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임용수 변호사
보험 가입자가 보험계약 체결 당시에 위험하지 않은 업무를 한다고 진술했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하는 업무를 구체적으로 밝힌 이상 고지의무 위반이 인정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임용수 변호사(보험전문)가 판결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고 해설과 법률 조언을 덧붙입니다.
김 모 씨는 동부화재와 사이에 보험기간을 2012년 4월부터 2056년 4월까지, 피보험자를 김 씨, 사망보험금 수익자를 법정상속인, 보험가입금액을 상해사망(100세) 3천만 원, 상해사망(80세) 7천만 원으로 하는 보험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김 씨는 2013년 3월 양주시의 한 석산에 설치되어 있는 3m 높이의 크랴샤(컨베이어벨트)를 해체하던 중 철제 롤러와 함께 추락하면서 경동맥이 절단돼 과다 출혈로 사망했습니다.
김 씨가 가입한 보험 약관에는 '보험계약자, 피보험자는 청약 시 청약서에서 질문한 사항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을 반드시 사실대로 알려야 하고,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계약전 알릴 의무를 위반하고 그 의무가 중요한 사항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동부화재는 손해의 발생 여부와 관계 없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김 씨는 1993년 굴삭기, 지게차, 쇄석기 조종면허를 취득한 후 중기 조종사로 근무해 왔고, 사망 당시에도 쇄석장 내의 장비인 크라샤를 해체하는 작업을 했으며, 2012년 1월부터 2012년 5월까지는 모 회사에서 크라샤 기사로 근무해 왔습니다.
김 씨는 보험 청약서를 작성하며 '계약전 알릴 의무사항' 질문 중 피보험자의 직업을 묻는 '근무처(회사명)'란에 '인테리어'라고 기재했고, 동부화재는 김 씨의 직업을 '인테리어'로 분류해 상해급수 2급의 보험료를 산정했습니다.
김 씨의 유족이 사망보험금을 청구하자, 동부화재는 보험계약자인 김 씨가 보험 가입 당시 자신의 직업을 '인테리어'라고 기재함으로써 직업에 관한 허위·부실의 고지를 했다는 이유로 김 씨의 사망 후인 2013년 6월 유족에게 보험계약을 해지한다는 의사표시를 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동부화재는 김 씨의 직업에 관한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보험계약을 해지했으므로 보험금 지급 의무가 없다면서 김 씨의 유족을 상대로 채무 부존재 확인 청구 소송을 냈습니다.
이에 대해 김 씨의 유족은 김 씨가 고지의무를 위반했다고 하더라도 김 씨의 고지의무 위반에 대한 고의·중과실이 없으며, 오히려 동부화재는 보험계약 체결 당시 김 씨가 건설 현장일에 종사하고 있고, 그 직업 기재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에 관해 알았거나 알지 못했다 하더라도 이에 대한 중대한 과실이 있으므로, 김 씨의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보험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다퉜습니다.
서울서부지법 민사5단독 이관형 판사는 동부화재가 김 씨의 유족을 상대로 낸 채무 부존재 확인 청구 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하고 유족의 반소를 받아들여 "동부화재는 김 씨의 유족에게 7000만 원을 지급하라"며 유족 측의 손을 들어줬습니다.1)
김 판사는 「상법 제651조의2에 의하면 보험회사가 서면으로 질문한 사항은 보험계약에 있어서 중요한 사항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이때의 서면에는 보험청약서도 포함될 수 있으므로, 보험청약서에 일정한 사항에 관해 답변을 구하는 취지가 포함돼 있다면 그 사항은 상법 제651조에 말하는 '중요한 사항'으로 추정된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그러나 보험회사가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보험계약을 해지하려면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그것이 고지를 요하는 중요한 사항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또는 중대한 과실로 알지 못해 고지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실을 입증해야 할 뿐만 아니라,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계약전 알릴 의무를 위반하고, 그 의무가 중요한 사항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보험회사는 손해의 발생 여부와 관계 없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지만, 보험회사가 계약 당시에 그 사실을 알았거나 '과실'로 인해 알지 못했을 때 및 보험설계사 등이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에게 고지할 기회를 부여하지 않았거나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사실대로 고지하는 것을 방해한 경우,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에 대해 사실대로 고지하지 않게 했거나 부실한 고지를 권유했을 때는 해지하지 못한다고 규정해 상법 제651조 단서보다 보험자의 해지권을 제한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김 판사는 또한 「보험설계사가 보험계약의 체결에만 급급했을 뿐 김 씨가 구체적으로 하는 업무에 무관심한 태도를 보여 김 씨에게 구체적으로 하는 업무가 고지의무의 대상이 되는 '중요한 사항'에 해당하고, 고지의무를 위반할 경우 보험계약이 해지될 수 있음을 제대로 설명했다고 보기 어렵고, 또한 상해 위험의 등급은 피보험자가 구체적으로 하는 업무의 위험성을 보험회사가 평가하는 것이지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의 평가에 의존할 것이 아니므로, 보험계약자가 '위험하지 않은 업무를 한다'고 진술했다고 하더라도 피보험자가 자신이 하는 업무를 구체적으로 밝힌 이상 자신의 직업에 대한 평가 부분만을 따로 떼어 내어 이를 허위 또는 부실의 고지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김 씨가 보험계약 체결 당시 '중대한 과실'로 인해 '중요한 사항'을 고지하지 않은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고,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동부화재가 보험계약 체결 당시 과실로 그 사실을 알지 못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그러면서 「김 씨가 보험계약 체결 당시 '중대한 과실'로 인해 '중요한 사항'을 고지하지 않은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고,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동부화재가 보험계약 체결 당시 과실로 그 사실을 알지 못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임용수 변호사의 케이스메모
유사한 사례 중에는 보험 가입자가 보험사 측에 의해 제시된 질문표(계약 전 알릴 의무 사항)에 기재한 직무가 평소 자주 수행하는 업무 내용과 다를지라도, 회사 업무 분장상 명확한 직무가 정해져 있다면 고지의무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결이 있습니다. 소규모 업장에서 다른 업무에 투입됐더라도 업무 분장대로 직무를 고지했다면 고지의무 위반이 아니라는 취지입니다. 보험가입자가 보험계약 당시 작성한 계약 전 알릴 의무 사항상 그의 직무를 묻는 질문에 (공업용 제품 생산 공장의) '경영지원 사무직'이라고 답변했지만 소규모 업체라서 사무직 업무 담당이라고 할지라도 평소 생산직 일손이 부족할 때 이를 돕는 경우가 많았는데, 어느 날 점심식사를 마치고 근무지로 복귀한 뒤 생산직 업무를 돕다 작업기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로 인해 머리를 심하게 다쳤던 사건에서입니다. 그 사건에서 법원은 소규모 업체에서는 직원들이 정해진 업무 분장대로만 일하지 않고 유동적으로 상시 업무를 돕기도 하는 특성상, 사고 당시 보험 가입자의 주요 업무가 생산직 업무였거나 경영지원 사무직이 아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단순히 생산직 업무를 자주 도왔고 그가 생산직 업무와 관련해 경험이 많고 능숙하다고 해서 그의 본래 직무마저 생산직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습니다.
반면 사망보험을 들면서 냉난방장치(에어컨) 설치 및 정비기사였던 피보험자가 자신의 직업을 사무직으로 고지한 경우는 고지의무 위반에 해당하므로 보험사는 에어컨 설치 작업 중 사다리에서 떨어져 숨진 피보험자 측에게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판시한 대법원 판결이 있습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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