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임용수 보험전문변호사
가입자가 직업 또는 직무를 속이고 상해보험을 든 사실을 보험사가 뒤늦게 알았다고 해도 상법상 '통지의무 위반' 또는 약관상 '상해보험계약 후 알릴 의무 위반'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보험계약을 맺을 때 중요 사항을 사실대로 알려야 하는 '고지의무 위반'일 수는 있지만, 보험기간 중 중요 사항을 변경했을 때 알려야 하는 '통지의무 위반'의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취지다. 보험전문 보험소송닷컴의 임용수 변호사가 판결을 [단독] 소식으로 알리고 해설한다.
유족은 2016년 피보험자를 김 씨로 하는 상해보험을 케이비손해보험과 맺었다. 이 보험계약은 김 씨가 보험기간 중 상해의 직접결과로 사망하는 경우 일반상해사망 보험금으로 1억4000만 원을 지급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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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 가입 전부터 장지 공사현장에서 인부 감독 업무를 수행하던 김 씨는 2022년 6월 산에서 묘지 합동 작업을 하던 중 콤바인에 짐을 싣고 야산을 올라가다가 콤바인이 전복되는 사고로 콤바인에 깔려 숨졌다.
보험계약 체결 당시 유족은 김 씨의 직업을 '경영지원 사무직 관리자'(직업분류표상 1급)로 알렸다. 실제 직업인 '장례식 매장작업'(직업분류표상 3급)보다 사고 발생 위험이 낮은 직업으로 속인 것이다.
김 씨 사망 후 유족이 일반상해사망에 따른 사망보험금을 청구하자 케이비손해보험은 "보험청약 서류에 기재된 '경영지원 사무직 관리자'와 상이한 직무에 종사한 사실이 확인돼 '상해보험계약 후 알릴 의무'를 위반한 만큼 보험계약을 해지하고 직업급수에 따른 보험료 비례율을 적용해 산정한 보험금을 지급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한 뒤 보험금 6111만여 원만을 지급했다.
이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에서 유족은 "김 씨가 사고 당시 장례식 매장작업을 수행했더라도, 그런 종사 형태가 보험계약 체결 전후로 변동된 적이 없으므로, 장례식 매장작업 종사 사실은 '통지의무' 또는 '계약 후 알릴 의무'의 대상이 아니다"며 "따라서 케이비손해보험은 보험계약을 해지할 수 없고 보험금을 삭감할 수 없으므로, 유족에게 보험계약 중 일반상해사망 보장에 따라 그 보험금 1억4000만 원에서 기지급 보험금을 공제한 나머지 7888만여 원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재판을 맡은 전경세 판사는 「유족 또는 김 씨가 보험계약을 맺은 후 보험사에 장례식 매장작업 직무 수행을 알리지 않은 것이 상법상 통지의무 또는 약관상 상해보험계약 후 알릴 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며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전경세 판사는 「김 씨가 보험계약 당시 이미 장례식 매장작업 직무를 수행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므로, 약관에서 계약 후 알릴 의무의 발생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는 "보험기간 중 직업 또는 직무를 변경한 경우" 또는 상법에서 통지의무의 발생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는 "보험기간 중 사고발생의 위험이 변경 또는 증가된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전경세 판사는 또 「상법 제651조가 보험계약 체결 당시 중요한 사항을 사실대로 고지할 의무를 규정하면서 이를 위반한 경우 보험사의 계약해지권의 행사기간에 대해 "고지의무위반 사실을 안 날로부터 1월 내"라는 시간적 한계 및 이에 추가해 "계약체결일로부터 3년 내"라는 시간적 한계를 두고 있는 반면, 상법 제652조는 보험계약 체결 후의 통지의무를 규정하면서 "통지의무 위반 사실을 안 날로부터 1월 내"라는 시간적 한계만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처럼 상법이 알릴 사유의 발생 시기에 따라 고지의무와 통지의무를 별개의 의무로 구별해서 규정하는 체계를 취하고 있는 이상, 보험계약 체결 당시 고지의무를 위반해 직업 또는 직무에 관한 사항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것이 별도로 보험계약 체결 후의 통지의무 위반을 구성한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케이비손해보험이 상법상 통지의무 위반 또는 약관상 보험계약 후 알릴 의무 위반을 이유로 보험계약을 해지한 것은 효력이 없고, 해지를 전제로 약관 조항에 따라 보험금을 삭감해 지급할 수 없다」며 「케이비손해보험은 유족에게 일반상해사망 보장에 따른 미지급 보험금 7888만여 원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1심 판결에 대해 케이비손해보험이 항소를 제기했으나, 항소심 법원은 이런 1심의 사실인정과 판단에 오류가 없다고 보고 케이비손해보험의 항소를 기각했다.
임용수 보험전문변호사의 케이스메모
상법 제651조는 보험계약 당시에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이하 '보험가입자')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해 중요한 사실을 고지하지 않거나 부실의 고지를 한 때는 보험사는 그 사실을 안 날로부터 1월 내에, 계약을 체결한 날로부터 3년 내에 한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상법 제652조에 의하면, 보험기간 중에 보험가입자가 사고발생의 위험이 현저하게 변경 또는 증가된 사실을 안 때는 지체 없이 보험사에게 통지해야 하고, 보험사는 위험변경증가의 통지를 받은 날로부터 1개월 내에 보험료의 증액을 청구하거나 계약을 해지할 수 있으며, 보험가입자가 그 통지를 해태한 때 역시 보험사는 그 사실을 안 날로부터 1월내에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약관에서는 직업 또는 직무의 변경으로 인한 위험증가와 관련해, 피보험자가 보험기간 중 직업 또는 직무를 변경한 경우 보험가입자로 하여금 지체 없이 보험사에게 통지하도록 하면서,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위험이 증가된 경우 보험사가 통지를 받은 날부터 1개월 내에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규정함과 아울러, 보험가입자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직업 또는 직무 변경 사실을 통지하지 않았을 경우 보험사가 손해의 발생 여부와 관계없이 계약을 해지하고 위험변경 후 요율에 따라 보험금을 삭감해 지급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들을 별도로 두고 해지권의 행사기간을 달리 규율하는 취지나 각 규정의 문언 등에 비춰 보면, 상법 제651조의 고지의무는 중요한 사실이 보험계약 성립 시에 존재하는 경우에 발생하고, 상법 제652조의 통지의무는 보험계약 성립 시에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 이후 보험기간 중에 사고발생의 위험이 새롭게 변경 또는 증가된 경우에 발생한다.
한편 보험가입자가 고지의무를 위반함으로써 보험계약 성립 시 고지된 위험과 보험기간 중 객관적으로 존재하게 된 위험에 차이가 생기게 됐다는 사정만으로는 보험기간 중 사고 발생의 위험이 새롭게 변경 또는 증가됐다고 할 수 없다. 이 경우 보험사는 상법 제651조의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할 수는 있어도 상법 제652조의 통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할 수는 없다. 이는 고지의무 위반에 따른 해지권 행사의 제척기간이 경과해 보험사가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할 수 없게 된 경우에도 마찬가지다.3)
3) 대법원 2024. 6. 27. 선고 2024다219766 판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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