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보험계약법의 개념
1. 보험법의 의의
보험법에는 넓은 의미의 보험법과 좁은 의미의 보험법이 있다. 넓은 의미로는 보험에 관한 모든 법규를 말하는데, 이에는 보험공법과 보험사법이 있다. 보험공법이란 보험에 관한 모든 공법적 법규로서 보험업감독법, 공보험에 관한 법 등이 있다. 보험업감독법에는 보험업법이 있고, 공보험에 관한 법에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무역보험법, 국민건강보험법 등이 있다. 보험사법이란 보험에 관한 모든 사법적 법규로서, 이것은 보험기업조직법과 보험기업활동법(보험계약법)으로 나뉜다. 보험기업조직법에 관한 법규는 상법의 회사법과 보험업법에 규정되어 있고, 보험기업활동법에 관한 법규는 주로 상법 제4편에 규정되어 있다.1) 일반적으로 좁은 의미에 있어서의 보험법이라고 할 때에는 보험계약법을 지칭한다.
2. 보험계약법의 의의
가. 실질적 의의
실질적 의의의 보험계약법이란 사보험(특히 영리보험)에서의 보험관계를 규율하는 법을 말한다. 이것은 사회보험에 관한 것을 제외하고 사법적인 보험관계를 규율하는 것이나, 많은 부문에서 공법적인 요소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두 가지 성격을 겸하고 있다.2)
나. 형식적 의의
형식적 의의의 보험계약법이란 우리나라 상법전 「제4편 보험」에 관한 규정을 말한다. 이것을 좁은 의미의 보험법이라고도 한다.
Ⅱ. 보험계약법의 특성
좁은 의미의 보험법인 보험계약법도 상행위법에 속하지만(상법 제46조 제17호), 보험제도의 특수성으로 인하여 다른 상행위법과는 구별되는 여러 가지 특성이 있다. 이를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기술성
보험제도는 동종의 위험에 놓여 있는 위험단체가 대수의 법칙에 의하여 산출된 보험료를 내어 보험기금을 마련하고, 우연한 사고를 당한 사람에게 보험금을 지급함으로써 위험을 분산하는 기술적인 제도이다.
이처럼 수리적 계산에 근거한 기술적인 특성 때문에 다른 거래법에서는 볼 수 없는 고지의무제도(상법 제651조), 위험변경증가의 통지의무제도(상법 제652조), 보험료불가분의 원칙 등이 적용된다.
2. 단체성
영리보험에 있어서 보험계약은 법적으로는 보험자와 보험계약자 사이의 낙성·불요식의 채권계약이지만, 경제적 제도 측면에서는 동일한 위험 밑에 놓여있는 많은 사람이 위험단체를 구성하여 그 중의 어떤 사람에게 위험이 발생한 경우에 그 손실을 구성원이 공동하여 충족시킨다는 이른바 위험단체적 성질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보험계약관계는 위험 충족의 관계에 있어서는 서로 관련성을 가진다는 전제에서 그 법률적 성격을 관찰하여야 한다.3) 보험계약의 단체성을 나타낸 대표적인 예로는 보험계약자 평등대우의 원칙,4) 보험계약의 포괄적 이전5)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조직법적 원칙에 의하여 채권계약의 효력을 지나치게 구속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으므로 보험제도에 대한 위험단체성의 고려는 보험업의 감독 등 보험공법에 맡기는 것이 타당하다는 견해6)가 있다.
3. 공공성·사회성
현대사회에서 가계든 기업이든 보험제도를 이용하지 않고서는 안정된 경제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비록 보험의 운영주체인 보험업자가 사기업이라고 하더라도 보험은 공공성·사회성을 띨 수밖에 없다.
상법은 불이익변경금지원칙(상법 제663조)을 규정하여 보험계약법의 상대적 강행법성을 선언하고, 책임보험에서 제3자의 직접청구권(상법 제724조 제2항)을 인정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보험업법도 보험업의 허가를 받아야만 이를 경영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보험업법 제4조 내지 제7조), 보험약관에 대한 행정적 감독을 인정하고 있다.
4. 선의성·윤리성
보험계약은 장래의 불확실한 보험사고 발생 여부에 따라 보험자의 책임이 결정되는 사행계약으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 따라서 보험계약이 투기 또는 도박 등의 목적으로 악용될 때에는 도덕적 위험(moral hazard)이 생길 수 있다.
만일 보험계약 체결 당시에 보험사고가 이미 발생한 경우라면7) 이는 보험계약의 선의성과 윤리성에 반할 뿐만 아니라 보험집단 구성원 사이에 위험의 동질성에 반하는 것으로 그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상법은 계약당사자의 선의성과 윤리성에 바탕을 두고 건전한 보험을 보호하기 위하여 여러 개의 규정을 두고 있다. 보험계약자 측의 고의로 인한 보험사고의 경우 보험자의 면책(상법 제659조), 보험계약자 측의 고지의무(상법 제651조) 및 위험변경증가의 통지의무(상법 제652조), 사기로 인한 초과보험의 무효(상법 제669조 제4항), 손해방지의무(상법 제680조), 피보험이익의 적법성의 원칙 등이 그 예이다.
5. 상대적 강행법성
보험계약법은 사법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기는 하나, 앞서 본 바와 같이 기술성을 띠고 공공성·사회성이 강하기 때문에 계약자유의 원칙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그리하여 보험업법은 보험회사의 자격을 제한하고(보험업법 제4조 내지 9조), 원칙적으로 「누구든지 보험회사가 아닌 자와 보험계약을 체결하거나 중개 또는 대리하지 못한다」는 규정(동법 제3조)을 두고 있다.
상법 제663조 본문에서도 「이 편의 규정은 당사자 간의 특약으로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나 보험수익자의 불이익으로 변경하지 못한다」고 규정함으로써 보험계약법의 상대적 강행법성(반면보호적 강행법규성)을 선언하고 있다. 따라서 당사자 사이에 특약이 있다거나 금융위원회의 허가를 받은 약관이 있다 하더라도 이 규정에 위반하는 계약 내용은 무효이다.
그러나 보험계약자가 보험자와 대등한 계약 교섭력을 갖고 있거나 상당한 재력을 갖추었기 때문에 보험계약자의 이익 보호를 위한 법의 후견적 배려가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는 강행법성이 배제되고 계약자유의 원칙이 그대로 인정된다. 이에 따라 상법 제663조 단서는 「재보험 및 해상보험 기타 이와 유사한 보험의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규정함으로써 재보험이나 해상보험, 항공보험, 수출보험, 원자력보험 등과 같이 기업보험적인 성격을 지닌 보험에 관하여는 보험계약자 등의 불이익변경금지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8)
보험법 저자🔹임용수 변호사
1) 동지: 정찬형, 상법강의(하), 2005(다음 면부터 '정찬형'이라고 한다), 490면.
2) 동지: 양승규, 52면; 정희철, 상법학(하), 1990(다음 면부터 '정희철'이라고 한다), 347면.)
3) 대법원 1966. 10. 21. 선고 66다1458 판결.
4) 보험업법 제98조[특별이익의 제공 금지] 참조.
5) 동지: 박세민, 보험법, 2011(다음 면부터 '박세민'이라고 한다), 34면.
6) 최기원, 34면.
7) 대법원 2010. 12. 9. 선고 2010다66835 판결은 상법 제644조의 관점에서 「상법 제644조는 보험계약 당시 보험사고가 이미 발생한 때에 그 계약을 무효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설사 시간의 경과에 따라 보험사고의 발생이 필연적으로 예견된다고 하더라도 보험계약 체결 당시 이미 보험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이상 상법 제644조를 적용하여 보험계약을 무효로 할 것은 아니다」라며 피보험자가 보험계약 체결 이전에 근긴장성 근이양증 진단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보험사고(사망 또는 제1급 장해 발생)가 보험계약 체결 이전에 발생하지 않은 이상 보험계약이 무효라고 할 수 없다고 판시하고 있다. 그러나 상법 제644조에 의하여 무효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보험계약 체결 당시 시간의 경과에 따라 보험사고의 발생이 필연적으로 예견되는 경우임에도 보험금을 지급받을 목적으로 이를 숨기고 보험계약을 체결하였다면 법률행위의 중심 목적인 권리의무의 내용이 사회적 타당성을 결여한 것으로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하여 무효라고 보야야 한다(민법 제103조).
8) 대법원은 수산업협동조합중앙회가 실시하는 어선공제계약이 상법 제663조 단서가 적용되는 해상보험인지 여부와 관련하여, 어선공제계약이 해상보험에 해당한다는 전제 하에 상법 제663조 단서가 적용된다고 판단하거나(1995. 9. 29. 선고 93다53078 판결), 해상보험에 유사한 것임을 인정하면서도 소형 어선을 소유한 영세 어민이 주된 가입 대상자로서 계약 교섭력이 대등한 기업보험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상법 제663조 단서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1996. 12. 20. 선고 96다23818 판결) 등 상반된 판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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