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 보험계약자 행세한 타인의 약관대출금 및 해지 환급금 수령, 보험사 면책 안된다


글 : 임용수 변호사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증과 공인인증서, 통장을 갖고 보험계약자 행세를 한 사람에게 보험계약 대출(약관대출)을 해주고 해지 환급금을 지급했더라도 보험사는 면책될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포천의 한 병원에서 근무하던 간호사 최 모 씨는 2010년 같은 병원에서 직장 동료로 친하게 지내던 간호조무사 이 모 씨에게 주민등록증과 공인인증서, 통장을 맡겼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돈을 모아 여행을 가기로 계획했는데 계획이 무산되자 최 씨가 돈을 정산해 달라며 이 씨에게 믿고 맡긴 것입니다. 하지만 이 씨는 딴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이 씨는 2013년 6월부터 9월까지 3차례에 걸쳐 최 씨가 가입한 삼성생명보험 콜센터에 전화를 걸고, 포천지점을 방문해 마치 자신이 최 씨인 척 행세하면서 최 씨가 가입한 보험계약을 담보로 1920만 원을 약관대출 받았습니다. 더 나아가 최 씨는 2013년 10월에는 최 씨가 가입한 보험 두 개를 해지하고 해지 환급금 870만 원을 받아가기도 했습니다.

뒤늦게 그런 사실을 알게 된 최 씨는 2014년 2월 "약관 대출과 해지는 무효"라며 삼성생명을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서울고법 민사4부(재판장 배기열 부장판사)는 최 씨가 삼성생명을 상대로 낸 보험계약 해지 무효 확인 등 청구 소송의 항소심에서 삼성생명의 항소와 부당 이득금 등 청구의 반소를 모두 기각하고 최 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1)

삼성생명은 "이 씨가 최 씨의 주민등록증과 은행 통장 등을 제시해 이 씨에게 약관대출 및 보험계약 해지를 할 권한이 있다고 믿을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며 "최 씨는 민법 제125조, 제126조에 따라 표현대리 책임을 진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민법 제125조는 '제3자에 대해 타인에게 대리권을 수여함을 표시한 자는 그 대리권의 범위 내에서 행한 그 타인과 제3자 간의 법률행위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 제126조는 '대리인이 그 권한 외의 법률행위를 한 경우에 제3자가 그 권한이 있다고 믿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는 때는 본인은 그 행위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최 씨가 이 씨에게 주민등록증, 공인인증서, 통장 등을 교부하고 통장 관리를 위임했다고 해도 약관대출 약정 체결 권한 및 보험계약 해지 권한을 수여했음을 표시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또 「콜센터 직원이 휴대폰 번호 확인 및 자녀 정보 확인만으로 본인 확인을 마쳤고, 최 씨의 주민등록증의 사진과 이 씨의 얼굴 모습은 육안으로 보기에도 상당한 차이가 있고 이 씨가 작성한 약관대출 계약자 확인서의 필체와 통장 서명란의 필체가 다른데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할 때 표현대리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설령 삼성생명의 주장을 이 씨가 약관대출을 신청하거나 보험계약 해지를 할 정당한 권한을 가진 것으로 믿을 만한 외관을 갖췄으므로 약관대출 및 보험계약 해지가 유효하다는 취지로 보더라도, 삼성생명이 스스로 설정한 내부 처리 절차인 콜센터 업무 지침에서 정한 본인 확인 절차를 제대로 준수하지 못했거나 이 씨가 보험계약을 체결한 본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을 가질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 확인 절차를 제대로 하지 못한 과실이 있는 점에 비춰 볼 때, 채권자의 준점유자에 대한 법리를 유추적용해 약관대출 및 보험계약 해지가 유효하다고 볼 수도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임용수 변호사의 케이스메모


민법 제125조의 표현대리에 해당해 본인에게 대리행위의 직접 효과가 귀속되기 위해서는 대리행위의 상대방이 대리인으로 행위한 사람에게 실제로는 대리권이 없다는 점에 대해 선의일 뿐만 아니라 무과실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법리는 민법 제126조 또는 제129조에서 정하는 표현대리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2011년도에 선고된 판결 중에 보험설계사가 보험계약자들인 척 행세를 하며 불법 약관대출을 받았던 사례가 있습니다. 보험설계사가 보험계약자들에게 '보험카드를 신청하면 그것으로 모든 보험 업무를 볼 수 있다'고 거짓말해 보험계약자들에게 보험카드를 신청하게 하고, 보험카드와 비밀번호를 무단으로 사용해 보험계약자들 명의로 약관대출금을 받았던 사건입니다. 법원은 "보험계약자들 명의의 약관대출이 전적으로 보험설계사의 절취 행위와 기망 행위에 기한 것임을 이유로 보험계약자들의 보험회사에 대한 약관대출금 채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시했습니다. 

2017년도에 선고된 판결 중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습니다. 보험설계사가 보험계약자의 배우자에게 '세금 혜택, 자금 대출 등을 위해 보험계약자를 직원으로 등록하자'고 제의한 다음 배우자로부터 전달받은 보험계약자의 주민등록증과 인감증명서, 주민등록등본 등을 이용해 보험계약자 행세를 하며 약관대출금을 받았던 사건입니다. 법원은 "보험회사가 보험계약자의 주민등록증 얼굴 사진 부분이 흐릿해 보험계약자의 얼굴을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했음에도 보험계약자의 신분증을 확인하는 기본적인 절차도 제대로 지키지 않았던 점, 보험회사는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갖춘 금융기관으로서 선의·무과실 판단에 있어 일반인보다 더욱 엄격한 기준이 적용돼야 하는 점 등을 종합해 보면, 보험회사가 믿은 것에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보험회사의 표현대리 주장을 일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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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 등록일 : 2018년 5월 13일
  • 1차 수정일 : 2020년 8월 17일(재등록)

1) 서울고등법원 2016. 6. 16. 선고 2016나4213, 2016나5810 판결. 이 판결은 삼성생명의 상고 포기로 그대로 확정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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