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 상시적 현장 작업 담당 증거 없다면 직업 고지의무 위반 안돼


글 : 임용수 변호사


기계 제조 회사의 부장이 보험계약 체결 당시 직원 관리 및 자재 관리 업무를 주로 담당했고 간헐적으로 사소한 현장 작업에 참여하고 있었다면, 보험계약 체결 당시 기계 제조 회사 관리직으로 업무 내용을 고지했더라도 고지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임용수 변호사(보험전문 변호사)가 전합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3단독 한정훈 판사는 롯데손해보험이 권 모 씨를 상대로 낸 채무 부존재 확인 청구 소송에서 "롯데손해보험의 청구를 기각한다"며 원고패소 판결했습니다. 

2​014년 1월 권 씨의 아내가 홈쇼핑 광고 방송을 보고 롯데손해보험의 상담사와 전화 통화를 연결해 보험계약 체결을 위한 청약 및 승낙이 이뤄졌고, 롯데손해보험의 상담사가 다시 권 씨에게 전화를 걸어와 권 씨의 보험 가입 의사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보험계약이 체결됐습니다.


​당시 권 씨의 아내는 롯데손해보험의 상담사로부터 권 씨의 업무 내용에 관한 질문을 받고 자신의 남편이 기계 제조 회사에 근무하면서 관리 쪽 일을 담당하고 있으며, 직접 일은 거의 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답변했고, 롯데손해보험의 담당자는 그러한 답변만을 기초로 권 씨의 상해 급수를 '2급 기계 공학 엔지니어'라고 평가해 보험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 후 권 씨는 2015년 3월 직장 사업장 내에서 절단용 프라즈마1)로 드럼통을 절단하는 과정에서, 드럼통 안에 있던 유증기가 폭발해 드럼통 뚜껑에 머리를 가격당하는 사고를 당해 후유장해를 입었습니다. 

이에 권 씨가 약관에서 정한 후유장해 보험금을 청구하자, 롯데손해보험은 보험계약 체결 당시 권 씨가 현장 업무에도 참여하고 화물용 차량을 운전한다는 사실 등에 관해 고지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보험계약을 해지했고 권 씨를 상대로 보험금 지급 채무가 없다며 소송을 냈습니다.


한 판사는 「권 씨가 기계 제작 회사의 부장으로 직원 관리 및 자재 관리 업무를 주로 담당했고 간헐적으로 사소한 현장 작업에 참여하고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롯데손해보험은 권 씨 소속 회사가 소규모 기계 제조 회사이고, 권 씨가 플라즈마 절단기를 익숙하게 사용했다는 점에 권 씨가 현장 작업을 상당 부분 담당하고 있었던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나 권 씨가 상시적으로 현장 작업을 담당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한​ 판사는 또  「보험계약 체결 당시 전화 통화로 모든 업무 처리가 이뤄진 것이므로,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 의사 전달의 혼선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롯데손해보험이 자신의 영업 활동의 편의를 위해 그런 형태의 계약 체결 방법을 선택한 이상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불이익도 어느 정도 감수함이 타당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보험계약 청약자가 고지하는 내용에 불명확한 점이 있다면 보다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상담사가 권 씨의 업무 내용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거나 권 씨에 대해 직업과 관련된 추가 평가 자료를 제출하도록 요구하는 등으로 권 씨의 직업과 관련해 정확한 고지의무가 이행되도록 할 수도 있었을 터인데 롯데손해보험이 그 같은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며  권 씨가 보험계약 체결과 관련해 고지의무를 위반했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임용수 변호사의 케이스메모


고​지의무 위반이 되려면 직업 또는 직종 등 중요한 사항에 관한 불고지 또는 부실고지가 있어야 합니다(고지의무 위반의 객관적 요건). 이때의 직업 또는 직종에는 부업 또는 겸업, 계절적으로 종사하는 업무가 포함됩니다. 부업 또는 겸업, 계절적으로 종사하는 업무도 구체적으로 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따라 보험사고 발생 확률에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주유소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피보험자의 경우 단순 '주유원'인 피보험자의 사고 발생의 위험도와 '유류 배달 업무'에 종사하는 피보험자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 사례에서는 부실 고지가 있었는지가 문제됩니다. 부실 고지란 중요한 사항인 줄 알면서 이를 알리지 않는 것 즉 허위 진술을 말합니다. 고지한 사항이 비록 세세한 부분에서는 사실과 다르더라도, 전체적인 부분에서 진실과 부합돼 보험회사가 사고 발생의 위험도를 측정하는데 지장을 초래할 정도에 이르지 않는 경우에는 부실 고지라고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주로 하는 관리 업무 외에 간헐적으로 하는 현장 업무가 지극히 부수적인 업무에 불과한 경우라면, 주로 하는 업무만을 고지한 것을 두고 고지의무 위반으로 평가될 정도의 부실 고지라고 할 수 없습니다.


최근 판결 중에는 실제 직업 및 업무가 일용직 설비배관공(설비배관기술자)이었던 피보험자가 보험계약 체결 당시 보험청약서에 자신의 직업을 "취급하는 업무(구체적으로) : 설비기술"이라고 직접 기재했고, 그로부터 약 1년 6개월 지난 뒤 공사 현장에서 건물 2층 내부 소방 배관 공사를 하기 위해 이동식 크레인으로 고소작업차에 탑승해 이동하던 중, 고소작업차가 이탈하는 바람에 약 7m 아래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해 사망한 사안에서, 고지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한 사례가 있습니다. 

이 사례에서 보험사는 보험계약 체결 당시 실제로는 공사 현장에서 일용직인 '배관설비공'을 근무했는데도 자사나 보험모집인에게는 마치 회사에 계속 고용돼 '전기 관련 설비 기술자'로 근무하는 것처럼 허위 사실을 알림으로써 보험계약상 고지의무를 위반했다고 주장했으나, 담당 판사는 "피보험자가 자신이 취급하는 업무란에 '배관' 대신 '설비'라는 표현을 넣는지 여부가 중요한 사항임을 알았다거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이를 알지 못했다는 점에 관해서는 이를 인정할 뚜렷한 증거가 없고, 또한 피보험자의 근로 형태가 일용직 근로자인지 여부에 따라 그 보험계약 조건이 달라진다고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으며, 질문표상 일용직인지 여부를 구분해 답변하도록 질문한 바도 없으므로, 일용직 근로자인지 여부는 보험계약상 고지의무의 대상인 중요한 사항으로 볼 수 없다"며 고지의무 위반을 전제로 한 해당 보험사의 면책 항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계속 업데이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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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험 전문변호사 = 임용수 변호사
  • 최초 등록일: 2017년 11월 20일
  • 1차 수정일: 2020년 2월 18일 (재등록 및 글 추가) 

1) 정확한 명칭은 플라스마 절단기(plasma cutter, plasma cutting machine)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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