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임용수 변호사
보험 가입자가 진단받은 저등급의 방광 종양이 제자리암이 아니라 방광암이므로, 보험사는 방광암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는 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임용수 변호사(보험전문)가 판결 소식을 전해 드리고 간단한 해설과 법률 조언을 덧붙인다.
의정부시에 거주하는 신 모 씨는 지난 2013년 말 신한생명의 한 암보험 상품에 가입했다. 중년에 접어들면서 평소 암보험의 필요성을 느꼈던 신 씨는 월 2만 7400원의 비교적 저렴한 보험료만 납부하면 됐기 때문에 보장 내용에 암 진단비 1000만 원이 포함되는 암보험에 가입해뒀다. 신 씨가 이른바 '유사암'으로 분류되는 기타 피부암, 갑상선암, 제자리암, 경계성종양, 대장점막내암으로 진단이 확정되면, 가입 후 1년 이상이 지난 때는 200만 원을 지급 받고, 가입 후 90일 이상 1년 미만인 때는 100만 원을 지급 받게 돼 있었다.
유사암 중 '제자리암'은 암(종)세포가 신체 안팎의 표면을 덮고 있는 조직인 상피(上皮, epithelium)와 기저막 사이를 벗어나지 못하고 상피 내부, 즉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종양을 뜻한다. 따라서 제자리암을 상피내암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 제자리암은 통계청이 고시·시행하는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에 있어서 제자리의 신생물로 분류되는 질병(질병코드 D00부터 D09까지)에 해당한다.
신 씨는 신한생명의 암 보험에 가입해 약 10개월 동안 유지해오던 중 2014년 8월 한 대학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다. 방광경 검사 결과 방광 우측 측벽에서 종양이 발견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신 씨는 종양 발견 하루 뒤 경요도 방광 종양 절제술을 받았다. 신 씨의 수술을 담당했던 대학병원 의사는 한 달 뒤에 신 씨의 최종 병명을 '방광암(C67.9)'으로 기재한 진단서를 발행했다.
방광암 단계 |
이에 신 씨는 신한생명 측에 자신이 가입한 암 보험 상품의 특약에 따른 암 진단비 1000만 원을 요구했다. 하지만 신한생명은 신 씨의 질병이 '제자리암'이라는 이유로 청구 금액의 10%인 100만 원의 보험금만을 지급했다.
대학병원 주치의로부터 질병코드 C67.9인 방광암 진단을 받았던 신 씨로서는 방광암이 제자리암에 해당된다는 신한생명의 주장을 납득할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신 씨는 신한생명을 상대로 암 진단비 1000만 원 중 100만 원만 지급했으므로, 나머지 900만 원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먼저 신 씨에 대해 방광 종양 절제술을 시행한 대학병원 등으로부터 받은 사실조회결과에 따라 주치의가 신 씨에 대해 치료했던 내용과 조직검사 결과 등을 토대로 최종 병명을 방광암으로 진단하면서 진단서의 국제질병분류번호란에 C67.9를 기재한 점을 명확히 확인했다.
또 신 씨가 받은 경요도적 내시경 방광 종양 절제술이 방광에 종양이 있을 때 그 종양의 절제 및 병리적 확인을 위해 시행하는 것으로 방광암이 의심되는 모든 종양에 대해 1차적으로 시행하는 수술이라는 것도 분명히 했다.
이어 「신 씨에 대한 치료 내용을 토대로 할 때, 신 씨의 방광 종양은 저병기(low grade)의 악성 방광 종양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고, 방광의 제자리암종(D090)으로는 볼 수 없다」는 내용의 진료기록 감정촉탁에 대한 회신 결과를 반영해 간단한 결론을 도출했다. 즉 재판부는 「감정촉탁 결과에 합리성이 결여돼 있다거나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를 잘못 적용했다고 볼 만한 사정도 없으므로, 신 씨의 질병은 신한생명과의 보험계약 약관상 '암'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제자리암' 진단이 아니라 '암' 진단을 적용할 것」이라고 판시했다. 이 판결은 확정됐고, 결국 신한생명은 신 씨에게 미지급 보험금 900만 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게 됐다.
임용수 변호사의 케이스메모
비침범성 방광 종양의 경우, 암 즉 악성신생물(C67)로 진단을 하는 경우가 있고 제자리암(D09) 혹은 상피내암으로 진단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결과는 의사들의 전문적 지식과 경험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주로 다툼의 대상이 되는 것은 저등급(low grade)의 비침범성(비침윤성) 방광 종양이고, 암 진단확정을 부정하는 사례가 전체 사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임상의사가 병리과 전문의의 조직병리검사 결과 보고서를 확인하고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에 따른 병명과 분류번호로 변환하는 코딩(coding) 작업이 필요한데, 코딩을 하면서 조직병리검사 결과에 적합하게 매치(matching)시키는 진단서를 작성했다면 그 진단서상의 병명과 분류번호로 질병의 진단확정이 이뤄졌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병리과 전문의의 조직병리검사 결과(보고서) 즉 병리학적 진단이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병리학적 진단에 부합하지 않는 임상의사의 진단이 있었던 경우에는 암의 진단확정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반면 임상의사가 병리과 전문의의 조직병리검사 결과 보고서를 바탕으로 암(악성 신생물)으로 진단을 했다면 암의 진단확정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 2020년 7월 선고된 하급심 판결 중에는 임상의사가 병리과 전문의 조직병리검사 결과를 기초로 방광암(C67.9) 진단서를 발급했던 사안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1심을 취소하고 피보험자 측의 손을 들어준 사례가 있다.2) 피보험자 박 모 씨에 대한 치료 병원의 병리전문의 등의 조직검사 결과 '방광, 방광의 혹(mass)(A): 방광요로상피암, 고도(papillary urothelial carcinoma, high grade), 방광, 심부(deep)(B): 종양의 침윤이 없는 적절한 근육의 존재(presence of proper muscle without tomor invasion)'으로 진단됐고, 이에 따라 박 씨의 주치의인 같은 병원 소속의 비뇨의학과 임상의사가 '병명 (주)방광암, 질병분류번호 C67.9'의 소견을 밝힌 진단서를 발급했던 경우인데, 법원은 『병리과 전문의가 종양에 대한 조직병리진단 결과, 박 씨의 종양에 관해 '방광 심부에 종양의 침윤이 없는 적절한 근육이 존재한다'고 확인했을 뿐, 침윤 여부에 관해 명시적인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즉 병리과 전문의의 진단은 수술 부위의 근육에 침윤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만을 확인했을 뿐, 점막 고유층이나 점막 하층 등에 침윤이 발견되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내용은 아니다]』며 『따라서 약관해석의 원칙에 비춰 보면, 병리과 전문의의 진단 결과만으로 박 씨의 종양이 제6차 개정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 기준으로 침윤이 발생하지 않은 경우로서 상피내암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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