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계약의 무효



1. 보험사고의 객관적 확정

보험계약의 무효란 보험계약이 성립한 때부터 법률상 그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보험계약 당시에 보험사고가 이미 발생했거나 또는 발생할 수 없는 것인 때는 그 보험계약은 무효이다(상법 제644조). 보험사고의 객관적 확정의 효과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는 상법 제644조는 보험사고는 불확정한 것이어야 한다는 보험의 본질에 따른 강행규정이다. 이미 발생이 확정된 보험사고에 대한 보험계약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취지에서 보험계약 당시 이미 보험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그 보험계약을 무효로 하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당사자 사이의 약정으로 이 규정에 반하는 보험계약을 체결하더라도 그 계약은 무효이고, 이를 추인할 수도 없다.1)

다만 보험사고의 불확정성은 반드시 객관적으로 불확정한 것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보험계약자의 선의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주관적이어도 무방하다. 따라서 보험계약의 당사자 쌍방과 피보험자가 이미 보험사고가 발생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보험계약을 체결한 때는 그 효력이 인정된다(상법 제644조 단서).

이른바 승낙 전 보험사고의 경우 보험계약 당시에 보험사고가 이미 발생한 경우라 하더라도, 보험계약의 청약을 거절할 사유가 없어서 보험자의 보험계약상 책임이 인정되면, 보험계약 당시에 보험사고가 이미 발생했다는 이유로 상법 제644조에 의하여 보험계약이 무효로 된다고 볼 수 없다.2) 상법 제638조의2 제3항이 보험 가입자의 기대이익 보호를 위하여 예외적으로 보험자에게 보험계약상의 책임을 부담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보험사고의 객관적 확정의 효과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는 상법 제644조의 규정 취지 및 보험계약은 원칙적으로 보험 가입자의 선의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단일한 보험계약에서 정한 보험사고의 하나가 무효인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보험계약 전체가 무효로 된다(민법 제137조 참조). 대법원 판결도 재해 및 질병을 담보하는 보험계약에서 피보험자가 재해로 사망했더라도 이미 책임 개시일 이전에 암의 진단이 확정된 때는 그 보험계약 전체가 무효이므로 보험자는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판시하여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3)

다만 기본계약4)과 선택계약5)으로 구성된 보험계약에서 계약체결 당시 피보험자에게 이미 선택계약에서 정한 보험사고가 발생하여 선택계약이 무효인 경우 보험계약 당사자 사이에서 무효로 된 선택계약이 없었더라도 나머지 부분만으로도 보험계약을 체결했을 것이라고 인정되는 때는 해당 선택계약을 제외한 나머지 계약부분은 유효하다. 


2. 사기로 인한 초과보험·중복보험

손해보험에서 보험계약자의 사기에 의하여 초과보험(상법 제669조 제4항)·중복초과보험 또는 중복보험(상법 제672조 제3항)이 체결된 경우 그 계약은 당연히 무효가 된다. 그러나 이때 보험자는 그 사실을 안 때까지의 보험료를 청구할 수 있다(상법 제669조 제4항 단서, 제672조 제3항).


3. 사회질서 위반의 보험계약

보험계약자가 당초부터 오로지 보험사고를 가장하거나 많은 보험계약을 통하여 보험금을 부정 취득할 목적으로 보험계약을 체결하는 경우가 흔히 발생한다. 예컨대, 간()기능 이상으로 입원 치료를 받는 등 건강상태가 불량한 피보험자가 그러한 이상이 있음을 전혀 알리지 않은 채 질병보험을 체결하고 그 계약이 체결된 때부터 단기간 내에 병원에서 간경화 진단을 받은 다음 질병 보험금을 청구한 경우는 보험금을 부정 취득할 목적이 있는 것으로 인정될 수 있다.

보험금의 부정 취득을 목적으로 체결된 보험계약에 의하여 보험금을 지급하게 하는 것은 보험계약을 악용하여 부정한 이득을 얻고자 하는 사행심을 조장함으로써 사회적 상당성을 일탈하게 된다. 또한 합리적인 위험의 분산이라는 보험제도의 목적을 해치고 위험 발생의 우발성을 파괴하며 많은 선량한 보험 가입자들의 희생을 초래하여 보험제도의 근간을 해치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보험계약은 민법 제103조 소정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배되는 법률행위로서 무효이다.6)


4. 피보험자의 서면 동의가 결여된 타인의 사망보험

타인의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보험계약에는 보험계약 체결 당시에 피보험자의 서면에 의한 동의를 얻어야 하며 이에 위반하여 체결된 보험계약은 무효이다(상법 제731조 제1항). 다만 단체가 규약에 따라 구성원의 전부 또는 일부를 피보험자로 하는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는 피보험자의 서면에 의한 동의를 얻지 않아도 된다. 이때 단체보험의 보험수익자를 피보험자 또는 그 상속인이 아닌 자로 지정할 때는 단체의 규약에서 명시적으로 정한 경우가 아니면 피보험자의 서면에 의한 동의를 얻어야 한다.7)

상법 제731조 제1항의 입법 취지에는 도박보험의 위험성과 피보험자 살해의 위험성 외에도 피해자의 동의를 얻지 아니하고 타인의 사망을 이른바 사행계약상 조건으로 삼는데서 오는 공서양속의 침해의 위험성을 배제하기 위한 것도 들어있다.

따라서 상법 제731조 제1항을 위반하여 계약을 체결한 자 스스로가 무효를 주장함이 신의성실 원칙에 위배되는 권리 행사라는 이유로 이를 배척한다면, 위와 같은 입법 취지를 완전히 몰각시키는 결과가 초래되므로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그러한 주장이 신의성실 또는 금반언의 원칙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

여기서 피보험자인 타인의 동의는 보험계약 체결 시까지,8) 각 보험계약에 대하여 개별적으로 서면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하며, 포괄적인 동의 또는 묵시적이거나 추정적 동의만으로는 부족하다.9)


5. 심신상실자 등을 피보험자로 하는 사망보험

15세 미만자, 심신상실자 또는 심신박약자의 사망을 보험사고로 한 보험계약은 무효로 한다(상법 제732조).10) 이는 판단능력이 온전하지 못한 이들을 보호하려는 취지에서 마련된 규정이다.11) 이 경우 보험자는 보험료의 지급을 청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미 수령한 보험료는 부당이득에 해당하므로 보험계약자에게 반환해야 한다. 다만 심신박약자가 자기의 사망보험을 체결하거나 소속 단체의 규약에 따른 단체보험의 피보험자가 될 때 의사능력이 있는 경우 피보험자가 될 수 있다(상법 제732조 단서). 즉 의사능력이 있는 심신박약자가 자기의 사망을 보험사고로 해서 체결한 보험계약은 유효하다. 

15세 미만자 등을 피보험자로 하는 사망보험을 무효로 하는 상법 제732조의 규정은 상해보험이나 질병보험에는 적용되지 않으므로, 예컨대 태아보험과 같이 15세 미만자의 상해보험이나 질병보험은 유효하다. 다만 15세 미만자 등을 피보험자로 한 상해보험의 경우에는 사망보험의 악용에 따른 도덕적 위험 등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상법 제732조의 입법취지상 상해를 원인으로 한 사망을 사망보험금 지급사유로 규정한 약관이 있다면 그 약관 조항은 무효라고 풀이한다. 통상 정신능력이 불완전한 15세 미만자 등을 피보험자로 하는 경우 그들의 자유롭고 성숙한 의사에 기한 동의를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도 상해를 원인으로 한 사망을 보험사고로 한 보험계약 부분은 그들의 동의가 있었는지 또는 보험수익자가 누구인지와 관계없이 무효가 된다고 보아야 한다. 이때도 심신박약자가 자기의 상해를 원인으로 한 사망보험을 체결할 때 의사능력이 있는 경우 피보험자가 될 수 있다는 상법 제732조 단서 규정이 적용된다.


보험법 저자🔸임용수 변호사


1) 동지: 대법원 2002. 6. 28. 선고 2001다59064 판결; 서울고등법원 2005. 9. 15. 선고 2005나11451, 11468 판결.
2) 동지: 대법원 2008. 11. 27. 선고 2008다40847 판결.
3) 대법원 1998. 8. 21. 선고 97다50091 판결. 이 판결은 일반재해 또는 교통재해로 인한 사망 및 장해와 암 진단의 확정 및 그와 같이 확진이 된 암을 직접적인 원인으로 한 사망 등을 보장 대상으로 하는 보험계약을 체결한 피보험자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폭행당하여 사망(일반 재해사망)한 사건에서, 「피보험자가 보험계약일 이전에 위암으로 확진을 받은 경우에는 그 보험계약 전체를 무효로 한다는 취지라고 보아야 할 것이지, 단지 보험사고가 암과 관련하여 발생한 경우에 한하여 무효로 한다는 취지라고 볼 수 없다. 따라서 비록 피보험자가 일반재해로 사망했다고는 하나, 이미 책임 개시일 이전에 암진단이 확정되어 보험계약 전체가 무효가 되었으므로, 보험자는 재해사망보험금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4) 기본계약이란 보통보험 약관 또는 주계약 약관이라고 불리는 약관이 적용되는 계약을 말한다.
5) 선택계약이란 보통보험 또는 주계약에 부가하여 보장을 추가하거나 보험계약자 등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한 제도 등을 추가하는 특별약관(특약)이 적용되는 계약을 말한다.
6) 동지: 대법원 2000. 2. 11. 선고 99다49064 판결; 대법원 2005. 7. 28. 선고 2005다23858 판결.
7) 생명보험표준약관 참조.
8) 동지: 대법원 1996. 11. 22. 선고 96다37084 판결.
9) 동지: 대법원 2003. 7. 22. 선고 2003다24451 판결.
10) 부산지방법원 2006. 7. 14. 선고 2005가합18163 판결.
11) 동지: 김성태 3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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