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임용수 변호사
자살 시도가 의심되는 상황이라도 유서나 명백한 주위 정황을 밝히지 못했다면, 보험사는 유족에게 사망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재판부는 「현대해상은 급격하고도 우연한 외래의 사고가 아니므로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주장하나, 요양원 건물 2층 베란다에서 추락한 사고는 급격하고도 우연한 외래의 사고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했습니다.
이어 「현대해상은 또 고의에 의한 사고이므로 약관상 면책사유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나, 보험 약관에서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를 보험금 면책사유로 규정하고 있지만, 이 경우 유서와 같은 객관적인 물증이 존재하거나 상식적으로 고의 사망이 아닐 가능성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이 들지 않을 만큼 명백한 주위 정황사실을 증명해야 한다」며 「황 씨가 고의로 요양원 2층에서 뛰어내릴 뚜렷한 동기를 찾을 수 없고, 다른 외부적 요인 등에 의해 사고가 발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므로 현대해상은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아울러 「현대해상은 정신질환을 원인으로 한 사고이므로 약관상 면책사유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나, 사고 원인이 뚜렷이 밝혀지지 않은 이상 단지 황 씨에게 치매 증세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는 황 씨의 사망이 치매 등 정신질환을 원인으로 발생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황 씨는 치매 증세로 요양원에 입소해 생활하던 중 요양원 건물 2층 베란다에서 지상 주차장으로 추락한 채 발견됐습니다. 황 씨는 곧 병원으로 이송돼 수술을 받고 입원치료를 받던 중 급성 심폐정지로 사망했습니다.
앞서 1심 법원도 황 씨의 사망이 고의에 의한 것이라거나 정신질환을 원인으로 발생한 것이라는 사실이 증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현대해상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임용수 변호사의 케이스메모
현대해상은 황 씨의 기왕증을 고려해 보험금을 감액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했지만, 재판부는 "황 씨에게 협심증, 급성심근경색으로 인한 뇌손상 등의 기왕증으로 상해가 중하게 됐다거나 사망에 이르렀다는 등 사고 및 사망에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현대해상은 황 씨의 사망이 급격하고도 우연한 외래의 사고가 아니므로 보험사고(상해로 인한 사망)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고, 서울고법 춘천재판부는 이런 현대해상의 주장에 대해 간단하게나마 판단을 해주고 있습니다.
사고의 급격성과 외래성의 경우 보험금 청구자(보험 가입자)가 입증해야 마땅하지만, 사고의 우연성까지 보험금 청구자가 입증해야 한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옳다고 인정할 수 없습니다. 우연성의 경우는 피보험자 등의 보호를 위해 보험회사에 의한 반증이 없는 한 그 존재를 추정함이 타당합니다. 왜냐하면 경제적 약자인 보험금 청구자에게 사고가 고의에 의하지 않은 것(우연성)이라는 소극적 사실에 대해서까지 입증하라고 할 경우, 고의에 의하지 않은 사고라는 소극적 사실의 입증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에 가깝고 입증 대상이 매우 포괄적이고 추상적이어서 보험금 청구자에게 지나치게 가혹하기 때문입니다.
보험금 청구자가 우연성도 증명해야 한다면, 피보험자의 고의를 면책사유로 규정해 그에 대한 입증책임을 보험회사에게 부담시킨 상법 규정(상법 제659조) 및 정신질환과 병렬적으로 피보험자의 고의를 면책사유로 기재한 약관 규정의 취지에도 불구하고, 면책사유가 없음(피보험자의 고의 부존재)에 대한 입증책임을 보험금 청구자에게 떠넘기는 것이 돼 상법 규정 및 약관의 취지를 무시해버리는 결과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 판결을 비롯해 많은 판례가 이런 점들을 의식해서인지 추락, 익사, 교통사고 등과 같은 유형의 사고에 대해서는 그 같은 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우연한 사고라고 보고 있습니다. 또 몇몇 이유를 더하는 판례도 일부 표현만 달리할 뿐 보험사의 고의 면책 주장을 배척하며 앞서 적시한 내용과 동일한 사유를 중복 설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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