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의무 위반과 민법상 착오·사기와의 관계



1. 학설의 대립

고지의무 위반이 있는 경우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의 사기나 착오가 개재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상법 제651조가 규정하고 있는 보험자의 해지권 이외에 민법의 일반원칙(제109조, 제110조)에 따라 보험계약을 취소하고 보험금지급을 거절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학설이 대립하고 있다.

물론 약관에 사기 행위로 인하여 체결된 보험계약은 무효라는 규정이 있는 경우는 민법을 적용하여 취소할 것도 없이 약관 규정에 의하여 무효가 된다.214) 그러나 그러한 약관 규정이 없는 경우에 만약 상법 규정만 적용된다고 한다면 해지권의 제척기간 경과 등으로 해지권이 제한을 받거나 소멸한 후에는 보험계약을 해지할 수 없게 되지만, 민법 규정도 적용된다고 보면 보험자는 그 제척기간이 경과한 후에도 보험계약을 취소하여 무효로 할 수 있게 된다.

이에 관한 학설의 대립은 민법상의 취소권 행사 기간215)과 상법상 고지의무 위반으로 인한 계약 해지권 행사 기간에 차이가 있고 또한 사기·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의 경우는 고지의무자의 불고지·부실고지 행위와 보험사고 사이의 인과관계 성립 여부에 관계없이 보험자가 면책된다는 점에서 검토 실익이 크다.

(1) 상법단독적용설(민법적용부정설)

고지의무 위반의 효력에 관한 상법의 규정은 보험계약의 선의성, 단체성 및 기술성 등의 특성을 고려하여 소급효를 제한한 것으로 민법에 대한 특칙이므로, 상법만 적용되고 민법의 사기 또는 착오에 관한 규정은 적용될 수 없다는 견해이다. 따라서 상법 제651조의 제척기간이 경과하면 보험자는 민법에 의해 계약을 취소할 수 없다.216) 보험계약자에게 유리한 해석이다.

(2) 중복적용설(상법·민법동시적용설)

상법 제651조의 고지의무 위반에 관한 규정은 민법의 사기 또는 착오에 관한 규정과 근거·요건·효과를 달리하는 것이므로 상법과 민법이 모두 적용된다고 보는 견해이다. 고지의무가 본래 보험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인데, 만일 사기 혹은 착오에 관한 민법 규정의 적용을 배제한다면 보험금을 받을 수 없는 피보험자나 보험수익자가 고지의무제도 때문에 보험금을 받는 수가 생기고, 더욱이 고지의무를 위반한 때는 위반 사항과 사고 발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 경우에만 보험금지급을 거절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보험자에게 현저히 불리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217) 따라서 상법 제651조의 제척기간이 경과된 뒤에도 보험자는 사기 또는 착오를 이유로 보험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 보험자에게 유리한 해석이다.

(3) 절충설(사기·착오구별설)

보험자의 착오가 있는 경우는 제척기간이 경과하면 착오를 이유로 취소할 수 없으나, 고지의무자의 사기가 있는 경우는 제척기간이 경과하더라도 민법 규정에 의해 취소할 수 있다는 견해이다(통설). 이 견해는 고지의무자에게 사기가 있는 경우는 그의 이익을 보호할 필요가 없으나 보험자에게 착오가 있는 경우는 해의(害意)가 없으므로 보험자와 더불어 보험계약자의 이익도 고려하여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218) 이 견해가 타당하다. 사기와 같이 반윤리적 요소가 내재되어 있는 계약에 대해서는 보험보호를 줄 필요가 없으므로, 상법 제651조의 제척기간이 경과한 뒤에도 보험자가 그 계약을 취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보험계약의 선의계약성에 부합된다.219)

생명보험약관은 「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대리 진단, 약물 복용을 수단으로 진단 절차를 통과하거나 진단서 위·변조 또는 청약일 이전에 암 또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의 진단 확정을 받은 후 이를 숨기고 가입하는 등의 뚜렷한 사기 의사에 의하여 계약이 성립되었음을 보험회사가 증명하는 경우에는 보장개시일부터 5년 이내(사기 사실을 안 날부터는 1개월 이내)에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고 정함으로써220) 취소권 행사 기간을 단축하고 있다.221)

계약을 취소하는 경우 사기로 불고지 또는 부실고지를 했다는 사실에 관한 입증책임은 보험자가 진다. 학설 중에는 「구체적인 원인을 입증하지 않더라도 전형적인 경우에 대해서는 생활의 경험상 보험자가 그 진정한 사실을 알았다면 보험계약을 체결하지 않거나 다른 조건으로 위험을 인수했을 것이라는 사실만 일단 증명하면 된다」는 견해가 유력하다.222)


2. 판례의 입장


판례는 중복적용설을 취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절충설을 취하고 있는 것인지에 관하여 아직까지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사기에 의한 보험계약과 관련하여, 중요한 사항에 관한 보험계약자의 고지의무 위반이 사기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보험자는 상법의 규정에 의하여 계약을 해지할 수 있음은 물론 보험계약에서 정한 취소권 규정이나 민법의 일반원칙에 따라 보험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223)


보험법 저자🔹임용수 변호사


214)​ 서울고등법원 1984. 8. 24. 선고 83나3776 판결; 이 판결은 피보험자가 보험계약 당시 당뇨병, 폐결핵(중증), 고혈압 등의 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숨기기 위하여 다른 건강한 사람으로 하여금 피보험자를 가장하여 진단을 받도록 하여 허위의 진단서를 받고 이것으로써 보험회사를 기망하여 체결한 보험계약은 사기행위로 인하여 체결된 것으로서 약관에 따라 무효라 할 것이고, 또 보험회사의 영업소장이 피보험자의 건강상태를 알고서 고지의무의 대상인 이른바 중요한 사항을 숨기고 나아가서 제3자로 하여금 대리진사를 하게 하는 등의 방법으로 보험회사를 기망하여 계약을 체결하게 된 경우에는 그것이 그의 권한 내의 행위로 보인다고 할지라도 그 계약체결의 목적이 보험회사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오로지 그 자신의 근무성적에 관련된 보험계약고를 채우고 보험수익자에게는 부당한 이익을 주기 위한 권한을 남용한 행위라고 할 것이고, 보험계약자도 또한 이러한 권한남용행위를 알고 있었으니 보험회사는 이 보험계약에 따른 책임이 없다고 보는 것이 상당하다고 판시했다.
215) 민법 제146조는 「취소권은 추인할 수 있는 날로부터 3년 내에 법률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 내에 행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216) 서·정, 378면; 정찬형, 526면.
217) 채이식, 개정판 상법강의(하), 2003(다음 면부터 '채이식'이라고 한다), 462면.
218) 최기원, 203면.
219) 동지: 독일보험계약법 제22조(사기). 동조는 사기에 관한 민법 규정이 고지의무 위반의 경우에도 적용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사기를 이유로 계약을 취소할 수 있는 보험자의 권리는 배제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220) 생명보험표준약관 참조.
서울북부지방법원 2004. 9. 24. 선고 2004가단2097 판결은 「피보험자는 건강진단 시 본태성고혈압 치료 등을 목적으로 상시 복용하여 온 약물인 혈압강하제인 항고혈압제의 효능을 수단으로 2차례에 걸친 혈압측정에서 정상으로 측정되도록 하는 방법으로 진단 절차를 통과했음이 명백하다고 할 것이므로 뚜렷한 사기의사에 의하여 계약이 성립된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221) 대법원 2000. 11. 24. 선고 99다42643 판결은 「회사 스스로 계약취소권의 행사를 민법 제147조의 규정보다 자기에게 불리하게 제한하고 있으므로 그에 따라야 할 것」이라고 한다.
222) 동지: 최기원, 206면; BGH NJW1958, 117.
223) 동지: 대법원 1991. 12. 27. 선고 91다1165 판결, 대법원 2017. 4. 7. 선고 2014다234827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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