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 직업변경 통지 안해도 약관 설명 없었다면 보험 해지 안돼

쇠파이프 절단 작업


[ 글 : 임용수 변호사 ]


보험사가 상해보험계약을 체결할 때 보험 가입자에게 사고를 당할 위험이 큰 직업으로 변경할 경우 보험사에 변경 내용을 반드시 알려야 한다는 약관을 설명하지 않았더라도, 이는 설명의무 대상이 아니므로 보험사는 가입자에게 직업 변경에 따른 보험료율을 적용해 보험금을 지급해도 된다는 판결이 나왔다.

보험전문 임용수 변호사가 판결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고, 진진한 해설과 법률 조언을 덧붙인다. 보험소송 의뢰를 원하거나 보험 법률상담을 원하는 분들은 전화를 통해 방문 상담 일시를 먼저 정한 후 '위치와 연락'에 열거된 자료 중 가지고 계신 모든 관련 자료를 지참하고 방문하기 바란다.

백 모 씨1)는 2008년 10월과 2010년 총액 1억6000만 원을 보장하는 삼성화재해상보험()의 상해보험에 가입했다. 그녀는 보험계약 당시 직업을 '주부'로 알렸고 구체적으로 하는 일 항목에는 '주부로서 가끔 회사 경리업무를 담당한다'고 기재했다.

쇠파이프 절단 작업 중 쇠파이프에 맞는 사고

5년이 지난 뒤 A 씨는 남편 B 씨가 일하는 기계 제작 및 부품 가공 업체에 청소(주업무)와 전화 수신, 고철 수거, 현장보조 등의 업무를 하는 조건으로 구두 계약을 체결한 뒤 근무했다. 가끔 남편의 쇠파이프 절단 작업을 도와주기도 했다. 회사에서 일한 지 8일째 되던 날 A 씨는 남편을 도와 쇠파이프 절단 작업을 하던 중 쇠파이프에 양쪽 눈 사이를 맞아 그 자리에서 두부 손상에 의한 뇌 조직 파열로 숨졌다. 


유족인 남편 B 씨와 자녀 2명이 보험금을 청구했으나 삼성화재는 "A 씨가 보험계약 당시 주부에서 사고 발생 당시에는 상해 위험이 큰 금속공작기 조작원으로 직업을 변경했음에도 이를 알리지 않았다"며 "약관에 따라 '직업이 변경되기 전에 적용된 보험료율'의 '직업이 변경된 후에 적용해야 할 보험료율'에 따라 비례적으로 삭감된 보험금을 지급하겠다"고 주장했다.

약관에는 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계약을 맺은 후 직업 또는 직무를 변경할 경우 이를 지체 없이 서면으로 보험사에 알려야 하고, 이 같은 알릴 의무를 위반한 경우 보험사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었다.

유족은 "보험계약상 계약 후 알릴 의무로서의 직업 변경 통지의무는 약관 설명의무 대상인데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며 소송을 냈다.


부산지법 제7민사부(재판장 성금석 부장판사)는 최근 유족이 삼성화재를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 소송에서 "삼성화재는 유족에게 금속공작기 조작원 보험료율을 적용한 보험금 4170여만 원만 지급하면 된다"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2)

재판부는 먼저 「A 씨가 보험설계사에게 가끔 회사의 경리 업무를 보기도 한다고 알렸지만, 그것만으로는 계약 후 알릴 의무를 부담하는 A 씨가 삼성화재 또는 삼성화재를 대리해 통지의 수령 권한이 있는 자에게 서면에 의해 계약 후 알릴 의무를 이행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보험계약 청약서상 '직업이 변경된 경우 반드시 보험사에 알려야 하며, 구두로 알린 것은 효력이 없고 서면에 작성하고 서명해야 한다'고 기재돼 있다」며 「A 씨가 보험계약 당시 보험설계사로부터 향후 직업 변경 시 변경 사실을 통지해 보험료를 조정해야 한다는 약관 내용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지를 받은 것은 아니더라도, 직업 변경 시 계약 후 알릴 의무는 별도의 설명 없이도 보험계약자 및 피보험자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사항이고 나아가 약관 중 계약 후 알릴 의무에 관한 규정들은 상법에 규정된  것을 부연하는 정도에 불과하므로, 보험사가 별도로 약관 설명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 임용수 변호사의 케이스메모 
]


최근 선고된 하급심 판례 중에도 이 판결처럼 직업변경 통지의무에 관한 약관이 설명의무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판시한 것이 있으나, 판례는 대체로 설명의무의 대상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대법원은 계약자가 
대학생 아들을 피보험자로 하는 종합보험에 가입했는데, 대학을 졸업한 뒤 방송 장비 대여업에 뛰어들었던 아들이 방송 장비 등을 실은 봉고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운행하던 중 교통사고로 사망했던 사안에서 통지의무에 관한 약관 조항이 설명의무의 대상이 된다고 판시한 적이 있다.3) 그 사안에서 2심 법원은 "계약 후 알릴 의무 위반을 이유로 보험계약을 해지한 것이 적법한 이상 보험사 조치의 부당함을 전제로 한 유족 주장은 이유 없다"며 보험사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대법원은 통지의무에 관한 약관 조항은 보험료율의 체계 및 보험청약서상 기재 사항의 변동 사항에 관한 것으로서 보험사가 설명해야 하는 보험계약의 중요한 내용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이고, 또 상법 제652조 제1항 및 제653조가 규정한 '사고 발생의 위험이 현저하게 변경 또는 증가된' 경우에 해당하는 사유들을 개별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므로 상법 제652조 제1항이나 제653조의 규정을 단순히 되풀이하거나 부연한 정도의 조항이라고 할 수 없다는 이유로 보험사가 이 약관 조항을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설명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그 뒤에 나온 같은 취지의 하급심 판례로는, 피보험자가 골프장 잔디 보수 업무를 위해 승합차에 탑승, 출근 중 교차로에서 다른 차량에 의해 승합차의 옆 부분을 들이받힌 사고가 발생해 뇌출혈 등으로 사망한 사건에서 『'피보험자가 직업을 변경한 경우' 보험사에게 이를 통지해야 한다는 규정이 상법의 규정으로부터 당연히 예상되는 내용이거나 상법 규정의 내용을 부연한 정도에 불과하다고 볼 수는 없고, 오히려 상법이 정하는 통지의무의 내용을 확대해 규정한 것으로(보험계약의 내용에 비춰 피보험자의 직업 변경이 곧 사고 발생의 위험을 '현저히' 변경 또는 증가시키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별도의 설명의무가 인정되는 조항이라고 판시한 2심 판결이 있다. 


2018년 3월 선고된 서울중앙지법 항소심 판결도 보험계약 당시 대학생이었던 피보험자가 사고 발생 당시에 생산관리직으로 직업이 변경됐던 사안에서 직업변경 통지의무 조항이 설명의무의 대상이 된다고 판시한 바 있다.

2019년 11월 선고된 인천지법 판결은 보험계약 당시 고등학생(직업급수 1급)이었다가 생산직 근로자(직업급수 3급)로 직업 변경된 피보험자가 근로 작업 중 기계에 복부를 눌리는 사고를 당해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치료를 받던 중 조영제를 투여하는 CT 촬영 과정에서 아나팔락시스성 쇼크 등의 원인으로 사망했던 사안에서 보험계약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피보험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약관의 내용을 잘 알고 있었다거나 별도의 설명을 듣지 않고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고 볼만한 사정이나 증거가 없고, 따라서 보험사는 약관의 내용을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설명할 의무가 있었다고 판시했다.4)

동일한 보험 법리가 적용되는 유사한 사건들임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판결들이 엇갈리는 이유는 판사의 전문 지식이나 경험, 배경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보험법리를 알고 싶은 분들은 임용수 변호사의 저서인 『보험법』에서 해당 부분을 찾아보기 바란다. 해당 부분은 현재 기준으로 보험법 제3판에 포스팅돼 있다. 

 계속 업데이트 중...
THE 수준 높고 좋은 글
  • 최초 등록일: 2018년 5월 31일
  • 1차 수정일: 2020년 1월 26일 (재등록, 새글 및 판결 추가)

1) 호칭의 편의상 피보험자에 대해 원고들의 성 씨를 사용한다.
2) 부산지방법원 2014. 4. 18. 선고 2013가합9645 판결.

3) 대법원 2014. 7. 24. 선고 2013다217108 판결.
4) 이 판결의 경우, 보험계약자가 '보험모집자로부터 상품설명서를 교부 받고 설명을 들었습니다.'라고 기재된 상품설명서 수령 및 교부 확인서의 보험계약자 확인란과 '보험 상품에 대해 설명을 듣고 보험약관과 청약서 부본을 전달받았고, 청약사항에 이의가 없음을 확인하며, 휴면보험금에 대한 안내 및 설명을 받았습니다'라고 기재된 청약서 자필서명란에 각각 자필 서명한 점이 인정된다는 사실만으로는, 보험사가 보험 가입자에게 직업변경 통지의무에 관한 약관 조항에 대해 구체적이고 상세한 설명의무를 다했음을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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