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의무 위반의 효과



1. 입법주의

고지의무 위반의 효과에 관하여는 크게 세 가지 입법주의가 있다. ① 보험계약을 당연히 무효로 하는 무효주의(프랑스상법), ② 보험자에게 계약 해지권을 인정하는 해지주의(독일보험계약법, 스위스보험계약법), ③ 고의에 의한 고지의무 위반의 경우는 계약을 무효로 하고, 고의의 증명이 없는 고지의무 위반의 경우는 보험료의 증액을 청구할 수 있게 하는 절충주의(프랑스보험법)가 그것이다. 우리나라 상법은 고지의무 위반의 효과에 관하여 해지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2. 해지권의 발생


고지의무를 위반한 사실만으로 당연히 보험계약 자체가 사회적 상당성을 일탈하여 무효로 된다고 볼 수는 없고, 단지 보험자에게 계약 해지권이 발생할 뿐이다.

고지의무 위반이 있으면 보험자는 보험사고의 전후를 불문하고 일방적인 의사표시만으로 보험계약을 해지할 수 있고(상법 제651조), 그에 따라 보험금지급책임을 면한다.165) 보험자의 계약 해지권은 일종의 형성권에 속한다.

보험계약자의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한 해지의 의사표시는 보험계약의 상대방 당사자인 보험계약자 또는 그 대리인에게 해야 한다. 보험계약자가 사망한 때는 그의 상속인(또는 그들의 대리인)에게 해야 하고, 상속인이 없는 때는 그 재산관리인에게 해야 한다. 피보험자나 보험수익자는 해지의 상대방이 아니므로 그들에 대한 해지의 의사표시는 효력이 없다.

판례도 생명보험에 있어서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한 해지의 경우에는 계약의 상대방 당사자인 보험계약자나 그의 상속인(또는 그들의 대리인)에 대하여 해지의 의사표시를 해야 하고, 타인을 위한 보험에 있어서도 보험금 수익자에게 해지의 의사표시를 하는 것은 특별한 사정(보험약관상의 별도 기재 등)이 없는 한 효력이 없다고 판시하고 있다.166)


3. 일부 해지의 가부


계약법의 일반원칙상 계약의 일부 해지는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보험계약도 보험의 목적 중 일부에 대한 계약해지 사유가 발생한 경우 계약 전부만을 해지할 수 있고 일부 해지는 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집합보험이나 단체보험 등에 있어서는 보험계약의 일부분을 분리하거나 따로 떼어서는 계약을 성립시키기 어려운 경우가 아니라면 계약의 일부 해지가 가능하다고 풀이한다.

왜냐하면 가령 둘 이상의 피보험자가 존재하는 계약에서 고지의무를 위반한 피보험자 일부에 대해서만 해지권을 행사할 수 있다면, 고지의무 위반이 없는 다른 피보험자들은 별도로 신계약을 체결하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고, 보험자도 계약을 일부라도 유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다수설은 독일 보험계약법을 근거로, 집합보험이나 단체보험에 있어서 보험사고 발생 대상의 일부에 대해서만 고지의무 위반 등의 계약해지 사유가 있는 경우라도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보험자가 그 나머지 부분만으로는 동일한 조건으로 보험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으리라는 사정이 있는 경우에만 보험계약을 전부 해지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167) 

판례도 보험의 목적이 된 여러 개의 물건 가운데 일부에 대해서만 고지의무 위반이 있는 경우에 보험자는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도 동일한 조건으로 그 부분만에 대하여 보험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으리라는 사정이 없는 한 그 고지의무 위반이 있는 물건에 대해서만 보험계약을 해지할 수 있고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보험계약의 효력에 영향이 없다고 판시하고 있다.168) 


4. 해지권의 행사


해지권의 행사 방법은 구두나 서면 또는 전보나 팩시밀리에 의해서도 행사할 수 있고, 묵시적으로도 가능하다.169) 실제에 있어서 해지권의 행사는 약관이 정한 바에 따라 서면으로 하는 것이 보통이다.170)

보험자의 해지권은 보험계약자 등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 행사에 관해서는 조건·기한을 붙이지 못한다.

해지의 의사표시에는 모든 해지 사유를 구체적으로 명시할 필요는 없고 고지의무 위반으로 해지권이 발생했다는 것과 해지권이 행사되었다는 것을 보험계약자가 알 수 있으면 된다는 견해171)도 있으나, 보험계약자 등이 해지의 의사표시를 수령할 당시 그 근거가 된 해지 사유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해지의 의사표시에는 해지 사유(고지의무 위반 사실)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풀이한다.172) 

왜냐하면 해지권의 근거가 되는 해지 사유는 법률의 규정 또는 당사자 사이의 약정에서 정한 사유로 한정되어 있고 해지 사유마다 별개의 해지권이 발생하는데, 해지 사유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은 해지권의 행사를 허용한다면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의 이의 제기권 행사에 지장을 초래하는 등 법적 지위를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어떠한 해지 사유에 의하여 해지의 의사표시를 한 이후 다른 해지 사유에 의한 것으로 전용하는 것도 허용될 수 없다.173) 

보험약관은 계약을 해지할 경우 고지의무 위반 사실뿐만 아니라 고지사항이 중요한 사항에 해당되는 사유 및 계약의 처리 결과를 「반대증거가 있는 경우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라는 문구와 함께 보험계약자에게 서면으로 알리도록 정하고 있다.174)

보험계약 해지의 효력은 그 의사표시가 보험계약자에게 도달한 때 장래에 향해서만 발생한다(민법 제550조). 그러므로 보험자는 이미 수령한 보험료를 반환할 필요가 없고, 해지할 때까지 이미 발생한 보험료를 청구할 수 있다.175)

보험사고의 발생 후에도 보험자는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보험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데, 이때 보험자가 이미 보험금을 지급한 경우에는 그 반환을 청구할 수 있고, 아직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은 경우에는 보험금 지급 책임이 없다(상법 제655조 본문). 즉 상법은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한 계약해지의 효력과 관련하여 보험금의 지급에 관해서는 예외적으로 소급효(제한적 소급효)를 인정하고 있다.

학설 중에는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보험자가 계약의 효력을 부인하는 것은 해지가 아니라 해제라고 하는 것이 논리적이라는 견해176)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계약 성립 당시로 소급하여 보험계약을 무효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입법 목적상 특별히 해지의 시기를 앞당긴 것일 뿐이므로 이를 해제라고 보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 즉 해제는 처음부터 보험계약이 성립하지 않았던 것과 같은 법률효과가 발생함으로써 각 당사자는 그 상대방에 대하여 원상회복의무를 지게 되는 것이나,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한 계약해지의 경우는 보험사고 발생 시까지만 소급효를 인정함으로써 사고 발생 이전의 보험관계는 일단 유효하게 존속하는 것으로 다루는 것이므로 해제와는 구별된다.

상법이 이처럼 보험사고 발생 시까지만 제한적으로 소급효를 인정하는 예외적 규정을 둔 취지는 이미 발생한 보험사고에 대해서는 보험자를 면책시키고, 이미 지급된 보험료는 반환할 의무를 면제함으로써, 고지의무를 위반한 보험계약자를 제재하려는 데 있다.177) 다만 생명보험의 경우에는 보험수익자를 위하여 적립한 금액을 보험계약자에게 반환해야 한다(상법 제736조 제1항 본문). 이를 반영하여 생명보험약관에서는 계약을 해지했을 때는 해지환급금을 지급하고, 보장을 제한했을 때는 보험료, 보험가입금액 등이 조정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178)


5. 해지권 등의 제한 여부


(다음 회에 자세하게 다루기로 한다.)


보험법 저자🔸임용수 변호사


165) 보험사고 발생 후 계약을 해지하는 때는 보험자는 보험금액을 지급할 책임이 없고, 이미 지급한 보험금액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상법 제655조).
166) 대법원 1989. 2. 14. 선고 87다카2973 판결.
167) 양승규, 278-279면; 김성태, 510면; 최기원, 377-378면; 손주찬, 532-533면.
168) 대법원 1999. 4. 23. 선고 99다8599 판결.
금융감독원도 피보험자를 2인 이상으로 하는 보험계약의 경우 보험료와 보험금액이 따로 책정되어 있다면 각각의 피보험자의 계약은 분리된다고 볼 수 있으므로 가령 피보험자 A에게 발생한 사유로 인하여 다른 피보험자를 포함한 보험계약 전체를 해지할 수는 없다면서 보험회사에게 계약을 일부 해지하라고 결정한 적이 있다.
169) 최기원, 182면.
170) 약관에 「계약을 해지하거나 보장을 제한할 경우에는 계약 전 알릴 의무 위반사실뿐만 아니라 계약 전 알릴 의무 사항이 중요한 사항에 해당하는 사유 및 계약의 처리결과를 "반대증거가 있는 경우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라는 문구와 함께 계약자에게 서면으로 알려 드린다」라는 규정을 두고 있다.
이처럼 계약을 해지할 때 보험계약자에게 서면으로 알려준다는 합의(약관규정)도 유효하나, 서면에 의한 계약해지만 유효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동지: 서울고등법원 2004. 9. 16. 선고 2004나13207 판결).
171) 최기원, 182면.
172) 동지: 대법원 2004. 12. 10. 선고 2004다55377, 55384 판결(하급심: 부산고등법원 2004. 8. 26. 선고 2004나1455,1462 판결) 참조.
173) 동지: 대법원 2004. 12. 10. 선고 2004다55377, 55384 판결(하급심: 부산고등법원 2004. 8. 26. 선고 2004나1455,1462 판결) 참조.
174) 생명보험표준약관 참조.
175) 대법원 2000. 1. 28. 선고 99다50712 판결은 「보험계약의 해지권은 형성권이고, 해지권 행사기간은 제척기간이며, 해지권은 재판상이든 재판외이든 그 기간 내에 행사하면 되는 것이나 해지의 의사표시는 민법의 일반원칙에 따라 보험계약자 또는 그의 대리인에 대한 일방적 의사표시에 의하며, 그 의사표시의 효력은 상대방에게 도달한 때 발생하므로 해지권자가 해지의 의사표시를 담은 소장 부본을 피고에게 송달함으로써 해지권을 재판상 행사하는 경우에는 그 소장 부본이 피고에게 도달할 때 비로소 해지권 행사의 효력이 발생한다 할 것이어서, 해지의 의사표시가 담긴 소장 부본이 제척기간 내에 피고에게 송달되어야만 해지권자가 제척기간 내에 적법하게 해지권을 행사했다고 할 것이고, 그 소장이 제척기간 내에 법원에 접수되었다고 하여 달리 볼 것은 아니다」고 판시한 바 있다.
176) 손주찬, 530-531면.
177) 동지: 김성태, 332-333면.
178) 생명보험표준약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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