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객관적 요건
고지의무 위반이 성립되려면 '중요한 사항'에 관한 불고지 또는 부실고지가 있어야 한다. 상법은 '중요한 사항'이라고만 규정하고 있을 뿐 무엇이 중요한 사항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중요한 사항은 보험자가 계약의 인수 여부 및 보험료액을 판단하는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실을 말한다. 그것에는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직접 피보험자의 신체 또는 보험의 목적에 존재하는 절대적 위험 사항과 피보험자 또는 보험의 목적의 환경에 존재하는 관계적 위험 사항이 있으며, 이러한 사항의 존재를 추단케 하는 사항 등이 있다. 중요한 사항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하며, 그에 관한 불고지 또는 부실고지의 존부는 보험계약 성립 당시를 기준으로 한다.
판례는 상해보험의 경우에 다른 보험회사와의 보험계약 체결 사실은 보험계약자가 고지 및 통지해야 할 중요한 사항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151) 그러나 보험표준약관은 보험회사가 다른 보험계약 체결 사실에 대한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하거나 보험금지급을 거절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152)
이때 불고지란 「중요한 사항인 줄 알면서 이를 알리지 않는 것」을 말한다. 즉 질문표의 기재 사항에 대하여 아무런 기재를 하지 않은 경우와 같이 중요한 사항에 대하여 묵비한 것을 말한다. 그리고 부실고지란 「중요한 사항에 관하여 사실과 다르게 말하는 것」, 즉 거짓 진술을 의미한다. 따라서 고지한 사항이 비록 세부적인 면에서는 사실과 다르더라도, 전체적으로 진실과 부합되어 보험자가 사고 발생의 위험도를 측정하는데 지장을 초래할 정도에 이르지 않을 정도라면 부실고지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질문표의 기재 사항에 사실과 다른 기재를 한 경우에는 부실고지가 된다.153)
보험자가 고지의무의 대상이 되는 사항에 관하여 질문표에서 질문한 사항은 일단 중요한 사항으로 추정되므로, 질문표의 기재 사항에 아무런 기재도 하지 않은 경우에는 불고지가 된다는 점은 앞에서 본 바와 같다. 그러나 질문표에 기재되지 않은 사항에 관해서는 그것이 중요한 사항이란 점과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가 그 중요성을 알았다는 점에 대한 보험자의 입증이 없는 한 이를 원칙적으로 고지의무 위반이라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보험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에게 어떤 사항이 위험 측정에 영향을 미치는 고지해야 할 중요한 사실인지 여부를 스스로 판단하여 고지할 것을 요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질문표에 기재된 사항이라고 하더라도 건강진단 결과 정상 판정을 받았던 경우에는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가 고의로 불고지(악의의 묵비)한 경우154)가 아니면 이를 고지의무 위반으로 다룰 수는 없다고 해석된다.
2. 주관적 요건
고지의무 위반이 되려면 중요한 사항을 알면서 알리지 않은 것(불고지) 또는 사실과 다르게 말한 것(부실고지)이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것이어야 한다.
보험설계사 등이 기재행위를 대행(대필)155)하면서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중요한 사항의 불고지 또는 부실고지를 한 경우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정된다.156)
여기서 고의라 함은 「고지의 대상인 사실을 알고 또 그것이 고지해야 할 중요한 사항에 해당하는 것까지 알면서 고지하지 않거나 부실하게 고지하는 것」을 말하며, 반드시 사기와 같은 적극적 기망 의사를 요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보험계약자가 직업을 사실과 다르게 '광부'가 아닌 '상업'으로 고지한 경우,157) 보험계약자가 보험계약의 중요한 사항에 관하여 대리인으로 하여금 질문표에 부실 또는 불완전한 기재를 하게 한 경우, 보험계약자가 생명보험설계사의 권유에 따라 심장병을 앓았다는 사실을 보험의에게 고지하지 않은 경우 등은 고의로 인하여 중요한 사실을 고지하지 않은 경우에 해당한다.
중대한 과실이란 「고지해야 할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현저한 부주의로 인하여 그 사실의 중요성 판단을 잘못하거나 그 사실이 고지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 것」을 말한다.158) 거래상 간단한 주의만 기울였더라도 제대로 고지할 수 있었을 것을 그 주의를 게을리 하여 불고지 또는 부실고지를 한 것은 중대한 과실이 된다. 가령 망각에 의한 불고지나 자각의 기왕증 불고지는 중과실이 된다. 또한 자궁내막염과 같은 중대한 질병에 걸려 치료를 받은 이상 의사로부터 그 병명을 들은 사실이 없다고 하더라도 고의나 중과실이 있는 것으로 인정된다.
그러나 의사로부터 가벼운 위궤양이나 위염과 같은 경미한 질병의 병명을 듣지 못해 불고지한 경우159) 또는 자각증이 없는 질병의 기왕증을 불고지한 경우, 보험설계사가 무진단으로 보험을 가입하는 경우에는 고지사항을 기재하는 것 자체가 별 의미가 없다고 하면서 고지사항의 각 항에 대하여 해당 사항이 없는 것으로 일괄적으로 표기한 경우160)에는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에게 고의 또는 중과실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보험회사가 질문표 등의 서면으로 질문한 사항은 고지의무자의 주의를 환기했으므로 그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을 쉽게 입증할 수 있을 것이다.161) 특히 피보험자의 질병 또는 사망을 보험사고로 정한 보험계약의 경우 주요 질병 또는 그 소인의 보유 여부에 관한 질문사항은 질문표에 의하여 그 사항이 있는지 여부를 직접 확인한 것만으로도 그에 대하여 보험자가 설명한 것이 되므로,162)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에게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있는 것으로 인정된다. 따라서 보험계약자가 보험청약서상의 질문표에 불고지 또는 부실고지를 했다면 일단은 고의 또는 중과실로 인한 것에 해당한다.
판례도 보험자의 질문표에 기재된 질문사항은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보험계약에 있어서의 중요한 사항에 해당한다고 추정할 것이므로 그 질문표에 사실과 다른 기재를 하였다면 고지의무 위반이 된다고 보고 있다.163) 여기서 다른 특별한 사정이 있었던 경우로는, 건강진단 결과 정상 소견을 보인 경우164)나 보험계약 체결 전에 경미한 질병(예: 위염)으로 일시적으로 치료받은 사실이 있었던 경우 또는 경미한 질병이 완치되었다는 의사의 진단이 있었던 경우 등을 들 수 있다.
3. 입증책임
고지의무 위반 사실을 이유로 보험계약을 해지하려면 보험자가 그러한 사실이 보험계약자 등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생긴 것임을 입증해야 한다. 즉 고지의무 위반에서의 주관적 요건과 객관적 요건에 관한 입증책임은 계약을 해지하려는 보험자에게 있다.
보험법 저자🔸임용수 변호사
151) 대법원 2000. 1. 5. 선고 2000다31847 판결.
152) 생명보험표준약관 및 질병․상해보험표준약관 참조. 「회사는 다른 보험가입내역에 대한 계약 전 알릴 의무 위반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하거나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지 않습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153) 동지: 정찬형, 544면; 대법원 1992. 10. 23. 선고 92다28259 판결. 동 판결은 보험계약자가 보험자와의 사이에 상해보험을 체결함에 있어, 피보험자인 자신의 직업이 접대부이면서도 이를 가사(주부)라고 허위 고지한 것은 중요한 사항의 고지의무를 위반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154) 고의의 불고지 또는 악의의 묵비란 질문표에 기재되지 않은 고지사항에 대하여 위험측정에 영향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 고의로 감춘 경우를 말한다.
155) 여기서 대필(代筆)이란 보험설계사가 보험청약서 등에서 질문한 사항에 대하여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를 대신하여 글씨를 기재하는 것을 말하므로, 실무상 흔히 문제되는 보험설계사가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의 고지의무 사항을 임의로 기재한 경우'와는 구별해야 한다. 자세한 설명은 7. 고지의무 위반의 효과⇒나. 해지권의 제한⇒(3) 보험자의 귀책사유 참조.
156) 동지: 최기원, 174면.
157) 서울중앙지방법원 1992. 4. 23. 선고 91가단636928 판결.
158) 대법원 1996. 12. 23. 선고 96다27971 판결.
159) 동지: 김성태, 217면은 「가벼운 신경쇠약, 편도선염, 완치된 성병 등 보험 가입 당시의 건강도 판단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경미한 질병은 중요한 사항에 해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160) 대법원 2007. 6. 28. 선고 2006다69837(본소), 2006다69844(반소) 판결. 동 판결은 보험가입자가 보험설계사에게 계약 전 알릴 의무 사항 중 일부 사항을 알리지 않았고 직업을 건물청소부가 아닌 가정주부라고 허위로 알렸다 하더라도, 보험설계사가 구비해온 '계약 전 알릴 의무'에 이미 직업이 가정주부로 인쇄되어 있었고, 보험가입자는 시력이 좋지 않아 보험설계사가 알려주는 사항에 대해서만 주로 대답을 했는데, 보험설계사에게 자신의 기왕병력을 알린 보험가입자가 위와 같은 일부 사항만을 숨기거나 허위로 알린 것으로는 보이지 않으며, 보험설계사가 무진단으로 보험을 가입하는 경우에는 '계약 전 알릴 의무'를 기재하는 것 자체가 별 의미가 없다고 하면서 '계약 전 알릴 의무'의 각 항에 대하여 해당 사항이 없는 것으로 일괄적으로 표기했던 점 등을 고려하여 보험 가입자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불고지하거나 불실의 고지를 했다고는 볼 수 없다고 판시하고 있다.
161) 동지: 정진세, 판례연습 보험법, 305-306면.
162) 대법원 2010. 11. 25. 선고 2010다39192 판결.
163) 대법원 1969. 2. 18. 선고 68다2082 판결; 대법원 2001. 1. 5. 선고 2000다31847 판결.
164) 동지: 제주지방법원 2005. 4. 21. 선고 2004가합1031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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