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임용수 변호사
건물이 7~8개월 동안 공실 상태로 방치돼 있었는데도 이를 알리지 않고 화재보험에 가입했다면 화재가 발생해도 보험금을 받을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건물의 '공실 상태'는 보험계약의 체결 여부나 보험계약의 내용을 결정하기 위한 표준이 되는 사항으로서 상법 제651조의 '고지의무가 있는 중요한 사항'에 해당한다는 취지입니다. 임용수 변호사(보험전문변호사)와 함께 판결의 주요 내용을 알아봅니다.
대구지법 서부지원 민사16단독 이희승 판사는 김 모 씨가 메리츠화재해상보험을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습니다.1)
이 판사는 「건물이 공실 상태로 방치돼 있다면, 외부인이 침입하거나 혹은 건물 자체의 하자로 인해 화재 발생의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며 「이처럼 건물이 상당기간 동안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공실 상태'로 방치돼 있었다는 사실은 상법 제651조에 따라 보험사에 반드시 고지해야 하는 중요한 사항에 해당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공실 상태로 방치된 사실을 이유로 김 씨에게 계약을 해지한다는 의사를 통보했으므로 김 씨의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한 메리츠화재의 해지 의사표시에 따라 보험계약이 적법하게 해지됐다」고 판시했습니다.
김 씨는 2014년 2월 경북 칠곡군에 있는 4층 건물에 대해 메리츠화재와 재물보험을 체결했습니다. 그 후 20여일 뒤인 2014년 3월 건물 1층에서 돌연 화재가 발생해 건물 일부가 불에 타는 등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김 씨가 손해액을 산정해 메리츠화재에 보험금 지급을 청구했지만, 메리츠화재는 건물 전체가 적어도 7~8개월 간 공실 상태였음에도 김 씨가 이를 알리지 않고 계약을 체결해 고지의무를 위반했다며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습니다. 이에 김 씨는 2016년 1월 "화재로 인한 손해액 4300만 원을 지급해달라"며 소송을 냈습니다.
임용수 변호사의 케이스메모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가 보험계약 당시 보험사에게 고지할 의무가 있는 '중요한 사항'이란, 보험사가 보험사고의 발생과 그로 인한 책임 부담의 개연율을 측정해 보험계약의 체결 여부 또는 보험료나 특별한 면책조항의 부가와 같은 보험계약의 내용을 결정하기 위한 표준이 되는 사항으로서, 객관적으로 보험사가 그 사실을 안다면 계약을 체결하지 않든가 적어도 동일한 조건으로는 계약을 체결하지 않으리라고 생각되는 사항을 말하고, 어떠한 사실이 이에 해당하는가는 보험의 종류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사실 인정의 문제로서 보험의 기술에 비춰 객관적으로 관찰해서 판단돼야 합니다.2)
손보사 약관에는 보험의 목적 또는 보험의 목적이 들어있는 건물을 계속해서 30일 이상 공실 상태로 두거나 휴업하는 경우를 '사고 발생의 위험이 현저히 증가한 경우'로 평가해서 계약 후 알릴 의무(통지의무)가 있는 사항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건물이 1개월 이상 관리되고 있지 않은 공실 상태에 있다면 보험사고 발생의 위험이 증가하리라는 점은 충분히 예측 가능하기 때문에 보험사가 보험계약의 체결 여부나 보험계약의 내용을 결정하기 위한 표준이 되는 사항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일 보험사가 그 사실을 알았다면 보험계약을 체결하지 않든가 적어도 동일한 조건으로는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판단되므로 보험계약 당시 고지의무의 대상이 되는 중요한 사항에 해당합니다. 또한 건물이 공실 상태로 7~8개월간 방치된 점, 보험계약의 체결 시점과 체결 경위, 보험계약의 취지, 고지 대상 사실의 중요도 등 제반 사정에 비춰 보면 김 씨가 메리츠화재에게 고지하지 않은 데에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있었다고 봐야 합니다. 판단에 수긍이 갑니다.
이 판결에 대해 김 씨가 항소를 했으나 대구지법 민사4부로부터 항소기각 판결을 받았고,3) 상고를 했지만 심리불속행기각으로 종결됐습니다.4)
2) 대법원 1997. 9. 5. 선고 95다25268 판결 등 참조.
3) 대구지방법원 2017. 9. 13. 선고 2017나307014 판결.
4) 대법원 2017. 12. 27. 선고 2017다267699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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