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판결) 보험 가입 하루 전 혈소판증가증 소견 진단 안 알렸어도 고지의무 위반 아냐

혈소판

글 : 임용수 변호사


보험에 가입하기 바로 하루 전날 혈소판증가증 소견이 있다는 진단을 받은 경우 보험금을 탈 수 있을까요? 보험전문 변호사와 함께 최근 선고된 판결의 자세한 내용을 알아봅니다. 

최 모 씨는 보험에 가입하기 하루 전에 혈소판증가증 소견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고, 보험이 개시되고 나흘 뒤에는 암의 일종인 본태성 혈소판증가증 확정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 경우 보험회사는 고지의무 위반을 위반했다며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는데, 과연 최 씨는 보험금을 받을 수 있을까요? 

2015년 2월 최 씨의 어머니는 메리츠화재해상보험()의 보험설계사였던 자매(최 씨의 이모)로부터 보험 가입 권유를 받고서 보험에 가입했습니다. 보험에 가입하기 하루 전날 최 씨는 잦은 설사와 복통을 호소, 한 병원 응급의료센터에 내원해 흉부 엑스선 촬영 검사, 복부 방사선 검사, 혈액 검사 등을 받았는데, 혈액 검사 결과에서 혈소판증가증 소견이 있다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그 후 입원 치료를 받던 최 씨는 나흘 뒤 본태성 혈소판증가증 확정 진단을 받았습니다. 본태성 혈소판증가증은 혈액학적 관점에서 만성 골수증식 질환의 일종이며 만성 골수증식 질환은 메리츠화재의 특별약관에서 보험사고로 규정하고 있는 암 및 5대 고액치료비 암에 해당합니다. 

최 씨는 2016년 5월 메리츠화재에 보험금을 청구했습니다. 그런데 메리츠화재는 보험 가입 당시 혈소판증가증 소견이 있다는 진단을 받고 입원한 사실이 고지의무의 대상이 되는 중요한 사항임에도, 최 씨 측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해 이를 알리지 않았다며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습니다. 메리츠화재는 최 씨 측의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보험계약을 해지한 뒤 외려 최 씨를 상대로 지급할 보험금 채무가 없다며 소송을 냈습니다. 

상법은 "보험계약 당시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해 중요한 사항을 고지하지 않거나 부실의 고지를 한 때는 보험자는 그 사실을 안 날부터 1월 내에, 계약을 체결한 날부터 3년 내에 한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라고 규정, 중요 사항에 대한 고지의무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판례는 고지의무 위반 여부를 보험계약 성립 시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최 씨의 어머니는 보험 가입 하루 전에 최 씨에 대한 혈액검사 결과 '혈소판증가증 소견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고, 치료 담당 의사로부터 혈소판증가증의 증상, 진단 및 치료 방법 등에 관한 설명을 들은 사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메리츠화재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고지의무 위반으로 보험계약을 해지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 씨의 어머니가 보험계약의 청약서를 작성해 보험설계사에게 교부할 때는 '혈소판증가증 소견이 있다'는 진단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최 씨가 설 연휴 기간에 보험설계사를 만나 청약서를 작성·교부했지만 당시 주말이 낀 설 연휴가 5일 동안 계속됐던 까닭에, 청약서 작성·교부 시점과 보험계약이 성립한 날 사이에 시간적 간격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서울고법 제18민사부(재판장 정선재 부장판사)는 메리츠화재가 암 환자인 최 씨를 상대로 낸 채무 부존재 확인 청구 소송의 항소심에서 메리츠화재의 항소를 기각하고 "메리츠화재는 최 씨에게 8200만 원을 지급하라"며 최 씨의 손을 들어준 1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했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보험계약은 원칙적으로 보험계약자의 청약에 대해 보험자가 승낙함으로써 성립하는데,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는 상법 제651조에서 정한 '중요한 사항'이 있는 경우 이를 보험계약의 성립 시까지 보험자에게 고지해야 하고, 고지의무 위반 여부는 보험계약 성립 시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법리를 설명했습니다.

이어 「앞서 본 법리에 비춰 보면, 최 씨의 어머니가 청약서를 2015년 2월 18일에 작성했더라도, 보험계약은 메리츠화재가 보험 심사를 마치고 청약 내용을 승인한 2015년 2월 23일에 성립했으므로 최 씨의 고지의무 위반 여부는 2015년 2월 23일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비록 '혈소판증가증 소견이 있다'는 진단의 의미가 최 씨에 대한 본태성 혈소판증가증의 확정적 진단에 관한 것은 아니더라도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므로, 메리츠화재가 보험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그 진단 사실을 알았더라면 보험계약을 체결하지 않거나 적어도 동일한 조건으로는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며 「따라서 최 씨가 받은 진단은 상법 제651조에서 정한 고지의무의 대상이 되는 중요한 사항에 해당하고, 최 씨 측이 이를 알리지 않은 것은 상법 제651조에서 정한 고지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최 씨 측이 그와 같이 고지하지 않은 것에 대한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최 씨는 2015년 2월 22일 응급의료센터 내원 당시 복수 방사선 검사 결과 장염 소견이었고, 그 이전에 혈액에 이상이 있다거나 혈소판증가증의 진단 및 치료 등을 받은 이력은 없었다는 사실과 소아·청소년 연령에서 발견되는 혈소판증가증은 반응성(2차성)인 경우가 대부분으로 장염도 반응성 혈소판증가증의 원인이 될 수 있으며, 1회의 혈액검사에서 혈소판 수치가 높게 나온 것만으로는 본태성 혈소판증가증으로 진단할 수 없다는 사실이 판단의 기초가 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재판부는 「최 씨 어머니의 청약서 작성·교부 시점과 보험계약이 성립한 날 사이에 시간적 간격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달리 최 씨의 어머니가 '혈소판증가증 소견이 있다'는 진단을 받은 사실을 알면서 청약서를 작성해 교부한 것으로 볼만한 사정은 발견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혈액검사 결과 혈소판증가증 소견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고, 치료 담당 의사로부터 혈소판증가증의 증상, 진단 및 치료 방법 등에 관한 설명을 들은 사실만으로는 최 씨 측이 그런 진단 결과가 고지의무의 대상인 중요한 사항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고도 고의로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이를 알지 못해 고지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추인하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임용수 변호사의 케이스메모


혈소판증가증은 혈소판 수가 증가하는 질환으로 제6차 개정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에서는 '악성신생물()'로 분류되는 "본태성 혈소판증가증(1차성)"과 다른 질병의 반응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반응성 혈소판증가증(2차성)"으로 분류됩니다. 

본태성(출혈성) 혈소판증가증(ET, essential thrombocytosis, essential thrombocythemia)1)은 특별한 이유 없이 혈소판이 과다 생산되는 원인 불명의 다능성 조혈선조세포의 클론성 질환으로 소아의 경우 백만 명당 1명 정도의 비율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진 희귀난치질환입니다. 질병분류코드는 D47.3이지만, 2008년 1월 1일부터 시행된 제5차 개정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에서 행동양식 분류 번호 /3인 악성신생물로 분류됐습니다. 즉 분류 체계상 '행동양식 불명 또는 미상의 종양'에 위치하더라도 행동양식 측면에서는 '악성 종양(C00-C97)'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반면, 반응성 혈소판증가증은 감염, 염증, 수술, 악성종양 등의 원인으로 인해 혈소판 수가 일시적으로 증가하는 질환입니다.


모든 염증성 질환은 반응성 혈소판증가증의 원인이 될 수 있으므로, 혈소판 수가 증가한 경우 우선적으로 다른 질환의 결과로서 혈소판 수가 증가한 것인지를 규명해야 합니다. 혈소판의 절대적 수치만으로 본태성과 반응성 여부를 감별할 수 없고, 1회의 혈액 검사에서 혈소판 수치가 높게 나온 것만으로는 본태성 혈소판증가증이라고 진단하지 않으며, JAK2변이검사(유전자검사)와 골수검사(조직검사) 등 추가 검사를 병행하면서 반복적인 혈액 검사에서 혈소판의 수치가 높게 지속될 때 본태성 혈소판증가증 여부를 진단할 수 있습니다.

이번 판결의 경우 고지의무의 대상이 되는 중요한 사항에 속하는 사실들에 대해 '혈소판증가증 소견이 있다'는 진단 사실뿐 아니라 병원에서의 입원 치료, 혈액 검사를 받은 사실도 포함됐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메리츠화재는 '혈소판증가증 소견이 있다'는 진단을 받고 입원한 사실에 대해 고지의무 위반이 있다고 주장했고, 이에 따라 재판부는 메리츠화재의 주장 부분에 대해서만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의 고의나 중과실 유무를 판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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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 등록일: 2020년 2월 9일

1)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상으로는 본태성(출혈성) 혈소판혈증[Essential(haemorrhagic) thrombocythaemia]이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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