보이고 있던 점에 비춰, 음주는 허혈성 심장질환으로 인한 사망에 있어서 경미한 외부 요인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유족 측의 보험금 청구를 기각한 사례도 있습니다.
생명보험 재해특약에 가입한 피보험자가 급성 알코올 중독 그 자체만으로 인해 사망한 경우를 약관상의 재해로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 1 ] 음주는 술을 마시는 외부적 요인이고 피보험자가 음주로 인한 급성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한 이상 피보험자의 신체적 결함 즉 질병이나 체질적 요인 등의 내부적 요인에 기한 것이라고 볼 수 없고, 또한 약관 재해분류표에 의하더라도 알콜에 의한 불의의 중독(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 X45)에 따른 사고는 그 자체로 외래의 사고이므로 재해에 해당한다는 견해2)와 [ 2 ] 급성 알코올 중독은 한국인표준질병사인분류상의 F10.0(알콜 사용에 의한 급성 중독)에 해당할 뿐 약관에서 재해로 분류하는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상의 S00~Y84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으며, 또한 자의로 술을 마시고 급성 중독을 일으켜 사망한 경우를 '불의의' 중독(X45)이라고 보기도 어려우므로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견해3)가 대립되고 있습니다.4)◀
2) 서울고등법원 2009. 11. 12. 선고 2009나46127 판결.
3) 서울남부지방법원 2018. 1. 25. 선고 2016가단262073 판결.
4) 1차 수정일 : 2019년 2월 17일. 대법원 1998. 5. 8. 선고 98다3900 판결은 피보험자가 친목계 모임에 참석해 『자의로 술을 마시고 취한 경우』를 약관 재해분류표 항목에서 말하는 '기타의 고체 및 액체물질, 가스 및 증기에 의한 불의의 중독'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급성알코올중독이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상의 '알콜에 의한 불의의 중독(X45)'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판단한 사례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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