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액보험과 보험금 감액 허용 여부



1. 서설

정액보험이란 보험사고가 발생한 때 그에 따른 피보험자의 손해 유무나 다소에 관계없이 보험계약에서 정한 일정한 보험금액을 일시에 또는 분할하여 지급하는 보험을 말한다. 

정액보험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사람의 생존 또는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여 약정된 보험금액을 지급하는 생명보험이 있다. 그 밖에 급격하고도 우연한 외래의 사고로 인한 피보험자의 상해(상해사망 포함)·후유장해 등이 발생한 경우에 약정한 보험금액의 전부 또는 일정 비율을 지급하는 상해보험 등도 이에 속한다. 

정액보험은 보험사고의 결과로서 발생한 실손해액과는 무관하게 약정된 일정 보험금액을 지급하는 것이다. 따라서 피보험자의 기왕증이나 과실 등을 고려하여 보험금액의 감액이 허용된다면 이는 실손해액을 산정하는 것에 다름없는 결과가 되어 정액보험으로서의 성질에 반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특히 상해보험 약관에는 
계약 체결 전에 이미 존재한 신체장해 또는 질병의 영향으로 상해가 중하게 된 때 보험자가 그 영향이 없었을 때에 상당하는 금액을 결정하여 지급하기로 하는 내용의 약관(기왕증 기여도 감액 약관)이 있는데, 그 약관의 효력이 문제된다.

이에 대하여 먼저 피보험자의 신체장해, 질병 등과 같은 기왕증을 고려한 보험금 감액이 허용되는지 여부와 과실상계 규정이 적용되는지 여부를 차례로 살펴보기로 한다.


2. 피보험자의 기왕증을 고려한 보험금 감액의 허용 여부

가. 정액보험에 있어 보험사고의 발생과 관련하여 피보험자의 기왕증이 상당한 정도로 기여했을 때, 그 기여도를 감안하여 보험금을 감경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하여 견해가 대립하고 있다.

(1) 긍정설

보험제도의 본질적인 목적과 취지 및 특성에 비추어 볼 때,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가 보험사고의 발생에 상당한 정도로 기여했을 때는 그 기여도를 감안하여 보험자의 보험금 지급 의무를 일정 한도로 감경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이나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합치된다고 보는 견해이다.7) 

이 견해에 의하면, 상해보험은 기왕증이 기여한 결과에 대해서는 담보하지 않는 보험이므로, 보험자는 보험사고로 인한 보험금을 지급함에 있어 약관에 기왕증 관련 감액 규정이 없더라도 당연히 기왕증이 기여한 부분만큼을 공제하고 보험금을 지급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기왕증 관련 감액에 관한 약관 규정은 당연한 내용을 확인하거나 선언하는 것에 불과하게 된다.

(2) 부정설(무효설)

정액보험의 특성상 사고가 급격성, 우연성, 외래성의 요건을 모두 갖춘 보험사고에 해당하는 이상, 보험자는 피보험자가 그 사고 이전에 기왕증이 있었다거나 후유장해에 기왕증이 상당 부분 기여했는지와는 관계없이 후유장해에 대하여 약관에서 정한 보험금 전액을 지급할 의무가 있고, 피보험자의 기왕증을 고려하여 보험금을 감액해서는 안된다고 보는 견해이다.8) 이 견에 의하면 약관에 기왕증 기여도 감액 약관을 두고 있더라도 이는 정액보험의 본질에 반하므로 무효라고 한다.

기왕증이 보험사고로 인한 결과에 미친 기여도에 따라 보험금액을 감액한다면 이는 구체적인 손해액을 산정하는 것에 다름 아니어서 정액보험을 손해보험화 하는 것이 되고, 보험사고 시에 손해의 유무 및 손해액에 관계없이 약정된 보험금이 지급되어야 하는 조건부 금전 급부 계약인 정액보험의 본질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9) 

(3) 절충설(유효설)

이것은 상해보험의 경우 약관에 계약 체결 전에 이미 존재한 신체장해 또는 질병의 영향으로 상해가 중하게 된 때 보험자가 그 영향이 없었을 때에 상당하는 금액을 결정하여 지급하기로 하는 내용의 감액 규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 약관에 따라 보험금을 감액하여 지급할 수 있다는 견해이다.10) 

나. 사견

생명보험 약관에서는 특히 재해특약과 관련하여, 재해로 인한 피보험자의 사망 또는 장해에 대하여 보험자가 특별히 고액(일반보험금의 2배 내지 10배 등)의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약관 규정을 두고 있다. 여기서 재해란 재해분류표에서 열거한 우발적인 외래의 사고를 말한다. 다만 질병 또는 체질적 요인이 있는 자로서 경미한 외부요인에 의하여 발병하거나 또는 그 증상이 더욱 악화되었을 때는 그 경미한 외부요인은 우발적인 외래의 사고로 보지 않는다. 

만약 긍정설에 의한다면 「질병 또는 체질적 요인이 있는 자로서 경미한 외부요인에 의하여 발병하거나 또는 그 증상이 더욱 악화되었을 때」라고 하더라도 신의성실의 원칙이나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따라 사고(경미한 외부요인)의 기여도만큼 보험금을 지급하는 방식이 합당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긍정설은 인보험의 특수성11)을 무시하고 인보험에 대해서도 손해배상의 공평한 분담이라는 손해배상법의 이념을 적용하자는 주장으로서 인보험과 자동차보험(특히 대인배상책임)을 혼동한 것이다. 또한 이런 방식을 인정하는 실무상 사례도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사망보험에서 사고 발생에 관한 피보험자의 기왕증 기여도에 따라 보험금을 감액한다는 특약(약관 규정)은 상법 제663조 본문의 불이익변경금지의 원칙 및 약관규제법 제6조의 일반원칙에 반하는 것으로 무효라고 보아야 한다.12) 

이와 달리 상해보험의 경우에는 약관에 「이미 존재한 신체장해 또는 질병의 영향으로 상해가 중하게 된 때 보험자가 그 영향이 없었을 때에 상당하는 금액을 결정하여 지급하기로 한다」는 내용의 규정을 둔다고 하더라도, 이 규정은 상법 제663조 본문의 불이익변경금지의 원칙이나 약관규제법 제6조에 반하지는 않는다고 본다. 왜냐하면 미리 약관에 기왕증의 기여도에 따라 지급률을 정하여 보험가입금액에 해당 지급률을 곱하여 산출한 금액을 보험금으로 지급하기로 하는 방식의 규정이라면, 그와 같은 방식이 정액보험으로서의 성질에 반하는 것은 아니고 그러한 규정이 특별히 보험계약자에게 불리하다고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약정 보험금 전액을 지급하는 것이 원칙이고 예외적으로 기왕증 관련 감액 규정이 있는 경우에만 보험금을 감액하는 방식이므로 그 감액 규정은 보험금의 지급 범위 등을 결정하는 중요한 내용으로서 약관 설명의무의 대상이 된다.13) 

결국 상해보험의 경우에는 기왕증 기여도 감액 약관을 둔 경우 그 약관에 따라 보험금을 감액하여 지급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생명보험의 경우에는 피보험자의 기왕증을 고려하여 보험금을 감액하는 규정은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3. 과실상계 규정의 적용 여부

과실상계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 범위를 정함에 있어서 공평 내지 신의칙의 견지에서 피해자의 과실을 참작하는 것일 뿐, 인보험의 보험금청구권자가 보험자에게 계약 내용에 따른 의무 이행을 구하는 경우에는 과실상계의 법리가 적용될 여지가 없다.14) 상법은 사망보험과 상해보험의 경우 보험계약자, 피보험자 또는 보험수익자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사고에 대해서도 보험자의 보험금 지급 책임을 인정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상법 제732조의2, 제739조), 과실상계 규정을 적용하여 보험금을 감액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인보험에서 보험사고의 발생에 보험계약자 등의 과실이 있는 경우 과실상계를 한다는 특약은 상법 제663조의 불이익변경금지원칙 등에 위배되어 무효라고 보아야 한다. 


보험법 저자🔹임용수 변호사


7) 대전지방법원 홍성지원 1993. 12. 3. 선고 92가합814 판결. 
8) 울산지방법원 1998. 7. 15. 선고 97가합11061(본소), 98가합3593(반소); 부산고등법원 2000. 9. 29. 선고 99나6661,6678 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2002. 8. 22. 선고 2001가단36465 판결 등 다수. 하급심 판례는 절충설 또는 부정설의 입장이 주류이나 긍정설의 입장을 취한 듯한 판례도 보인다.
9) 박기억, 법률신문 2003. 3. 3. 제3151호, 14면 「정액보험 방식의 상해보험에 있어서 약관에 의한 보험금 감액의 허부」참조. 
10) 대법원 2002. 3. 29. 선고 2000다18752 판결; 대법원 2002. 10. 11. 선고 2002다564 판결, 대법원 2007. 10. 11. 선고 2006다42610 판결; 대법원 2013. 10. 11. 선고 2012다25890 판결. 
11) 정액보험으로서의 성질, 재해나 상해에 관한 약관 규정 내용이 자동차보험의 경우와는 다르다는 점(따라서 약관 규정에 명백히 반하는 해석은 해석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다) 등을 들 수 있다. 
12) 상해보험에서 장해란 상해 또는 질병에 대하여 치유된 후 신체에 남아있는 영구적인 정신 또는 육체의 훼손 상태를 뜻하므로 기존의 상해나 질병의 영향을 고려하는 것이 가능하고 불합리하다고 볼 수 없는 반면, 피보험자의 사망 자체가 보험사고인 사망보험의 경우에는 생명의 가치를 사고 전후로 나누어 계량화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보험 가입자에게 예상하지 못한 불이익을 주는 것으로 옳지 않다.
13) 동지: 대법원 2015. 3. 26. 선고 2014다229917, 2014다229924 판결.
14) 대법원 1987. 3. 24. 선고 87다카1324 판결, 울산지방법원 2018. 11. 7. 선고 2018나541(본소), 2018나558(반소)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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