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판결) 3억원 사망보험금 두고 '익사냐, 자살이냐' 다툼, 법원 판단은


글 : 임용수 변호사


2017년 7월 어느날 새벽, A씨는 거주지인 대구를 떠나 여행을 하던 중 포항에 있는 해오름전망대에서 바다로 추락했습니다. 부검 결과는 다발성 손상과 익사. 포항해양경찰서는 사고조사 결과 채무로 인한 자살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판단, 대구지방검찰청 포항지청에 내사종결 지휘를 건의했습니다. 

A씨의 동거인이었던 K씨는 A씨가 포항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K씨를 사망보험금 수익자로 지정하고 맺은 삼성화재해상보험()에 사망보험금을 달라고 청구했습니다. 국내여행자보험계약을 통해 A씨의 사망으로 K씨가 받을 수 있는 돈은 3억 원에 달했습니다. 

그런데 삼성화재는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며 보험금을 주지 않았다. "A씨가 우연한 사고로 숨진 것이 아니라 고의로 목숨을 끊은 것이므로 보험계약에서 정한 보험사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K씨를 상대로 보험금 지급 채무가 없다며 부존재 확인을 구한다는 소송을 냈습니다.   


A씨의 사망에는 조금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습니다. 사건 전에 A씨는 은행 등에 총 8천만 원 가까운 채무를 부담하고 있었고 일정한 수입이 없음에도 월 납입금 16만 원이 넘는 보험에 가입한 사실이 있었습니다. 또한 사고가 발생한 해오름전망대는 그 둘레에 좁은 간격으로 약 1.15 내지 1.3m의 난간이 설치돼 있어 여행객의 추락을 방지하는 구조였습니다. 

삼성화재는 A씨의 사고 전후의 행적, 충돌 부위 등을 토대로 "A씨가 실족 추락사한 것이 아니라 난간 위에서 또는 난간 밖에 서서 자유의지로 뛰어내린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부산고법 제2민사부(재판장 박효관 부장판사)는 "삼성화재는 K씨에게 3억 원을 지급하라"고 했던 1심 법원 재판부의 판결이 정당하다며 삼성화재의 항소를 기각하고 K씨의 손을 들어줬다고 밝혔습니다.


1심 재판부는 「사고 전후의 상황을 목격한 사람이 없고 그 무렵 A씨의 심경을 기록한 글이나 유서 등도 발견되지 않았으며, A씨가 해오름전망대 둘레의 난간 위에 걸터앉거나 섰다가 추락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또 「A씨의 사고 전후의 행적, A씨에 대한 부검 결과, 사고에 대한 동기, 주변 정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충돌 부위와 사고 당시 행적만으로 사고 경위를 일률적으로 추론할 수는 없다」는 것이 1심 재판부의 판단이었습니다. 1심 재판부는 삼성화재의 청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삼성화재는 이 판결에 항소했습니다. 
  
보험사와 보험 가입자 측이 '고의 사고다, 아니다'를 각각 주장하며 다툴 경우 증명 책임은 보험사에 있습니다.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 책임을 면하려면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라는 사실을 유서 등 객관적인 물증의 존재나 일반인의 상식에서 자살이 아닐 가능성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이 들지 않을 만큼 명백한 주위 정황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 판례의 입장입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 법원의 판단을 그대로 인용하며, 보충판단을 덧붙였습니다. 재판부는 「A씨는 평소 활달하고 여행, 캠핑, 사진 촬영을 좋아했고, 결혼할 예정이었던 K씨와 부산에서 생활하기 위해 주택을 임차했다」 며 「그런 사실을 추가로 고려하면 A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임용수 변호사의 케이스메모


A씨가 가입한 여행보험은 국내 여행 도중에 입은 상해의 직접결과로써(질병으로 인한 사망은 제외합니다) 사망하거나 후유장해 상태가 됐을 때 보험금을 지급하는 보험입니다. 여기서 '국내여행 도중'이란 '국내 거주자가 여행을 목적으로 주거지를 출발해 여행을 마치고 주거지에 도착할 때까지' 또는 '국외 거주자가 여행을 목적으로 국내외 공항이나 부두에 도착해 여행을 마치고 출국을 위해 항공기가 선박에 탑승하기 직전까지'를 말합니다. 이 판결에서 문제가 된 A씨 사고는 포항 여행을 목적으로 거주지인 대구를 출발해 포항을 여행하던 중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국내 여행 도중'에 발생한 보험사고임은 다툼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포항 여행을 하면서 여행보험에 가입했는데, 주거지를 떠난 상태에서 보험사고를 당했더라도 그것이 포항 여행이나 이와 직접, 간접으로 관련된 목적으로 주거지를 떠나게 된 것이 아니라면 보험계약에서 정한 보험사고에 해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보험사고는 '한정성(특정성)'을 그 요건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즉 보험사고의 범위는 보험계약 체결 시에 정한 여행 목적으로 주거지를 출발해 발생한 사고로 한정됩니다.


이 같은 유형의 보험사고와 관련해 소송상 다툼이 자주 발생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상해가 피보험자의 실수로 다친 손상인지 고의로 다친 손상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이용 가능한 정보가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상해 사고의 요건인 '사고의 우연성' 여부에 관한 다툼이 있는 경우, 외형적, 유형적으로 볼 때 추락이나 익사에 의한 것이고 사고 현장 정황상 어느 누구든지 추락할 가능성 있다는 사실만 인정된다면(실수로 추락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면) 일단 우연한 사고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보험금 지급 책임을 면하려는 보험사는 그 사고가 피보험자의 고의에 의해 발생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합니다. 이번 사건 항소심의 경우 추가로 인정된 사실들에 비춰 볼 때 보험 가입자 측의 방어 전략은 매우 돋보였던 반면, 삼성화재의 공격력은 조금 미진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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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수준 높고 좋은 글
  • 최초 등록일: 2020년 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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