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 고지의무 위반이 착오 유발한 경우 착오를 이유로 보험계약 취소 안돼


글 : 임용수 변호사


고지의무에 위반한 사실이 착오를 유발했다는 사정만으로는 보험사는 민법상 착오를 이유로 보험계약을 취소할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임용수 변호사(보험전문)가 판결 내용을 알려 드리고, 보험전문 변호사의 의견을 담은 해설과 법률 조언을 덧붙입니다.

김 모 씨는 2008년 2월 엠지손해보험과 사이에 피보험자를 김 씨로, 보험수익자를 법정상속인으로 각각 정하고, 보험기간을 2008년 2월부터 2023년 2월까지로 하며, 뇌졸중 진단비(최초 1회) 5백만 원을 담보로 하는 내용의 질병보험에 가입했습니다. 

김 씨는 보험계약 체결 전인 2007년 1월경부터 지속적으로 고혈압 치료 약물을 복용해 왔는데, 보험계약을 체결하면서 최근 5년 이내에 고혈압으로 의사로부터 진찰 또는 검사를 통해 진단을 받았거나 치료, 투약 등을 받은 적이 있는지를 묻는 보험사의 질문 사항에 대해 모두 '없다'라고 표시했습니다.

​김 씨는 보험료를 납입해 오던 중 2014년 7월 동국대학교일산병원에서 혈관성 치매, 뇌전동맥의 혈전증에 의한 뇌경색증 등 진단을 받았습니다. ​김 씨는 엠지손해보험에 약관에 따른 진단비 보험금을 청구했지만, 엠지손해보험은 보험금 지급 의무가 없다며 김 씨를 상대로 법원에 채무부존재확인 청구소송을 냈습니다.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민사2단독 류경은 판사는 김 씨가 엠지손해보험을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 소송에서 "엠지손해보험은 김 씨에게 500만 원을 지급하라"며 김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1)

류 판사는 ⸢엠지손해보험이 김 씨가 진료 받은 동국대학교일산병원의 2012년 4월 30일자 진료기록지에 "2005년경 걸을 때 festination(과속보행) 생기면서 앞으로 넘어지는 event 발생, 동국대 병원 내원해 치매라고 진단 받고 약 복용 시작"이라는 문구가 기재된 것을 이유로 보험금의 지급을 거절했는데, 이는 김 씨가 당시 담당의사의 진료를 받으면서 불확실한 기억에 의존해 단순히 "2005년경"이라고 답변한 것을 담당의사가 그대로 기재한 것으로, 실제로 김 씨는 "2008. 10. 21." 두통 및 어지럼증으로 동국대학교일산병원을 처음 방문했고, 당시 인지기능 개선제 처방을 원해 한 차례 약물을 처방했다가 이후 뇌경색 예방 및 두통 예방약만 처방받아 복용했다⸥고 인정했습니다. 


​이어 ⸢엠지손해보험이 보험사고와 관련해, 보험계약에 기한 보험금 지급 채무의 부존재 확인을 구하는 소송의 적법 여부에 관해, 김 씨가 이 법원에 다른 사건번호로 엠지손해보험을 상대로 해 동일한 보험사고로 인한 보험금의 지급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해 그 소송이 현재 계속 중이고, 그 소송의 판단에는 보험금 지급 채무의 존부에 관해 기판력이 생기므로 동일한 보험금 지급 채무의 존부 확인을 별개의 소송으로 청구할 법률상 이익이 없다⸥며 엠지손해보험의 보험금 지급 채무의 부존재 확인을 구하는 소는 부적법하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류 판사는 2005년 김 씨의 치매 진단 사실을 이유로 "보험계약 당시 보험사고가 이미 발생해 상법 제644조에 따라 보험계약은 무효이고, 보험계약 체결 전의 고혈압 약 장기 복용을 알리지 않아 민법상의 사기 또는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사유에도 해당하므로 김 씨는 이미 지급받은 보험금을 부당이득으로 반환할 의무가 있다"는 취지의 엠지손해보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류 판사는 먼저 보험계약 체결 이전에 보험사고가 이미 발생했는지 여부에 관해서는, ⸢김 씨가 두통 및 어지럼증으로 동국대학교일산병원을 처음 방문한 것은 2005년이 아니라 보험계약 체결 이후인 "2008년 10월 21일"이고, 당시에는 인지기능 개선제 처방을 원해 한 차례 약물을 처방받았던 것에 불과하고, 보험계약 체결 이전에 김 씨가 치매 또는 뇌졸중 진단을 받은 사실을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으므로, 이를 전제로 한 엠지손해보험의 계약 무효 주장은 이유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민법은 '사기나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는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보험사기에 관해 규정된 이건 약관 내용 등에 비춰 볼 때, 엠지손해보험은 이건 약관 규정의 요건을 충족시켜야 비로소 보험계약을 취소할 수 있으므로 이건 약관 조항에 의해 민법 제110조는 그 적용이 배척된다⸥고 판시했습니다. 즉 민법 제110조는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관계없는 규정으로서 민법 제105조에서 정한 임의규정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므로, 보험계약 당사자 사이에 이와 다른 의사로서 표시된 보험약관 조항에서 정한 규정이 없는 경우에 비로소 적용되는 보충 규정이라고 봤습니다.

결과적으로 김 씨의 진단일은 2014년 7월 7일경이고, 이는 '보장개시일부터 2년간 보험금 지급 사유가 발생하지 않은 때'에 해당하므로, 엠지손해보험으로서는 김 씨에게 사기에 의한 계약 취소권을 행사할 수 없고, 또 엠지손해보험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보험계약이 김 씨의 뚜렷한 사기의사에 의해 체결됐다는 점을 인정할 수도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류 판사는 보험계약을 체결함에 있어 중요한 사항에 관한 보험계약자의 고지의무 위반으로 인해 보험사가 착오를 일으킨 경우이므로 착오를 이유로 보험계약을 취소한다는 엠지손해보험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고지의무 위반에는 항시 보험사 측이 착오가 수반되는 것인데, 보험계약자 등이 고지의무를 위반해 보험계약이 해지된 경우에도 고지의무에 위반한 사실이 보험사고의 발생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음이 증명된 때 보험사는 보험액을 지급할 책임이 있는 반면 고지의무 위반이 민법상 착오에 해당해 보험사가 그에 따라 취소권을 행사하게 되는 경우에는 보험계약의 효력이 소급적으로 소멸해 고지의무 위반과 보험사고 발생 사이에 인과관계 존부와 상관없이 보험사는 언제나 보험금의 지급 책임을 지지 않게 되는 점, 고지의무 위반으로 인한 계약해지의 경우 보험사의 해지 기간을 제한하고 있는 반면 민법상 착오에 의한 취소권은 취소 기간에 제한이 없는 점 등에 비춰 보면, 고지의무 위반이 보험사로 하여금 착오를 일으키게 했다는 사정만으로 상법 제651조에서 정한 보험계약의 해지 외에 별도로 민법 제109조에 따라 보험계약을 취소할 수는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했습니다. 

임용수 변호사의 케이스메모


고지의무에 위반한 사실이 동시에 민법상의 사기나 착오에도 해당하는 경우 보험사가 고지의무에 관한 상법 규정을 적용해 보험계약 해지권을 행사하는 이외에도 민법의 일반원칙에 따라 보험계약을 취소하고 보험금 지급을 거절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대립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보험계약자의 고지의무 위반이 사기에 해당하는 경우 보험사는 상법 규정에 의해 계약을 해지할 수 있음은 물론 민법의 일반원칙에 따라 보험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2) 하지만 착오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 판결은 하급심 판결이기는 하지만 착오의 경우에는 민법 제109조에 따라 보험계약을 취소할 수 없다고 판시하면서 그 이유를 논리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판결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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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 등록일 : 2016년 10월 27일
  • 1차 수정일 : 2020년 6월 16일(재등록)

1)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 2016. 5. 12. 선고 2015가단86639 판결. 1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습니다.
2) 대법원 1991. 12. 27. 선고 91다1165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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