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 보험설계사 잘못으로 보험금 수익자 잘못 지정했어도 보험계약은 표시대로 성립


글 : 임용수 변호사


보험계약 당시 수익자를 사실혼 배우자로 지정하려고 했는데 보험설계사의 업무 미숙으로 상속인(유족)이 수익자로 지정됐더라도 보험계약은 계약 당사자가 표시한 의사대로 유효하게 성립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습니다. 임용수 변호사(보험전문)가 판결의 주요 내용을 알려 드리고, 변호사의 의견을 담은 해설과 법률 조언을 덧붙입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5단독 강성수 판사는 건축물 폐기물 처리장에서 벌목 작업 중 숨진 강 모 씨의 유족들이 흥국화재를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 소송에서 "흥국화재는 1억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승소 판결했습니다.1)
 
강 씨와 사실혼 관계에 있던 박 모 씨는 2015년 4월 흥국화재의 보험설계사를 통해 '강 씨가 상해로 사망하면 보험금 1억 원을 지급받기로 한다'는 내용의 보험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때 박 씨는 피보험자가 사망할 경우 박 씨 자신을 보험수익자로 지정하려고 했지만, 보험설계사로부터 '사실혼 배우자는 보험수익자로 바로 지정될 수 없으니 추후에 변경해 주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특별히 보험수익자를 지정하지 않은 채 보험계약을 체결하며 보험설계사에게 수익자 변경 용도로 인감증명서를 교부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보험계약 당시 박 씨가 보험수익자로 지정될 수 있었고, 수익자를 변경해주겠다고 약속했던 흥국화재의 보험설계사는 강 씨의 인감증명서를 분실한 다음 박 씨를 수익자로 변경하는 절차를 밟지 않았습니다.

그 후 1년이 지난 2016년 5월 피보험자 강 씨가 포천시에 있는 건축 폐기물 처리장에서 벌목 작업을 하던 중 포클레인에서 떨어진 H빔에 등을 맞아 숨졌습니다. 

​강 씨의 유족들이 흥국화재에게 보험금을 청구했지만, 흥국화재는 '보험계약이 당사자의 의사에 따르지 않은 것이므로 불성립됐고, 보험수익자를 박 씨로 변경하는 정지조건이 성취되지 않아 계약의 효력이 발생할 수 없으며, 계약 당사자들이 보험수익자를 유족들로 하려는 의사가 없었으므로 보험계약은 진의 아닌 의사표시로 무효'라며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습니다. 


강 판사는 판결문에서 「보험계약 당사자가 박 씨를 보험수익자로 지정하려는 내심의 의사가 있었더라도 보험설계사의 업무 미숙으로 그렇게 하지 못하고 보험수익자를 상속인으로 정해 계약이 체결된 이상 그 보험계약은 당사자가 표시한 의사대로 유효하게 성립됐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다만 보험계약 후 보험수익자를 박 씨로 변경하려는 당사자의 의사가 실현되지 못했을 뿐이고 이는 보험계약의 성립 여부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또한 「계약 당사자가 박 씨로의 보험수익자 변경을 보험계약의 정지조건으로 삼았다고 인정할 수 없고, 이 보험계약은 당사자가 표시한 의사에 따른 것으로 진의 아닌 의사표시라고 할 수도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판결에 앞서 박 씨는 흥국화재를 상대로 주위적으로 자신이 보험수익자라는 이유로 보험금의 지급을 청구하고 예비적으로 보험설계사의 잘못으로 손해를 입었다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습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은 박 씨가 아니라 강 씨의 법정 상속인이 보험수익자라고 판단해 박 씨의 주위적 청구를 기각했고 흥국화재에게 손해배상책임을 묻는 예비적 청구만을 일부 받아들여 흥국화재에게 4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2)

임용수 변호사의 케이스메모


법률행위는 계약 당사자의 내심의 의사가 어떠한지에 관계 없이 당사자가 표시한 문언에 의해 그 표시 행위에 부여된 객관적 의미를 합리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다만 당사자가 표시한 문언에 의해 객관적인 의미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면 그 문언의 내용과 법률행위가 이뤄진 동기 및 경위, 당사자가 법률행위에 의해 달성하려고 하는 목적과 진정한 의사, 거래의 관행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해 사회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맞도록 논리와 경험의 법칙, 그리고 사회일반의 상식과 거래의 통념에 따라 합리적으로 해석해야 합니다.3)

​피보험자가 사망할 경우 보험금을 받을 사망 수익자를 '사실혼 배우자'로 지정하는 것이 가능하고 그런 지정행위도 유효합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처럼 보험계약 당시 사실혼 관계의 배우자를 사망 당시의 수익자로 하려고 했으나 보험설계사의 업무 미숙으로 보험계약자가 그 수익자를 상속인으로 지정했다면, 보험계약자의 내심의 의사가 어떠한지에 관계 없이 그 표시된 문언에 의해 명확하게 드러나는 객관적 의미대로 불특정인인 '상속인'을 사망 수익자라고 보는 것이 타당한 해석입니다. 


이때 민법 제1003조에서 상속인으로 정하고 있는 배우자는 혼인신고를 마친 법률상 배우자를 말하고 사실혼 배우자는 이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한편 사실혼 배우자가 피보험자의 재산 형성에 일부 기여한 사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망 수익자로 지정된 상속인이 수령했거나 수령하게 될 사망보험금은 상속인의 고유재산이므로 사실혼 배우자에 대한 관계에서 부당이득 반환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사실혼 배우자와 관련해서는 이번 사건과는 다른 쟁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부부계약형이나 가족계약형의 보험계약에서는 약관상 '주피보험자와 호적상 또는 주민등록상 배우자 관계에 있는 자 등'을 종피보험자로 하고 있으며, 종피보험자가 보험계약 체결 이후에 제적되면 그 날부터 종피보험자의 자격을 상실하도록 규정돼 있습니다. 이처럼 종피보험자의 요건으로 '호적상 또는 주민등록상'의 관계를 요구하고 있는 만큼 사실혼 관계에 있는 배우자는 종피보험자 자격이 없습니다. 따라서 법률상 배우자였던 사람이 이혼으로 인해 법률상 배우자의 지위를 상실하게 되면 종피보험자 자격도 상실하게 됩니다. ​이 경우 '배우자'의 개념이 불명확하다고 볼 수 없으며, '주피보험자의 호적상 또는 주민등록상의 배우자'를 법률상 배우자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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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 등록일 : 2018년 3월 5일
  • 1차 수정일 : 2020년 7월 23일(재등록)

1) 서울중앙지방법원 2018. 1. 16. 선고 2016가단5310476 판결.
2) 이 판결에 대해 흥국화재가 항소했으나, 항소가 기각돼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습니다.
3) 대법원 2001. 1. 19. 선고 2000다33607 판결, 대법원 2007. 4. 13. 선고 2005다68950 판결 등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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