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임용수 변호사
매년 다슬기를 잡다가 물에 빠져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고가 빈발하고 있습니다. 수심이 얕다고 방심하거나 구명조끼 착용 등 안전수칙을 어기고 함부로 물에 들어갔다가 수난을 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전문가들은 반드시 안전수칙을 지키고 다슬기에만 정신이 팔려 점점 깊은 곳으로 들어가다 물에 빠지거나 급류에 휘말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주위를 주기적으로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이처럼 수심이 얕은 하천에서 다슬기를 잡다가 쓰러져 숨졌던 유사한 사례에서 외래의 사고로 인한 사망(사망보험금 지급 대상)인지 여부를 두고 법원간 엇갈린 판결이 나왔습니다. 두 사건 모두 목격자가 없는 상태에서 사망했고 부검도 이뤄지지 않았던 경우인데, 하나는 우발적인 외래의 사고로 사망했다고 판단했고 다른 하나는 우발적인 외래의 사고로 사망했다는 것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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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에이비엘생명(구 알리안츠생명)에서 판매하는 종신보험에 지난 2003년 12월 가입한 정 모씨.1) 정 씨는 보험에 가입한지 10년이 된 해에 차를 타고 사천시 송포동 신촌마을에 있는 한 하천으로 다슬기를 채취하러 갔다가 밤 10시 40분쯤 깊이 45cm의 하천물에 얼굴을 밑으로 향한 채 쓰러져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습니다. 유족이 재해사망보험금 지급을 요청했지만, 에이비엘생명은 정 씨의 사망이 우발적인 외래의 사고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재해사망보험금을 순순히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강력 반발한 유족은 소송을 냈고, 항소까지 가는 긴 싸움 끝에 법원은 유족의 손을 들어줬습니다.2) 사체검안서에 정 씨의 직접사인이 익사로 기재돼 있는 등 익사라는 사실을 넉넉히 인정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반대로 다슬기를 잡다가 수심 30cm의 하천 바닥에 앞으로 쓰러져 숨진 상태로 발견된 경우는 사망진단서에 직접사인이 익사로 기재돼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우발적인 외래의 사고로 사망했다는 것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판결도 있습니다.
얕은 하천 / 다슬기 채취 |
한화생명이 판매하는 재해사망 특약이 부가된 생명보험에 지난 2004년 6월 가입한 김 모 씨.3) 김 씨는 2013년 9월 오전 경북 의성군에 있는 비봉길 인근 남대천에 다슬기를 잡으러 갔습니다. 하지만 김 씨는 그날 오후 2시쯤 다슬기를 담은 채집망을 허리에 차고 수심 30cm의 하천 바닥에 앞으로 쓰러져 사망한 상태로 발견됐습니다.
유족이 '익사라는 재해 때문에 사망했다'며 재해사망보험금 지급을 요청했지만, 한화생명은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습니다. 법원은 한화생명의 손을 들어줬습니다.4) 김 씨가 수심이 얕은 남대천에서 다슬기를 잡다가 지주막하 출혈로 의식을 잃고 하천 바닥에 쓰러져 사망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두 판결 모두 수심이 얕은 하천에서 다슬기 채취 중 하천에 쓰러져 사망한 상태로 발견된 사고라는 점, 사인이 될 만한 외상이 없었던 점 등을 공통분모로 합니다. 앞서 든 첫 번째 판결은, 의사의 사체검안만으로 피보험자의 사망 원인을 밝힐 수 없었음에도 유족의 반대로 부검이 이뤄지지 않은 경우, 부검을 하지 않음으로써 생긴 불이익은 유족이 감수해야 할 것이지만, 피보험자가 집안에서 별다른 원인을 알 수 없이 사망한 사례와는 달리 의사의 사체검안이나 사체의 발견 장소로 미뤄 볼 때 사망원인이 익사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으므로, 부검을 하지 않았다는 사정을 유족에게 불이익하게 고려할 수는 없다는 구체적 이유를 밝혔습니다. 반면 두 번째 판결은 의사의 사체검안이나 사체의 발견 장소로 미뤄 볼 때 피보험자의 사망원인이 익사일 가능성이 있지만 피보험자의 질병 또는 체질적 요인으로 의식을 잃고 하천 바닥에 쓰러져 사망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이고 의사의 사체검안서 기재 내용만으로는 우발적인 외래의 사고로 사망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어 사망원인을 유족들에게 불이익하게 고려하겠다는 취지입니다.
거의 동일하다고 평가할 수 있는 사건들임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결론이 상반되게 나온 이유는 개별 사건마다 담당하는 판사의 전문 지식이나 경험, 배경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패소한 계약자 측 변호사가 "익수"라는 팩트나 쟁점을 놓치고 주장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2) 이 사건의 재판을 맡은 창원지법 민사2부(재판장 명재권 부장판사)는 A씨의 유족이 에이비엘생명을 상대로 낸 보험금청구 소송에서 "에이비엘생명의 항소를 기각한다"며 원고승소 판결한 1심을 그대로 유지했다고 밝혔습니다.재판부는 「사체검안서에 정 씨의 직접사인이 '익사'로 기재돼 있는 사실, 정 씨의 사망 사고를 조사한 경찰관도 변사사건처리 결과보고서에 '정 씨가 추운 날씨에 장시간 하천을 따라 올라가며 다슬기 채취 작업을 하던 중 이끼에 미끄러지면서 정신을 잃어 익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기재하고 있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며 「이런 사실에 의하면 정 씨 직접사인이 '익사'라는 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정 씨가 2007년경 삼천포서울병원에서, 또 2008년 6월부터 2013년 10월까지 경상대학교 병원에서 각각 파킨슨병 등으로 수술 및 약물치료 등을 받은 사실은 인정되나, 정 씨의 사망 사고는 이 보험의 약관에 기재된 '우발적인 외래의 사고'에 해당하고, 에이비엘생명이 주장하는 사정이나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그런 인정을 뒤집을 수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항소인이었던 에이비엘생명의 상고 포기로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습니다.
3) 피보험자를 원고로 표현합니다.
4) 이 사건의 재판을 맡은 대구지법 민사19단독 성기준 판사는 "유족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며 원고패소 판결했습니다. 성 판사는 「사체가 발견된 당시 김 씨의 모습과 남대천의 수심 등 주변 상황, 뇌 CT 촬영을 통한 검사를 거쳐 작성된 사망진단서와 의무기록사본의 내용 등 모든 사정을 고려하면, 김 씨는 수심이 약 30cm에 불과한 남대천에서 다슬기를 잡다가 지주막하 출혈로 의식을 잃고 하천 바닥에 쓰러져 사망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점에 비춰, 사망진단서에 김 씨의 직접사인이 익사라고 기재돼 있다는 사실만으로 김 씨가 우발적인 외래의 사고(재해) 때문에 사망했다는 것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판결에 대해서는 유족의 항소 포기로 1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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